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가모장(家母長) 리더십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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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코끼리는 여성 가장 사회…사자·악어가 두려워하는 지혜와 경험
한국 어머니도 코끼리처럼 가족 먹이고 지키지만 군림하지 않아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12 13:13:10

아프리카 초원의 왕은 당연히 사자다. 그런데 이 사자가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상대가 있다. 바로 코끼리다. 유순한 초식동물인 코끼리를 왜 사자가 조심할까? 물론 코끼리 덩치가 크기는 하다. 지상에서 최고의 거구다. 하지만 진짜 비밀은 따로 있다. 사자와 마찬가지로 코끼리 또한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사자는 가부장 사회인 반면 코끼리는 여성이 가장인 가모장(家母長) 사회다. 코끼리의 가모장제는 페미니스트들이 눈여겨볼 만한 사항이다.

가모장 코끼리는 지혜와 통솔력·민감성과 희생정신이 아주 발달되어 있다. 모든 것은 경험에서 시작된다. 할머니 코끼리는 멀리서 사자 울음소리만 들어도 무리의 크기를 알고 어느 방향으로 공격해 올지 감지한다. 사자들이 어린 코끼리를 노리기 때문에 어른 코끼리들은 아기 코끼리를 둘러싸는 진영을 이룬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몇 마리씩 무리지어 사자에게 돌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현명한 가모장의 통솔 하에 이루어진다.

이른 아침에는 함께 모여 있다가 오후가 되면 삼삼오오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제 할 일을 한다. 아주 어린 새끼들을 물 먹이러 나가는 어미가 있고, 좀 자란 청소년기 자식들을 교육시키러 다니기도 하고, 먹이를 구하거나 살랑살랑 놀러 다니는 팀도 있다. 아침에 100마리였다가 낮에는 30마리가 되기도 하고 해질녘에는 다시 17마리 정도로 줄어들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유동적 무리다. 하지만 절대 무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소리를 내면 서로 들을 수 있는 거리 안에 머문다.

그래서 새끼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모여들어 서로 돕는다. 수컷들은 다 자라면 무리를 떠나고 딸들과 손주 또는 증손주들로 혈족관계를 구성한다. 가모장은 증조할머니나 고조할머니일 수도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안정적으로 무리를 이끈다. 든든한 할머니의 그늘 아래서 이들은 편안한 초원생활을 한다. 코끼리는 오랜 기간 출산할 수 있다. 가모장 할머니가 낳은 막내는 조카나 손주 손에서 자라기도 한다. 옛날 우리네 가정도 고모·이모와 조카의 나이가 비슷하지 않았던가. 코끼리 집단에서 공동육아는 자연스럽다.

어느 날 목마른 코끼리들이 연못의 물을 먹으러 나섰다. 막내가 목을 축이려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가로막는다. 주춤하는 사이 할머니가 긴 코를 뻗어 연못 속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린다. 잠깐 사이 휙 하고 육중한 것이 나무둥치에 부딪혀 턱하고 쓰러진다. 어린 코끼리들은 눈이 동그래져 바라본다. 몇 톤(t)이나 되는 육중한 악어가 가모장 코끼리의 코에 낚여 그로기 상태가 된다.

그렇다. 땅 위 사자가, 물 속 악어가 유일하게 조심하는 존재가 바로 가모장 코끼리다. 신중하고 민감한 할머니 코끼리는 ‘수륙양능’이다. 어디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아내서 무리를 지킨다. 다른 동물들과 전투가 벌어질 때 할머니 코끼리는 늘 선두에 선다. 무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의 힘을 낸다. 그래서 가모장 코끼리가 세상을 뜨면 무리는 중심을 잃고 쩔쩔맨다. 다행히 후계자를 키워놓은 경우는 딸 중의 하나가 그 역할을 잘 계승하기도 한다.

가모장 코끼리는 힘든 시기를 살아온 우리 민족의 어머니를 닮았다. 일제강점기와 광복의 날, 이어진 6·25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사라진 남편과 아버지의 자리를 감당한 우리 어머니들이다. 한 매체에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왜 실패했나’라는 기사가 실렸었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었지만 문제는 서양 페미니즘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했다는 데 있었다. 서양 여성의 삶과 한국 여성의 삶은 전혀 다르다. 한국 어머니들의 품위와 기개를 다른 나라·다른 문화권에서 이해하기 힘들다. 코끼리 가모장처럼 가족을 먹이고 지키지만 군림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여성상은 ‘어머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장년 가부장 남성들도 ‘어머니’란 단어 앞에서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연원은 ‘웅녀’다. 웅녀는 단군신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며 한국 여성의 원형이다. 웅녀의 기상이 이어져 한국 여성의 기개가 되었다. 무리를 지키는 코끼리 가모장처럼 ‘웅녀(어머니)’들이 대한민국을 날렵하고 민감하게 지키고 자식들을 길렀다.

코끼리 가모장의 지혜와 희생은 동물 사회에서 화제다. 지금은 생물학적 성(性)보다 ‘젠더’가 중요한 시대다. 정치사회 지도자의 성별이 여성인지 남성인지가 중요치 않다. 그 리더십의 성격이 핵심이다. 2023년 연초에 코끼리 가모장 리더십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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