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는 자와 속는 자, 누가 더 큰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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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파렴치·몰염치한 무리들 꼭 존재
‘남의 둥지에 알 낳아 키우는 뻐꾸기 부류’ 솎아내는 게 지혜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06 09:50:07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는 나 몰라라 달아난다. 조류는 성장이 더딘 만숙성(晩熟性)이다. 어미가 알을 낳고 정성껏 품어 주어야 하고 새끼가 태어날 때는 밖에서 동시에 쪼아 주어야 한다.

세상에 나와서도 한동안 어미 새의 보살핌과 양육을 받고 나서야 한참 만에 공중을 날 수 있다. 때문에 어미 새는 늘 바쁘다. 돌아가며 새끼를 보호하고 먹을 것을 날라 와야 하니 이만저만 공이 드는 게 아니다. 스파이가 끼어들어 자식을 빼돌릴까 봐 ‘둥지당번 교대 의식’까지 만들어 서로를 확인한다.

그런데 다른 새 둥지에 덜렁 알을 낳고 도망가는 뻐꾸기는 무슨 심산인가. 남 밑에서 제 새끼가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도대체 뭘 믿고 그런 무책임한 만행을 저지를까. 동물학자들은 뻐꾸기 새끼에 대해 놀라운 보고를 한다. 비밀은 그들의 치명적 유혹이다. 먹이를 달라고 쫘악 벌린 새빨간 입속이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자기 새낀지 아닌지 알아챌 겨를도 없이 그 입속에 얼른 먹이를 넣어 준다는 것이다. 자기 새끼는 뒷전으로 하고 말이다.

그뿐인가. 어렵사리 음식을 구해 자기 둥지로 허둥지둥 날아가던 다른 새들도 도중에 뻐꾸기 새끼의 벌린 입이 하도 예뻐서 그만 이성을 잃고 그곳에 식사를 제공하고 총총히 사라진다고 한다. 이렇게 놀라운 무기가 있기에 아기 뻐꾸기는 어디에서든 자라난다. 어미 뻐꾸기 또한 겁날 게 없다. 지나던 길손이 먹이를 바치는 모습을 발견한 동물학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집단생활을 하기로 유명한 개미 세계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 어떤 개미종의 여왕은 혼인비행을 마치면 곧바로 남의 왕국에 잠입한다. 일반적인 여왕은 화려하고 풍성한 짝짓기가 끝나면 날개를 떼어내 먹고는 굴을 파내려 가 고생 끝에 나라의 기반을 잡는데 이들은 얌체같이 사기꾼 수법을 동원한다.

한창 강성한 왕국에 잠입한 여왕은 그 나라 여왕을 살해하고는 페로몬을 분비한다. 왕국의 일개미와 병정개미를 정신지배하는 마약이다. 개미들은 자기 여왕이 죽은 줄도 모르고 가짜여왕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가 침입자 여왕의 아이들이 태어나면 또 정성껏 돌보고 키운다. 이제 침입자의 자식들이 장성하면 불쌍한 종족은 처참하게 희생되고 침입자 여왕은 이 왕국을 접수한다.

동물만 그런 게 아니다. 본인이 결혼하겠다고 중매쟁이를 잔뜩 놀려 먹는 식물도 있다. 오프리스난초는 스콜리드 말벌이 유일한 중매쟁이다. 그들은 말벌의 수컷이 찾아오도록 암컷을 닮은 꽃을 피운다. 누가 보아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감쪽같다. 모양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난초가 풍기는 향기는 진짜 암컷의 향기보다 진하고 강하다. 짝짓기 철이 된 스코리드 말벌 수컷은 난리가 난다. 향이며 모양이며 진짜 암컷보다 더 예쁘고 더 진한 난초를 향해 돌진한다.

그런데 한참을 애써 보지만 이 암컷이 꼼짝을 하지 않는다. 버둥대며 고생 끝에 꽃가루만 잔뜩 묻힌 수컷은 다른 암컷(?)에게 달려간다. 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허위교미’라고 한다. 수분을 위한 식물의 영악한 수법이다. 자기 결혼하자고 남에게 사기결혼 프러포즈를 한다. 그래도 난초는 꿀과 꽃가루로 중매쟁이에게 사례는 한다. 이제 오프리스난초는 자기 볼일을 다 보았고 후손을 남기는 데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

인간 세상도 비슷하다.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간에 파렴치하고 몰염치한 무리가 있다. 뻐꾸기의 요염한 입속처럼, 정신지배 페로몬을 풍겨대는 침입자 여왕처럼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묶어 둔다. 성실하고 선량한 피해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속절없이 이들에게 당한다. ‘속이는 자’들은 숙주를 확보한 기생충이 되어 자신의 계략대로 개인과 단체와 국가를 쥐락펴락한다. 피해를 입는 쪽은 파멸로 치닫는다.

옛말에 ‘도둑보다 도둑당한 사람의 죄가 더 크다’는 말이 있다. 자기 것을 허술하게 관리해서 도둑이 노리게끔 한 사람이 문제라는 거다. 남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으니 그것이 더 큰 죄라는, 다소 ‘억울한’ 논리다. 식물이나 동물 세계야 자연의 온전한 지배를 받으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잘잘못을 가릴 수 없지만, 인간의 경우는 다르다는 말이다.

자연만큼 문화의 영향 또한 큰 인간 세상에서 속는 자와 속이는 자,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백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여당과 야당, 사용자와 노동자, 부모와 자녀, 남편과 부인 사이에서 서로에게 ‘속이는 자’라며 공격의 손가락을 겨눈다. 때로는 속이는 자가 속는 자를 비난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가스라이팅’의 대가 나르시시스트들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속는 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도처에 널려 있는 ‘새빨간 뻐꾸기 입’을 바로 알아차리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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