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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사라질 뻔한 도시에 맛집이 있었네

아산 구도심에 위치한 제주음식 ‘올레멸치국수’

원주란 도시 이름 앞세운 통닭 맛집 ‘원주통닭’

아산시가 정한 대표맛집 중 한 곳 ‘복천감자탕’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6-11 12:30:38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세조 5년(1459년) 충청도 관찰사 황효원이 도내 아산(牙山)의 유향 품관·인리와 시흥·창덕·장시·일흥·광시·화천의 역자 등의 장고에 의거해 조정에 계문을 올렸다. 
   
“신이 아산의 아전을 보건대, 모두 속임수를 써서 수령을 모해하기를 일삼고 있습니다. 또 관사가 허물어지고 좁고 더러운데도 재목의 산지에서 멀어 영건(營建)할 길이 없고, 그 기지가 큰 물에 세차게 충격하여 장차 가라앉을 형세입니다. 더구나 역리들의 장고에 수령이 사망한다는 말은 비록 괴탄 하지만, 그러나 일찍이 수령을 지내고 살아 있는 자는 적고 죽은 자가 많으니, 역리의 말이 빈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위의 항목 6역(驛)은 아전이 본래 적고 또 흉년으로 인하여 유망(流亡)한 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아산은 동쪽으로 온양군과의 거리가 12리이고, 북쪽으로 평택 현과의 거리와 남쪽으로 신창현과의 거리가 각각 10리이니, 청컨대 아산현을 혁파(革罷)하고 그 토지와 인민은 세 고을에 나누어 붙이고, 향리는 온양에 붙이고, 노비는 6역에 나누어 붙여서 그 악한 풍속을 징계하고 피폐한 고을을 도와주어 역로(驛路)를 충실하게 하소서.”
    
장계의 골자는 아산현 혁파다. 혁파란 무엇인가. 묵은 기구, 제도, 법령 따위를 없앤다는 의미다. 이는 곧 아산현을 ‘공중분해’시켜 아전들의 악행을 뿌리 뽑아 달라는 것이다. 세조는 관할 부서인 이조에 장계를 내려 보내 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이조에서는 “군·현을 폐지하거나 설치한다는 그 일은 매우 중대하니, 청컨대 도순문진휼사(都巡問賑恤使) 황수신으로 하여금 다시 편부를 살펴서 계문 하게 한 뒤에 의논하여 시행하소서”라고 상계했다.
     
황효원의 상소에 맞서 아산출신 판충추원사로 있던 김구와 현감 조규는 혁파의 부당함을 세조에게 강력히 호소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세조는 황효원의 계문에 따라서 아산현을 즉각 혁파했다. 토지와 인민을 온양 등 세 고을에, 노비와 향리는 적당히 인근 고을에 붙였다는 실록이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진휼사 황수신의 비리가 자행된다.
      
아산현 1459년 세조 때 혁파로 사라져 
  
황수신은 아산현의 토지와 백성 등이 인접한 군·현으로 분배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황수신은 누군가. 세종 대 명신인 황희의 셋째 아들로 세조 12년 영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조선시대 최초로 부자가 영의정에 오른 명문가의 아들이자 동시에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권력자였다.
    
황수신은 아산현의 재산인 관둔전과 채소밭 일부를 빼돌렸다. 또 아내 묘터를 아산에 정했다고 거짓으로 둘러대 좋은 땅을 하사 받았다. 48간 기와로 된 아산현 관아를 22간의 초가라고 속여 사들인 뒤 이를 팔아서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등 독직을 일삼았다.
 
원 토지의 소유자였던 아산현이 혁파로 공중분해되면서 묻힐 뻔한 비리가 2년 뒤 불거졌다. 황수신에게 토지를 빼앗긴 관노 화만이 고소를 한 것이다. 세조실록 7년(1461) 5월 12일 두 번째 기사에 따르면 ‘사헌부에서 충청도 아산현의 관노 화만이 좌찬성 황수신의 죄를 고발한 것을 아뢰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화만은 황수신에게 빼앗긴 채소밭 토지가 원래 아산현의 관노비인 집안 대대로 소유했던 땅이란 것이다. 이를 임시로 기한을 정해 아산현에 빌려주었던 것을 현이 혁파되면서 황수신이 ‘꿀꺽’하려 하자 화만이 사헌부에 황수신을 고소한 사건이다. 결론은 황수신은 멀쩡했고 화만만 국문을 당했다. 황희 정승의 후광과 계유정난을 지지해 공신으로 책봉된 황수신을 세조는 끝까지 감쌌다.
           
