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우크라이나 재건(再建)사업 참가 전제 조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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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국내가 다른 이중적 관행으론 참여하지 않는 게 상책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는 국민 생명과 안전은 국가의 책임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25 06:32:00

약 30년 전의 일이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에 이어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연이어 붕괴했다. 경천동지할 만한 일이었지만 해외에서도 경악과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필자는 당시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있었다.

현지에서는 말레이시아의 자부심이자 랜드마크로 지구촌 최고층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88층 452ｍ)’ 상량식 실황 중계를 코앞에 둔 시점이라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졌다. 41층에서 두 동의 건물을 타워 브리지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쌍둥이 빌딩의 한쪽은 우리 측, 다른 한쪽은 일본 측 건설회사가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인테리어 공사는 일본 측이 맡았지만, 상량 브리지는 한국 측이 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 매스컴은 연일 자국 정부에 맹비난을 퍼부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친한파이자 한국을 배우자는 슬로건까지 내걸었던 마하티르 정권에게 엄청난 시련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한국과 이면 거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나올 정도였다. 상당한 진통 끝에 내놓은 해명이 걸작이었다. 한국 국내를 제외한 해외에서 한국 건설업체가 시공한 빌딩이 잘못된 사례가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까스로 현상을 무마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봤던 상량식이 무사히 진행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공사는 마무리되었지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수두룩하다. 우리 건설업계의 시공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에 대해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뒷맛은 개운치 않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글로벌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쟁은 진행형이지만 미세하게나마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는 징조가 감지된다. 올해 내에 파일럿 사업이 추진될 것 같은 시그널이 나온다. 특히 서방 국가들이 군침을 삼키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와 관계를 돈독히 하는 모양새다.

미국과 서유럽 등 나토 회원국들이 이권을 선점하려고 물밑 작업을 서두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이외 국가로는 일본을 위시하여 우리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는 중이다. 과거 전례를 보면 당사국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해 나눠먹기 식으로 진행될 공산도 크다. 이 대열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물론이고 서방과 긴밀한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정부만으로는 역부족이고 민간 기업이 대거 참여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자체적으로 재건에 필요한 소요 예산을 충당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서방의 자금줄과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참가하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합종연횡을 통한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 접경국인 폴란드나 튀르키예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독일·영국 등 실질적 힘을 가진 국가와 한배를 타야 한다.

우리에게 강점이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수주 전략을 촘촘히 짜야 한다. 벌써 재건 사업 규모가 2000조 원을 초과할 것이라는 설까지 시중에 나돈다. 그러나 절대 만만치 않다. 다행히 경쟁국인 중국의 참여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유리한 국면이다. 그동안 폴란드를 비롯한 헝가리 등에 축적해 놓은 우리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

밖에서는 우리를 원하는 국가나 프로젝트가 많다. 그만큼 우리 기업이 쌓아놓은 경험과 실적이 충분히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설계·시공·감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완벽하게 지키지 않으면 시장에서 단번에 패퇴 당한다. 어떠한 부정이나 비리가 끼어들 공간이 전혀 없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러나 국제적인 지명도가 높은 대형 건설업체들이 국내에서 하는 행위들을 보면 해외와 판이하다. 총체적 부실로 아직도 공사 도중에 아파트가 무너지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발생한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이런 무모한 짓들이 거리낌이 없이 자행된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담합이 꼬리를 문다.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누가 말리나. 당연히 국익을 위해 환영할만한 일이고 우리 기업의 선전을 기대한다. 다만 응원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이제는 국내와 해외에서의 전혀 다른 오랜 이중적 관행으로부터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한 치 양보도 없는 일벌백계로 범죄를 저지른 무리에 대해 시장에서 영원히 퇴출하는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한다. 해외에선 이런 무모한 담합이 없다고 해서 이들을 용인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인재(人災)로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고 결과에 대한 분노와 한탄만으로는 거대한 담합의 고리를 자를 수 없다. 이 전선에 타협은 없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국가도 이들과 한통속이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다.

김상철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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