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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광개토왕의 신라구원 사건 속으로(II)

부여백제(왜잔국) 삼한 백성의 소요사태 진압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10 10:58:37

 
▲ 정재수 역사작가
광개토왕릉비의 ‘영락10년(서기 400년) 신라 구원’ 사건은 옛 부여백제(왜잔국) 삼한백성의 일본열도 엑소더스 준비를 배경으로 한다.
 
이번 회는 전쟁 경과를 다룬다. 광개토왕이 군사를 파견해 경남 남해안에 집결하고 있는 삼한 백성에게 행한 군사적 행동의 실체와 결과다.
 
고구려 한반도 남방 평정
 
서기 399년, 신라 내물왕의 구원 요청을 받은 광개토왕은 이듬해인 400년, 대규모 군사를 보내 왜를 평정하고 신라를 구원한다. 왜는 옛 한반도 왜잔국(부여백제)의 삼한백성이다.
 
광개토왕릉비 기록이다. ‘10년(400년) 경자, 교시를 내려 보기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했다. 이때 남거성에서 신라성까지 왜가 가득했다. 관군이 도착하자 왜적이 물러갔다. ▨▨▨▨▨▨▨ 왜의 뒤를 급히 추적해 임나에 이르렀다. 가라가 뒤따라와 성을 공격하자 성은 즉시 귀복했다. 이에 안라인 술병을 뒀다(十年 庚子 敎遣步騎五萬往救 新羅從男居城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倭賊退 ▨▨▨▨▨▨▨ 自倭背急追至任那 加羅從拔城 城卽歸服安羅人戍兵).’
 
광개토왕은 보기군(보병·기병) 5만명을 출진시킨다. 5만은 광개토왕이 동원한 최대 규모의 병력이다. 이는 광개토왕이 경남 남해안에 집결한 궁월군과 수십만의 삼한백성 존재를 심상치 않게 본 증거다.
 
고구려군은 남진해 신라 영토(남거성·신라성)에 들어온 삼한 백성을 몰아내고 내친걸음으로 임나에까지 쳐들어갔다. 이때 가라가 고구려군을 뒤따라와 임나성을 공격하자 임나성은 즉시 항복해 고구려에 귀복했다. ‘귀복’이란 표현은 과거 고구려 속민인 임나가 신묘년(서기 391년)에 한반도 왜(왜잔국·부여백제)의 신민이 됐다가 다시 고구려의 속민이 된 사실을 말한다. 또한 고구려는 귀복한 임나성에 안라인으로 편성한 술병(수비병)을 배치했다.
 
▲ 안악3호분 ‘대행렬도’ 벽화 속의 고구려 보기군. [사진=필자 제공]
    
이에 대응하는 고구려사략’의 영락대제기 기록이다. ‘10년(400년) 경자 2월, 왜가 신라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서구와 해성 등에게 5만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해 왜를 물러나게 했다. 임나(任那), 안라(安羅), 가락(加洛) 등 모두가 사신을 보내 입조했다. 남방이 모두 평정됐다(十年 庚子 二月 聞倭入羅 遣胥狗解猩等將五万徃救退倭 任那安羅加洛等皆遣使來朝 南方悉平).’
 
광개토왕은 왜(궁월군와 삼한백성)뿐만 아니라 임나도 평정했다. 또한 가야세력인 안라·가락은 자연스레 광개토왕에게 굴복한다. 안라는 아라가야(경남 함안)이며, 가락은 금관가야(경남 김해)이다. 이 결과 광개토왕은 이들 세 나라로부터 입조(入朝)를 받는다. 특히 광개토왕릉비(계연수등본)에는 훼기탄(喙己呑·경남 영산), 탁순(卓淳·경남 창원) 등도 광개토왕이 제압해 취(取)했다고 적고 있다(倭遂擧國降死者十之八九盡臣率來 安羅人戌兵滿假 ▨▨ 倭欲敢戰與喙己呑卓淳).
 
삼한 백성의 소요사태 진압
 
광개토왕의 군사행동은 도륙(屠戮)과 같은 대규모 살상행위를 동반한 무력행사가 아니었다. 상대는 무장한 군대가 아닌 비무장의 삼한백성이다. 그래서 고구려사략은 ‘평정(平定)’이란 단어를 썼다. 광개토왕의 군사행동은 일종의 소요사태를 진압하는 정도다. 그래서 세 나라는 군사적 저항보다 복속을 선택하며 광개토왕에게 사신을 보내 입조했다. 광개토왕은 또한 평정 이후 이들 지역에 안라 출신의 술병을 따로 두기도 했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 광개토왕이 파견한 5만 정예군사 대부분은 철수했다. 그래서 고구려 자체적으로 술병을 두지 않고 안라(아라가야) 출신으로 술병을 편성해 배치했다. 세 나라 중 안라는 비교적 고구려에 협조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백일사에는 ‘안라는 본래 홀본 사람이다[安羅本忽本人也]’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도 ‘영락10년(서기 400년) 신라 구원’ 사건을 축약해서 기록했다. 열전’ 박제상 편이다. ‘백제인이 앞서 왜에 들어와 “신라와 고구려가 왕의 나라를 침입하려 모의한다”고 참언했다. 왜가 마침내 군사를 보내 신라 국경 밖에서 순찰했는데 때마침 고구려가 들어와 침략해 왜의 순찰병을 잡아 죽였다[百濟人前入倭讒言新羅與高句麗謀侵王國 倭遂遣兵邏戍新羅境外 會高句麗來侵 幷擒殺倭邏人].’ 다만 삼국사기는 광개토왕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파견한 군대의 행동을 침략(來侵)으로 표기했다.
 
▲ 광개토왕릉비 비문 기록과 진행 과정. [사진=필자 제공]
  
광개토왕의 ‘영락10년(서기 400년) 신라 구원’은 일본열도로의 엑소더스를 위해 경남 남해안에 집결한 옛 부여백제(왜잔국) 삼한 백성의 소요사태를 진압하고 남방을 평정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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