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자본성증권, 줄줄이 흥행 실패… 중소형사 자본확충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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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투심 한파 맞은 보험업계

김학형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0-12 00:07:53

▲ 최근 흥국생명**(왼쪽)**·ABL생명 등 보험사들이 발행하는 자본성증권(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등)이 잇단 흥행 부진을 겪고 있다. ⓒ스카이데일리·ABL생명보험

최근 보험사들이 발행하는 자본성증권(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등)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물가상승) 우려에도 수요예측에 거의 성공하던 올해 초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 모두 흥행 성적표가 초라한 수준이다. 특히 자본확충이 시급한 중소형 보험사에 더욱 어려움이 가중됐다.

11일 금융감독원(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후순위채를 발행하기 위해 지난달 21일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단 한곳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흥국생명은 10년 만기, 5년 콜옵션(조기상환권)이 설정된 후순위채 400억원을 발행할 계획이었다. 지난해 말 163.2%에서 올해 상반기 157.8%로 떨어진 지급여력(RBC) 비율을 끌어올리고, 새 보험계약 국제회계기준(IFRS 17)과 신 지급여력제도(K-ICS)에 대응하기 위한 용도였다.

RBC 비율은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법정 기준치 100% 이상과 금융당국 권고치 15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흥국생명 RBC 비율(157.8%)은 상반기 생명보험사 평균 RBC 비율(216.2%)에 한참 못 미치며, 당국 권고치를 겨우 넘긴 수준이다.

내년에 도입될 IFRS 17과 K-ICS는 보험사가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인 보험부채를 지금의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 이에 따라 보험사는 자산 변동이 없어도 부채가 늘고, 그 부채만큼 이익잉여금이 감소해, 자본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은 일종의 빚이지만 모두 발행사의 자본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보험사를 비롯한 기업들은 이를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한다. 다만, 후순위채는 회계상 자본으로 잡히지 않는다.

흥국생명의 후순위채 미매각 물량은 총액인수계약에 따라 주관사인 메리츠증권이 전량 떠안게 된다. 메리츠증권은 유동화로 투자자 찾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흥국생명은 내년 10월 만기를 맞는 후순위채 2000억원 중 일부를 이번 후순위채로 조기에 차환할(새로 꿔서 갚을) 방침이다. 이를 통해 RBC 비율이 1.8%p가량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흥국생명은 이번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공모희망금리로 5.3~5.9%를 제시했다. 후순위채 신용등급 ‘AA-(안정적)’에 견줘 낮지 않은 수준이지만, 앞서 발행된 다른 보험사의 후순위채(6% 후반대)에 비해 금리 메리트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비교적 높은 금리를 제시한 자본성증권마저 투자자들에게 외면 당했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자본성증권을 발행한 ABL생명·한화손해·롯데손해보험 등 3개 중소형 보험사 역시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했다.

지난달 20일 ABL생명보험은 630억원의 후순위채 수요예측에 나섰으나 130억원만 모였다. 10년 만기에 5년이 되는 해부터 조기 상환할 수 있는 조건(콜옵션)이었다. 금리는 최대 6.7%를 제시했다. ABL생명의 신용등급은 ‘A’다.

한화손해보험은 지난달 14일 실시한 신종자본증권(850억원)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10억원을 주문 받는 데 그쳤다. 공모희망금리는 5.80~6.50%. 30년 만기에 발행 5년째부터 조기 상환이 가능한 조건이다. 한화손해보험의 RBC 비율은 작년 말 176.9%에서 6월 말 135.9%로 내려가며, 권고치 아래로 떨어졌다.

롯데손해보험도 1400억원의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30%가량이 미달됐다. 공모희망금리는 최고 6.9%를 제시했다.

이들 중소형 보험사가 6% 후반의 비교적 높은 금리에도 수요예측에 실패하는 배경에는, 우선 최근 금융업계의 자본성증권 발행이 크게 늘면서 중소형 보험사에 대한 투자 매력이 다소 떨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비교적 높은 금리에도 신용도 등 안정성 측면에서 투자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 셈이다.

같은 9월에 우리은행이 진행한 3500억원 규모의 원화 신종자본증권은 흥행에 성공했다. 조기상환권(콜옵션) 조건이 붙은 영구채로, 콜옵션 기준 5년물 3200억원, 7년물 300억원으로 나눠 발행했다. 처음 발행 규모는 2700억원이었으나 수요예측에 1.5배에 가까운 투자금이 몰려 증액됐다. 발행 금리는 5년물 5.20%, 7년물 5.45%다.

또 앞으로 금리상승 기조가 예상보다 길게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기준금리와 시중금리의 지속적 인상으로 보험사의 자금조달 비용 증가가 불가피해졌는데, 대표적인 자금조달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채영서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보험사들의 하이브리드 증권 발행이 대규모 증가했다”며 “절대적인 금리 수준이 높다 보니 향후 보험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본성증권은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해도 주관사가 책임지는 구조라서 보험사 자본확충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라며 “다만 기준금리가 더 오른다고 가정하면, 자본조달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이고 투자자는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채권)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자본조달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학형 기자 hh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