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1년 전의 스카이데일리 지면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11월8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이 ‘국운 회복 해법 깃든 80년대 대한민국’이었다. 한국 언론에서 거의 금기시 돼 온 1980년대 재조명을 4명의 탐사보도팀이 시도한 것이다. 4개 면에 차례로 담긴 내용은 우리의 통념을 깼다.
핵심은 80년대는 ‘대한민국 황금기’가 분명하고 때문에 당시를 잘 들여다보면 지금의 경제위기·일자리 쇼크의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운동권의 도그마 하나가 실사구시에 충실한 신문의 용기로 저렇게 깨져 나가는구나 싶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편견을 버린 채 전두환 대통령과 80년대의 진실을 살펴보자. 그 시대에는 뚜렷한 성적표가 있다.
전설의 3저 호황으로 벌어들인 달러로 대한민국을 망친다는 외채망국론 공포를 불식시켰던 게 바로 그때다. 86~88년 평균 경제성장률이 얼마였지? 물경 12.5%였고, 그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다. 교복 자율화·통금 해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개방과 자율화의 분기점이 그때다. 총체적으로 말해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했던 산업화를 완성시킨 지도자가 전두환이다.
그걸 부정하는 순간 좌파의 역습에 우린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전부터 운동권에 맞선 80년대 재인식을 주창해 왔다. 80년대의 상징 전두환 대통령이 타계한 게 꼭 1년이고, 23일로 1주기를 맞는다. 그런데 그거 아시는가. 그분이 아직도 묘소를 찾지 못한 상태이며, 유골함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 모셔져 있다.
이 글을 준비하며 전 대통령을 모셨던 민정기 전 비서관에게 확인했더니 아직도 그 상태란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 비슷한 사례가 현대사에 있기나 한가. 영원한 안식을 누릴 음택(陰宅)을 마련치 못한 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다시 묻자. 대한민국은 조국에 헌신한 대통령에게 현충원은커녕 한 모퉁이의 땅조차 허락치 않는다?
고인은 “북녘땅 보이는 곳에 유골을 뿌려 달라”고 했는데 우린 그것조차 거부할 것인가? 실은 1년 전 장례식도 참혹했다. 문재인의 청와대는 대통령의 이름으로 조화 하나 보내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은 “조화·조문·국가장 모두 불가하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도 거기에 덜컥 동조했던 걸 우린 다 기억한다. 좌파와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집단이 자유우파 대통령 한 분을 대놓고 부관참시한 꼴이다.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는 전두환을 ‘정치적 악마’로 묘사하지만 터놓고 말해 보자. 김대중·노무현에 대해선 한없이 칭송해도 무방하고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부국 대통령 박정희를 긍정하면 극우꼴통인가. 나의 진심을 말하고 싶다. 전두환의 최대 업적은 1980년 서울의 봄 혼란을 평정한 점이다.
그래서 주사파의 조기 등판을 막았던 구국(救國) 대통령이다. 이승만·박정희와 함께 빅3 대통령으로 꼽는 게 바로 전두환이다. 너무 나갔다고? 그렇다면 이런 가정을 해 보면 된다. 만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던 김재규·정승화 일당이 집권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혼란기에 국가운영이 제대로 됐을까. 쿠데타가 빈발하며 대한민국은 중남미형 쿠데타 빈발 국가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3김이 80년대 줄줄이 집권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97년에 찾아온 외환위기를 포함한 혼란이 최소한 10년 이상 앞당겨 대한민국을 덮쳤을지 모른다. 전두환의 80년대가 있고 없고는 그래서 소중하다. 그런데도 전두환 재평가는 왜 여전히 정치적·학문적 금기로 남아 있을까.
이유는 자명하다. 운동권과 좌익세력은 광주5·18을 자신들의 정치적·도덕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걸 성역화해야 주사파가 날뛸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도전하는 사람은 바로 대역죄인이 된다. 멀리 갈 게 없다. 지난 대선 때 전두환을 평가했다가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던 게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전두환클럽 결성 및 책 사인회’가 지난달 27일 치러졌다. 지만원 박사가 중심이 됐다. 그게 정상이다. 한국 사회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전두환 재평가를 기대하며, 그 이전에 그의 묘소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새삼 촉구한다. 이런 비정상이 지속되는 한 우리 국민은 정치적으로 무지하며, 인간적으로 못됐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