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택칼럼] ‘가족의 가치’ 느끼는 한가위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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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달을 보니 부쩍 고향이 그리워져…”
실향민 살아생전 가족 만나고 고향에 갈 수 있길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9-25 00:02:40

추석이 코앞이다. 이날만큼은 조용했던 고향이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친지들로 떠들썩해진다. 하지만 아픈 마음으로 추석을 맞는 이도 적지 않다. 타향·타국 객지에서 사는 이들, 북녘에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과 탈북인 등이 그렇다.

하긴 인간이 살면서 어찌 고향에서만 살겠는가. 한시 몇 편을 감상해 보자. 다음은 고려 말 조선 초 학자 성석린의 시 ‘고성에서 동생에게 부침(在固城寄舍弟)’이다. “집 편지 글자 한 자 천금에 맞먹으니(家書一字抵千金)/ 밤을 맞아 달을 보며 어버이 생각에 눈물 흘리네(中宵見月思親淚)/ 한낮에는 구름 보니 동생 생각만 나네 그려(白日看雲憶弟心)….”

부모를 그리는 마음은 여성에게서 더욱 섬세함이 느껴진다.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시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봄(踰大關嶺望親庭)’엔 어버이를 그리는 애틋함이 진하게 배어 있다. “자상하신 내 어머니, 백발로 강릉에 계시는데(慈親鶴髮在臨瀛)/ 이 몸은 서울 향해 혼자 떠나네(身向長安獨去情)/ 고개 돌려 북쪽 마을을 때때로 보니(回首北村時一望)/ 흰 구름 흘러가는 저 아래 저무는 산은 푸름을 간직하고 있구나(白雲飛下暮山靑).”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다 같다. 중국 당나라 때 문인 옹도는 ‘그리운 고향’을 이렇게 읊었다. “어쩌다 나그네 신세 속세에 떨어졌다네(偶然爲客落人間)/ 가을 되어 달을 보니 부쩍 고향이 그리워져(秋來見月多思歸)/ 새장 열고 새를 날려 보냈네(自起開籠放白鵬).”

객지에 사는 나그네가 가을 달을 보고 불현듯 향수에 젖어 부른 사향가(思鄕歌)다. 하찮은 일, 작은 벼슬 등에 얽매여 부모형제 살고 있는 고향조차 찾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면서 새장에 갇힌 새도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여겨 새를 놓아 주게 됐다는 내용이다.

가을빛이 짙어지고 있다. 아침저녁 선선해진 초가을 바람 속에서 염천(炎天)을 견뎌온 사과며 대추·산수유를 비롯한 갖가지 열매가 색색으로 물드는 것은 자연의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가을은 추수라는 상징어가 말해 주듯 한 해의 결실을 거두는 의미에서 자신을 있게 한 부모를 떠올리게 한다. ‘시성(詩聖)’ 두보의 시에선 가을날 고향을 생각하는 정회가 진하게 느껴진다. 시 ‘강한(江漢)’을 맛보자.

“장강과 한수를 떠돌며 고향 그리움 깊으니 천지간에 답답한 선비로구나(江漢思歸客乾坤一腐儒)/ …/ 석양에도 마음은 여전히 벅차오르고 가을바람에 병마저 나아지려 하네(落日心猶壯秋風病欲蘇)….”

두보와 동시대를 살면서 쌍벽을 이룬 ‘시선(詩仙)’ 이태백 또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애절한 마음을 노래했다. 그의 시 ‘정야사(靜夜思)’다. “침상 앞 스며드는 밝은 달빛(床前明月光)/ 땅에 내린 서리가 아닌가 생각했네(疑是地上霜)/ 고개 들어 산 위 밝은 달을 바라보고(擧頭望明月)/ 그만 머리 숙여 고향을 그리네(低頭思故鄕).”

맑고 소박하다. 고요한 달밤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 홀로 타지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나그네. 밤이 되니 문득 잊었던 고향 생각이 절로 나 이렇게 애틋한 시를 썼다. 나흘 있으면 팔월대보름, 추석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처럼 모두들 넉넉하고 소원성취하면 좋겠다. 누구보다 이산가족들이 고향의 혈육들을 맘껏 껴안고 담소 나누길 소원한다.

부모형제는 천륜(天倫)이다. 혈통으로 연결된,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인 것이다. 가족의 소중한 가치에 눈 뜨게 된다. 부모는 뿌리이고 생명의 원천이기에 모심에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된다. 하지만 적잖은 이들은 부모 생존 시엔 ‘큰 자리’를 모르고 살다가 부모를 먼저 보내거나 타향 객지살이를 오래 하면 부모와 고향 생각이 사무쳐 눈물을 훔치곤 한다.

살아생전 가족을 만나고, 고향에 가 볼 수 있을까. 여느 사람들은 명절이면 귀성길에 오르고, 고향이 안겨 준 정을 듬뿍 안고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북녘에 고향을 둔 1000만 실향민은 명절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북한이 자멸을 부르는 ‘핵과 미사일’에 의존하는 선군(先軍) 정치를 강화해 개혁·개방을 막는 담장을 더 높고 강하게 쌓아 올리고 있는 현실이기에 자유 왕래는 기대난망이다.

이러니 올 추석에도 이산가족들은 임진각에서 ‘재이북 부조 합동경모제’를 지낼 것이다. 그 심정이 오죽할까. 참담함 그 자체일 터이다. 눈물의 망향가만 부를 뿐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스카이데일리 skyedaily@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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