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이룬 38세 장원준의 1승은 ‘값진 1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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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과 부진 속에 은퇴 압박 털어 내고 눈물
초보 감독 이승엽의 존중과 배려 덕에 가능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5-31 08:02:00

얼마 전 서울 잠실구장에서는 프로야구 두산이 마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듯한 세리머니가 펼쳐졌다. 삼성과의 정규리그 경기에서 승리했을 뿐이지만 두산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은 하나된 기쁨을 누렸다. 38살의 베테랑 좌완 투수 장원준이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승리투수가 된 것을 모두가 자축하는 행사였다. 선수들은 대선배인 장원준의 승리를 축하하며 물을 뿌리며 헹가래 쳤다.

2018년 5월5일 대(對) LG전 이후 무려 1844일 만에 승리투수로 통산 130승을 쌓은 장원준도 그간의 부진과 굴곡이 떠오르는지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오래 기다린 만큼 값진 승리였다. 후배들이 뿌려 준 시원한 물은 축하와 함께 그간의 부진을 씻어 내라는 의미의 성수(聖水)가 아니었을까. KBO리그 명문팀 두산 선수들의 단합된 힘과 끈끈함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달리 두산이 아니었다. 두산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7년 연속 한국 시리즈 진출(3회 우승·4회 준우승)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했던 구단이다.

마침내 130승 고지를 밟은 베테랑 장원준의 뒤에는 ‘국민타자’로 활약하던 이승엽 두산 감독의 존중과 배려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먹으면서 쇠락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요 섭리다. 특급 스타도 전성기가 지나고 부진이 계속되면 ‘은퇴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초보 감독인 이승엽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두산 감독으로 부임한 지난해 11월 면담이 대기록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그 자리는 부진을 거듭하며 은퇴 위기에 몰린 장원준에게 이승엽 감독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 자리였다. 129승을 올린 장원준 정도 되면 구단이 거취를 결정할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라는 게 이승엽 감독의 지론이었다.

그동안 팀 공헌도가 남달랐던 장원준에게 은퇴를 종용하는 건 맞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이승엽 감독은 다른 팀을 알아보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장원준을 열심히 독려했다. 그는 같은 시기에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장원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장원준 스스로도 현역으로 더 뛰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그래서 올해도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특별히 예우해 준 것은 아니다.

운동 선수가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다다르면 신체적·정신적 변화가 오기 마련이다. 20대 시절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과거에 얽매여 전성기 시절 몸에 밴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모든 게 급락할 수밖에 없는 게 스포츠의 세계다. 자신의 상태를 냉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연습 방법과 자세를 찾으면 기량이 떨어지는 시간을 더디게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 두산 선수들이 오랜만에 승리투수가 된 장원준(오른쪽 두 번째)에게 축하의 의미로 물을 뿌려 주고 있다. 연합뉴스

2010년대 중반 두산 왕조를 이끌었던 장원준이지만 부진과 부상의 신음 속에서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장원준은 군에 입대한 2년을 빼고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만드는 등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으나 2018년부터 하락세를 탔다. 2019~2022년에는 4년간 겨우 67경기 등판에 그쳤다. 부상에 발목이 잡혔고, 이는 결국 부진으로 이어졌다.

국가 대표 에이스 역할도 한 장원준은 전성기 시절을 잊고 신인과 같은 초심으로 돌아가 2023시즌을 준비했다. 호주 스프링캠프 때부터 열댓 살 어린 후배들 못지않게 구슬땀을 흘렸고, 퓨처스 리그에서는 코칭 스태프의 제안을 받아들여 신 구종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오기와 투지가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던 베테랑은 절치부심 노력 끝에 보란 듯이 부활해 KBO리그의 다른 베테랑들에게도 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장원준은 서울 출신이지만 어렸을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부산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지명된 그는 2014년 자유계약선수(FA)로 두산으로 이적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도 맛볼 수 있었다. 신인 시절에는 184cm의 큰 키에 몸무게가 70kg도 안 나가는 깡마를 체구였지만 몸집을 키우면서 구속이 살아났고, 에이스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같은 두산 팀의 후배였던 박건우(현재 NC 다이너스 외야수)의 누나와 결혼한 장원준은 가정적이며 자상한 성격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기도 하다.

장원준의 1승은 KBO리그에 속한 베테랑들 전체를 향한 격려의 메시지였다. 매주 6경기씩 7개월 넘도록 장기 레이스를 펼치는 프로야구에서 어린 선수들만 갖고는 시즌을 치를 수 없다. 경기에 나가서 잘 치고 잘 던지지 못하더라도 더그아웃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게 베테랑의 역할이다. 선·후배 간에 유대관계가 좋지 않으면 좋은 팀이 될 수 없고, 반대로 베테랑이 중심을 잡아 주면 좋은 팀이 될 수밖에 없는 게 단체경기인 프로야구의 생리다.

‘국민타자’로 불리던 천하의 이승엽도 나이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를 실력으로 깼던 주인공이다. 장원준의 속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승엽 감독이다. 장원준은 앞으로도 선발 투수로 나설 전망이다. 팬들과 후배들에게 베테랑으로서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만이다. 그의 선전과 롱런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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