황희 셋째 아들 황수신 독직 만행
 
▲ 황희(왼쪽)와 그의 셋째 아들 황수신의 초상. 아산의 역사 속에는 황수신의 흑역사가 숨어 있었다. [사진=필자제공]
 
세조 8년 사헌부 상소를 보자. 지평 이영부가 아뢰기를 “황수신은 공신이라 하여 특별히 용서하였으나, 그 죄는 심히 무겁습니다. 지금 만약 다스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경계하는 바가 없을 것이니, 청컨대 법에 의하여 과죄하소서”라고 고언 했지만 세조는 “황수신은 죄가 없다. 그것을 다시 말하지 말라”고 했다.    
 
사헌부는 상소를 통해 “전하께서 황수신을 중하게 여기시면 묘당을 가볍게 보는 것이요, 묘당을 가볍게 보면 묘당의 신하도 또한 가볍게 보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황수신을 아끼십니까? 신 등은 묘당을 위해서 이를 아끼는데, 또 후에 이를 논할 때 ‘재상에 그 적당한 사람을 얻었다.’고 할는지 알지 못하겠으므로 신 등은 두려워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황수신을 법대로 밝게 처치하여서 인신(人臣)의 탐욕하고 무망 하는 죄를 바로 잡으소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상소문 말미에 세조는 친필로 “황수신이 비록 조금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임금을 무망 한 데에 이르렀겠는가? 진실로 소인처럼 간교하게 꾸며대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허물이 드러난 것이다. 공신의 죄는 죽을 죄도 또한 마땅히 용서하는데, 하물며 일체 사정이 없겠는가?”라며 죄를 묻는 것을 윤허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몇 차례 황수신을 벌하라는 상소를 받았지만 정죄하지 않았다.      
 
한편 혁파된 아산현 복구 문제에 관해서는 세조의 온양 행차 시 전 아산현감 조규가 호소하고 환궁 후에도 도승지 노사신 또한 건의해서 세조가 어명으로 가부를 논하라고 의정부에 명했다. 그러나 논의가 지지부진했고 세조 11년(1465) 9월 5일 자 실록에 ‘아산현을 다시 세웠다’라는 기록에 따라 혁파 6년 만에 아산현이 복구됐다. 한 도시의 재등장 치고는 기록이라곤 딱 한 줄로 초라했다. 그럼에도 자칫 역사 속에 사라질 뻔했던 도시가 우여곡절 끝에 복구된 것은 지역민들에게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순천향대학교 중국어과 홍승직 교수와 월 1회 ‘아산 머글랭가이드’를 진행하면서 이렇게 아산 역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엔 황수신의 독직을 통해 청백리로 알려진 황희 가문의 흑역사 한 페이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금 같아서는 통치권자에게 엄청난 부담은 물론 형사처벌을 면치 못할 중범죄를 자행한 자다. 게다가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변명과 핑계로 일관했다고 하고 세조는 감싸는 정도를 넘어서 계속해서 관직을 제수하는 등 군주국가의 전근대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장면을 연출했다.    
 
아산서 맛보는 질박한 제주향토음식
 
▲ 흑돼지수육, 돌문어숙회, 옥돔구이, 고기국수 등 아산에서 제주의 맛을 구현하는 ‘올래즉석멸치국수’. [사진=필자제공]
 
이렇게 입맛 씁쓸한 날엔 어떤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좋을까. 이번 아산행 기록은 4,5월 두 차례 걸친 맛 기행을 모은 것이다. 아산 맛집은 전적으로 홍 교수가 정하고 있다. 30년 가까운 아산 맛 기행 관록이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믿음에 보답하듯 매번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4월에는 아산에서 제주의 맛을 구현하는 ‘올래즉석멸치국수’란 향토음식전문점을 방문했다. 간판은 올레멸치국수로 달았지만 검색을 하려면 ‘올래즉석멸치국수’로 해야 한다. 제주음식점답게 제주산 흑돼지수육과 돌문어 숙회, 옥돔구이, 뿔소라무침, 고등어와 갈치구이 등 풍성한 해산물 메뉴가 식객의 입맛을 자극했다.    
 
