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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 특집-사장님들 힘내세요<7>] 송승엽(에스) 티지헤어 원장

“급여까지 삭감하며 남아준 직원들에게 고맙죠”

운동 좋아했던 제주 소년, 서울로 상경해 헤어디자이너로 꿈 이뤄

기사입력 2021-09-23 00:05:00

▲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와 인고의 시간을 거쳐 미용실 두 곳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손님의 머리를 디자인하고 있는 송승엽(에스) 원장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티지헤어는 영국의 유명 헤어드레서인 앤서니 마스콜로에 의해 설립된 헤어드레서를 위한 글로벌 브랜드로 영국 글로벌 프랜차이즈에요. 저희 매장은 샴푸, 염색약 등 최고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죠. 샴푸실에서는 두피, 아로마 마사지를 통해 머리를 개운하게 해주고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헤드스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요.”
 
미용실 ‘티지헤어’ 광장점·구의점 두 곳을 운영하고 있는 송승엽(에스) 대표원장(40)은 광장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송 원장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동하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댄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군대에서 이발병을 맡게 된 것이 훗날 헤어디자이너가 된 계기였다. 
 
헤어디자이너 시작은 바닥쓸기부터… “고시원에 살며 부모님 지원도 전혀 못받아”
 
“저는 연습 끝에 2005년에 이대 앞에 있는 준오헤어에서 인턴으로 미용계에 발을 들였어요. 처음에는 바닥쓸기부터 시작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다른 선배 디자이너들이 손님 머리를 만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일을 점차 배워나갔죠.”
 
“2007년 디자이너가 되기 전 2년간 이상 많은 고생을 했어요. 제가 20대였던 시절, 남자가 미용을 하는 건 사회적으로 시선이 좋지 않은 때였어요. 그래서 부모님은 한 푼도 지원 해주지 않으셨죠.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제 길을 찾고자 아르바이트로 50만원을 모아 서울로 올라왔어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꼭 성공해서 돌아오리라’는 각오를 다졌죠. 서울로 온 저는 이대의 한 고시원에서 30만원을 주고 생활을 시작을 했어요. 나머지 20만원으로 한 달 생활을 했어요. 신발장도 없었던 이 고시원은 사람 한 명 누우면 공간이 부족한 허름한 곳이었어요. 또 하루 종일 미용 연습하느라 계속 서있어 땀으로 찌든 신발 냄새가 방에 진동할 정도였죠.”
 
“또 저는 다른 동기 디자이너들에 비해 손놀림이 부족해 기술 습득이 쉽지 않았어요. 다른 친구들은 잘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뒤쳐지는 것일까’ 비관적인 생각도 했죠. 하지만 저는 노력한다면 언젠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이후 남는 시간들을 활용해 밤을 새면서 연습, 또 연습하며 밤을 지새웠어요”
 
이후 그는 2년간의 인턴생활을 끝내고 2007년 청담동에서 정식으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약 3년 동안은 인턴보다 낮은 급여를 받으면서 견뎌왔다. 대신 한가한 시간을 활용해 공부할 시간이 더 주어졌다. 그 결과 송 원장은 현재는 티지헤어의 아카데미인 티지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예비 디자이너들을 가르칠 정도로 우수한 실력을 갖추게 됐다.
 
코로나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이 되는 소중한 기억들 
 
▲ 에스 원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았다. 물론 원장을 믿고 임금 삭감은 받아드린 직원들이 있어 가능했다. 사진은 손님의 머리를 자른 후 미용용품을 정리하고 있는 송승엽(에스) 원장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자신의 샵을 차리는 것은 모든 헤어디자이너들의 소망이다. 송 원장 역시 여러 곳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거쳐 모은 자금으로 2016년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자신의 첫 샵을, 이듬해에는 광장점을 열었다. 
 
“많은 손님들이 기억에 남지만 이 손님만큼은 잊을 수가 없어요. 40대 손님분이셨는데 항암치료를 위해 삭발을 하러 오신 손님이었어요. 저는 그 분 머리를 담당하면서 수많은 감정이 오갔어요. 어떤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또 실수로 말을 잘못해서 상처가 되지 않을지 걱정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분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들을 이어 나갔어요. 그렇게 손님은 물론 저도 위로 받는 느낌이었죠. 이후 그 분은 완치되어서 현재까지도 저희 매장의 단골손님으로 오시고 계세요.”
 
따뜻한 이야기를 꺼내던 그도 코로나19를 언급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 이전보다 약 30% 정도 매출이 감소했죠. 코로나 관련 뉴스가 나오면 다음날 매출 하락이 티가 나는데 이건 저희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힘들어요.”
 
이러한 상황 악화 속에서도 송 원장은 고객 만족과 서비스 최대화를 위해 노력하며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 이럴 땐 인력을 줄이죠. 저 또한 불필요한 인력을 정리하고 싶었으나 모든 직원들과의 미팅을 통해 서로가 고통분담을 하기로 합의했죠. 그래서 직원들 동의하에 급여 삭감을 진행했어요. 직원들이 떠나지 않고 저를 신뢰하고 많이 믿고 따라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끝으로 에스 원장은 모든 자영업자분들이 이 상황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잘 버텨내 코로나를 이겨내고 잘 살게 되기를 소망한다며 ‘화이팅’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동원 기자 / dwlee@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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