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마지막 잎새가 남아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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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겨울을 나는 가슴 따뜻한 노랑잎댕강의 자식 사랑
정치는 사람들 부모 마음으로 국민 아끼면 될 터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2-09 11:29:00

깊은 겨울날 아파트 단지 작은 정원을 걷다 보면 말라 버린 갈색의 잎을 촘촘히 달고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소설 ‘마지막 잎새’를 생각나게 하는 나무다. 폐렴으로 죽을 위기에 놓인 여류화가 존시는 창밖 담쟁이덩굴을 바라보며 그 잎이 모두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웃에 사는 원로화가가 그 사연을 알게 되고 비바람이 심한 밤에 밤새도록 한 장의 잎새를 그려 둔다. 존시는 그 그림 때문에 살아난다. 마지막 잎새는 딱 한 장이지만 이 나무는 많은 잎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이 자연의 잎은 가을에 할 일을 미처 끝내지 못한 지각생일까, 아니면 생의 희망을 놓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떨구지 못한 잎인가 궁금해졌다. 학교에는 지각생이 한두 명 정도 있지만 이 나무는 잎 전체가 지각생이니 지각나무란 말인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 잎들은 모진 바람에도 끄떡없고 첩첩이 쌓인 무거운 눈도 용케 견디고 있다. 인내와 집착의 끝판왕이다. 점점 궁금해졌다. 이 이파리의 비밀은 무엇일까? 왜 그들은 남들처럼 가을 낙엽을 훌훌 벗고 가뿐한 나목으로 겨울을 나지 못하는가? 다가가 잎을 잡아 보면 얼마나 단단하게 가지에 붙어 있는지 손에 바짝 힘을 주어야 겨우 떨어진다.

식물 전문가인 지인에게 물어보고 의문은 한순간 풀렸다. 그 잎들은 아직 씨앗을 품고 있었다! 씨앗은 사람처럼 조숙하기도 만숙하기도 하다. 조숙한 씨앗은 이미 원가지에서 싹을 내고 뿌리도 만든 채로 대기하고 있다가 얼른 바람을 잡아타고 엄마나무와 작별하기도 한다. 반면에 엄마 품에서 겨울을 나는 씨앗도 있다. 이 경우 아이들이 독립하지 않았으니 엄마나무는 한가한 노년을 보낼 수 없다. 씨앗(꽃)을 덮어 줄 잎들도 아직은 땅으로 보내 줄 수 없다.

이 학교에는 방학이 없다. 대학의 계절학기처럼 품어야 할 학생이 많은 탓이다. 그래서 홀가분한 건너편 나목(裸木)을 부러워하면서 혹독한 겨울을 참고 버티어야 한다. 인간이나 나무나 엄마란 참으로 강인하다. 남의 자식들은 다 독립했지만 내 자식은 아직 엄마 품이 필요하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날아갈세라 깨질세라 호호 불며 씨앗들을 잎 속에 숨겨 두고 있는 것이다.

비밀을 알고 나서 이 엄마들을 보니 마음이 애틋하다. 자식을 보호하고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려는 부모의 마음은 아무도 말릴 수 없나 보다. 동양의 현자들은 정치를 ‘백성의 부모 노릇’이라고 했다. 동양에서 나라(國)는 곧 가정(家)의 개념이다. ‘nation state’는 국가로 번역되었고 아버지와 임금은 같은 위상에 놓여졌다. 둘 다 막중한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직책이다. 북한에서는 이 전통을 이용해서 ‘어버이 수령’이란 말도 만들어 냈다. 그 ‘어버이’는 유감스럽게도 자식(백성)을 먹이는 데 전혀 관심이 없지만 말이다.

이번 겨울은 정말 춥다. 난방비가 2배는 올랐다. 잘 때만 난방을 하는데도 20만 원 넘게 더 나온 걸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각종 공공요금도 인상되니 봄이 되어도 추울 것이다. 보일러를 틀지 못하고 전기장판에 의존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확실하게 난방비가 오른 이유는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의 국제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천연가스나 원유 가격은 전쟁 같은 복합적인 요인에 항상 무방비 상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자원공급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조정 역할이 꼭 필요하다. 그것은 정부가 가지는 권리이자 의무다. 값이 올랐으니 어쩔 수 없이 더 내라고 하는 국가의 위기대처 능력에 의문이 든다.

부모란 게 뭔가, 자식이 배고플세라 추울세라 먹이고 입히는 게 부모의 할 일 아닌가. ‘미리’ 살피지 못하여 ‘이미’ 배고프고 추웠다면 그때라도 살피고 챙겨 주는 게 부모 아닌가. 아파트 정원 겨울엄마의 모습이 하도 신통하여 이름을 물어봤다. 팻말에 이렇게 쓰여 있다. ‘노랑잎댕강. 5월에 엷은 홍색 꽃이 피며 열매는 9월에 익는다.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는다.’ 내가 늦봄마다 즐겼던 그 예쁜 꽃이 맞다. 9월에 익은 씨앗을 다음해 봄까지 품고 있는 나무! 나무도 부모노릇에 힘겹다.

그렇게 부모 노릇과 정치는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단순하다. 소중한 내 자식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보호하는 것이다. 동양은 일찍이 그것을 알았다. 자연의 원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정치하는 사람이 다른 것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국민을 자식처럼 아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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