점심에는 제주식 고기국수와 함께 전 국민이 좋아하는 비빔국수, 멸치국수, 콩국수 등 가벼운 면류 식사를 제공한다. 아산의 대표적 구도심인 온양온천역 뒤편 온양동에 위치해 있다. 국수를 제외한 안주류 가격이 가볍진 않은데, 이유는 제주산 재료를 공수해서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날은 돌문어숙회와 흑돼지수육을 주문했다. 제주음식 전문점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21도 소주 ‘한라산’까지 구비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먼저 제주흑돼지 수육이 나왔다. 뜨거운 번철 위에 대파를 깔고 그 위에 오겹 보쌈을 올렸다. 음식 온기가 제법 오래갔다. 제주흑돼지는 삼겹 부위가 아니더라도 맛있다. 물론 삶는 방법과 첨가되는 재료 레시피에 따라 맛이 달라지지만 어지간해서는 맛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수육은 써는 두께에 따라 식감이 차이가 난다. 두껍지 않게 썰어 내는 것이 요령이다. 새우젓과 김치, 무생채에 마늘, 고추를 기호에 따라 곁들이고 대파로 둘둘 말아 입에 넣으면 한쪽 볼이 옴팡지게 꽉 찬다.   
 
수육과 한라산 소주를 적당히 곁들이고 있자니 돌문어가 세 마리의 다리가 먼저 통으로 나왔다. 손님들한테 보여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다. 돌문어는 초장과 궁합이 맞다. 문어류는 뜨끈할 때도 맛있지만 차게 해서 먹을 때 매력이 있다. 흑돼지 수육과 돌문어, 김치 삼합도 재미있는 변주다. 제주 출신 여사장의 질박한 제주 사투리가 재미나다. 배가 차서 국수 맛을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쉽지만 2차로 자리를 옮긴 ‘원주통닭’도 매력 있는 통닭 맛을 자랑했다.     
 
2차로 시원하게 ‘통맥’하기 좋은 곳
 
▲ 튀김옷이 맛있고 큰 닭을 사용하는 ‘원주통닭’ [사진=필자제공]
 
 ‘원주통닭’이란 상호가 궁금했다. 원주란 지명을 넣을 정도로 딱히 통닭으로 유명한 동네도 아닌데 말이다. 원주는 외려 추어탕이 유명하다. 근데 아산에서 원주통닭이라니. 사장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허겁지겁 통닭을 먹느라 타이밍을 놓쳤다. 통닭 튀김옷 맛이 ‘예술적’이다. 통닭 가격이 만만치 않은 이유도 결국 맛이다.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해서 남은 통닭을 포장했다. 워낙 큰 닭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4월 아산행은 기차역이 가까워서 귀경하기 좋았다.
        
시래기가 듬뿍 들어간 감자탕 맛집
 
▲ ‘복천감자탕’은 시래기가 풍성하고 육수가 맑고 담백하다. 양도 상당히 많아 종업원에게 물어보고 주문하는 것이 좋다. [사진=필자제공]
 
5월엔 시원한 감자탕을 만났다. 감자탕의 감자는 돼지의 척수 부분을 뜻한다. 채소인 감자가 들어가서 감자탕이 아니다. 알칼리성인 감자를 넣는 이유는 산성인 돼지와 음식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것이다. 감자탕이란 이름과 함께 감자국도 많이 쓰인다. 서울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태조감자국’, ‘서부감자국’, ‘송파감자국’ 등이 탕 대신 국으로 메뉴 이름을 쓰고 있다.      
 
아산 구도심 용화동의 ‘복천감자탕’은 시래기가 풍성하고 육수가 맑고 담백한 특징이 있다. 물론 양도 상당히 많다. 양이라고 쓰고 인심이라고 읽는다. 3명이 가서 대자를 시켰더니 종업원이 손사래를 친다. 양이 너무 많을 거라며 중자를 권한다. 결론적으로 중자도 다 못 먹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다 해치우지 못한 이유로는 양적인 부분도 있지만 좌식인 탓도 있었다며 남긴 음식에 대해 소심한 변명을 해본다.    
 
충청도는 우리나라서 돼지사육 두 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사육환경과 육질이 좋기 때문이다. 지역서 도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등뼈를 사용하다 보니 잡내가 스밀 여지가 없다. 거기에다가 품질 좋은 시래기를 아낌없이 담고 깻잎과 들깨를 약간만 쳐서 시원한 육수 맛을 살린 게 이 식당의 노하우다.    
 
기존 들깨 맛이 강한 육수와 다른 시원한 고춧가루 맛이 좋았다. 재료가 좋으면 맛은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만고의 진리에 충실한 집이다. 좌식의 불편함은 있지만 피크타임 때는 대기가 걸린다. 그래선지 포장 주문이 끊임없다. 감자탕은 포장으로 집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해 먹기 편하고 적합한 품목이다. 이 맛 그대로 서울 진출하면 큰일 낼 집이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볶음밥은 양보 못했다. 육수 맛이 좋은지라 육수 몇 숟갈과 참기름 외에 별달리 넣은 것이 없는 볶음밥 맛도 일품이다. 아산시가 선정한 ‘대표 맛집’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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