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동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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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기르던 갈가마귀로부터 청혼받은 동물행동학자 로렌츠
아기새들에게는 함께 달리기를 통해 비상하는 법 가르쳐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20 08:48:55

담장 너머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이웃은 웬일인가 하고 들여다본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무릎을 굽힌 채 꽥꽥 소리를 내며 걷고 있다. 그 뒤를 아기 물오리들이 꽥꽥거리며 뒤따른다. 오리유치원 같다. 오리들과 놀고(?) 있는 사람은 동물행동학의 아버지 콘라트 로렌츠다. 1903년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어려서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아 넓은 집에서 새·개·물고기·여우원숭이·야생거위 등을 애완동물로 길렀다.

로렌츠는 6살 때 소꿉동무 여자 친구 마가레테 게브하르트와 다뉴브 습지에서 갓 부화한 오리 새끼 한 쌍을 입양하여 길렀다. 좀 자라서는 이웃집에서 기르던 갈가마귀와 친구가 되어 성년이 된 갈가마귀에게서 구애를 받기도 했다. 갈가마귀는 전형적인 자신들의 구애 의식인 상대의 입에 벌레를 집어넣는 방법으로 로렌츠에게 청혼했다. 갈가마귀와 로렌츠의 친화의 정도를 알 수 있다.

한번은 연구실로 그를 인터뷰하러 갔던 기자가 도무지 그를 찾을 수 없어서 비서에게 물어보았는데 교수님은 연구실에서 나오지 않으셨다는 대답만 들었다. 할 수 없어 앉아 있는데 좀 있다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에 젖은 로렌츠 교수가 나타났다. 그는 연구실 안 커다란 수족관 속에서 물 속 동물들을 관찰하던 중이었다.

1935년부터는 야생 거위를 연구했는데,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빛바랜 동영상에는 로렌츠 교수가 확성기를 들어 거위들을 부르고 수십 마리의 야생 거위가 이에 화답하는 소리를 내며 그에게로 날아드는 장면이 있다. 거위들이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모여드는 모습이다.

거위들의 가정생활은 인간과 닮았다. 그들은 때가 되면 짝을 찾아 결혼한다. 배우자에게 대한 충성도도 높다. 한쪽이 먼저 죽으면 나머지 짝은 수절한다. 하지만 그들도 혼자 지내는 게 힘든 지 친정(본가)으로 돌아와 남은 생을 산다. 일찍이 독립하고 한번 떠나면 다시 부모를 찾지 않는 다른 동물들과는 대조적이다. 로렌츠 교수의 동영상에는 참으로 감동적인 부분이 있다. 실험을 위해 연구소에서 기르던 야생 거위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장면이다.

▲ ‘기러기 아빠’로 불린 오스트리아 동물심리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기러기와 교감하고 있다.

수년간 인간의 품에서 자라던 그들은 이제 인간(친정)을 떠나 동류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까지 성공해야 진정한 연구의 성공이라고 로렌츠 교수는 말한다. 날개가 자라고 몸이 근질근질해진 아기새 수십 마리를 데리고 교수와 연구원들은 넓은 평지로 간다. 인간이 새에게 ‘날기’를 가르쳐야 하는 순간이다. 교수와 제자들은 처음엔 거위 소리를 내며 걷는다. 거위들은 언제나처럼 그들을 따른다.

사람들의 걸음이 점차 빨라지더니 속도를 내어 뛰어간다. 거위들도 부모를 따라 냅다 뛴다. 사람들이 전속력으로 숨차게 달리고 거위들이 뒤따른다. 앗! 하는 사이 야생 거위들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마치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듯이. 로렌츠 교수와 제자들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다 큰 자식들을 출가시키는 결혼식장의 감동적인 장면 그대로다.

거위들은 작별인사를 하듯 부모 주위를 돌고는 그들의 고향인 자연으로 향한다. 로렌츠 교수가 확성기로 소리를 낼 때 화답하며 모이는 거위들은 바로 그렇게 부모 품을 떠나 독립한 거위들이다. 새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묘하게도 인간과 많이 닮았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을 애지중지 거둬 먹이고 보호하는 부모의 정성이 그렇다. 새들은 한참 자라야 날아오를 수 있어서 키우는 데 공이 많이 든다.

일부일처인 새들은 대체로 부부 사이가 좋다. 인간처럼 삼각관계와 사랑의 밀당도 있고 질투와 모함을 할 줄 안다. 로렌츠 교수의 야생 거위 연구는 많은 것을 밝혀냈지만 그중에서도 거위들의 효도(?)가 인상적이다. 까마귀의 효도를 말하는 ‘반포지효’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요즘 다 자란 자녀와 부모 사이에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MZ세대 자녀들의 취업과 결혼이 녹록하지 않은 탓이다.

그 틈에서 부모·자녀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 힘든 세대에서 자녀의 태도는 ‘부모를 돌아볼 줄 아는 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부모의 자격 조건은 무엇일까? ‘자녀를 온전히 독립시킨 부모’라는 조건이 붙을 것이다. 로렌츠 교수처럼 기른 정을 뒤로 하고 그들의 세상으로 보내 주는 용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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