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지금 당신 인생은 어떤 계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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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사귀 떨구기와 열매 맺기는 모두 가을 환절기 이별
식물에게 사계절이 있듯이 인생도 나이테가 있는 법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30 06:30:43

노래진 햇빛·쌀쌀한 바람·부슬거리는 비가 가을의 심장으로 향한다. 추위 타는 사람들은 패딩까지 꺼내 입었다. 환절기다.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가나 했는데 어느 사이 가을에서 겨울로 향하고 있다. 차가운 기운이 돌면 나뭇잎은 속내를 드러낸다. 엽록소에 가려져 볼 수 없던 색소(노랑·빨강)를 방출하기 시작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때도, 여름에서 가을로 옮겨 타는 때도 환절기는 힘들다. 식물은 꽃 피우느라 잎 버리느라 힘들고 사람들은 기후에 적응하느라 힘들다.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인생 사계를 자연에 투영한 사람들은 봄에는 기뻐하면서 가을은 슬퍼한다. 가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이별’이다. 식물들이 두 가지 이별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잎을 떨구는 것, 또 하나는 열매를 내보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별에 인간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열매가 수확되는 것은 즐거움이고 잎이 떨어지는 것은 불행이다.

인간이 합리적 존재는 아닌 것 같다. 하긴 가을철 식물의 별리야 다음 봄을 기약할 수 있지만 인생의 가을은 곧장 겨울과 죽음을 예고하는 계절이니 봄처럼 좋아할 일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인생 가을의 문턱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요즘엔 봄보단 가을에 관심이 많다. 몇 년간 병치레도 남부럽지 않게 하여 잎 색깔이 변하고 있고 열매(자식)들이 떨어져 나가려고 무진 애쓰는 모습도 담담히 지켜보고 있다.

인생 환절기를 관통하고 있다. 환절기 중에 봄이 확장하는 때라면 가을은 갈무리하는 때이다. 씨앗을 익히고 잎을 떨어뜨리는 미션이 제대로 완수되지 못한다면 식물은 얼마나 비참할까? 열매가 채 익기 전 낙과가 되면 일 년 내내 노력한 후손 양육 프로젝트는 허사가 되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지 못할 것이고, 애써 일한 잎들을 떠나보내지 못한다면 그들과 함께 무겁고 힘든 겨울날을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나무들이 나목으로 변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겨울날 소담한 눈이 잎을 뒤덮으면 가지가 버틸 수 없어 부러져 버리기 때문이다. 상록수 잎들이 뾰족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간혹 누렇게 말라 버린 잎을 그대로 달고 사는 나무들도 있는데, 그 사연인즉슨 씨앗이 아직 엄마 품에 있기 때문이다. 잎들이 할 일이 남은 것이다. 그들은 봄에 떠나보내야 하는 씨앗을 겨우내 추위와 바람에서 막아 준다.

▲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인생 사계를 자연에 투영한 사람들은 봄에는 기뻐하면서 가을은 슬퍼한다. 필자 제공

인생으로 돌아와 보자. 가을 환절기는 후손을 성공적으로 독립시키는 때이다. 혼란스럽고 힘든 것이 마땅하다. 엄마 품밖에 모르던 열매들이 가지에서 조금씩 분리되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씨앗과 잎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지들은 얼마나 쓸쓸하고 슬프겠는가? 법적으로는 성년의 나이가 규정돼 있지만 자연에서는 똑 떨어지는 게 없다.

그들(열매)이 익었을 때가 떠나는 시기이다. 과일이야 육안으로 색깔을 볼 수 있으니 수확하는 때를 알지만 인간은 그럴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어떤 열매는 아주 조숙하고 어떤 씨앗은 만숙한다. 엄마 나무는 조숙한 놈을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되고 아직 익지 못한 만숙성 씨앗을 떼어 버릴 수도 없다. 하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열심히 서둘러 키워서 자연의 리듬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그러고는 겨울을 맞이해야 한다.

이 별리와 새로운 시작을 우리는 평생 지나왔다. 태어날 때 엄마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고, 죽을 때 자연의 품 안으로 향한다. 집을 떠나 학교에 갔고 기한이 차니 졸업했다. 다시 상급학교로 진학하고는 얼마 후 그곳에서 떨어져 나온다. 애초에 없던 자녀가 생겨났고 어느 사이 그들이 독립한다.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짝을 만나 결혼했는데 때가 되니 누군가가 먼저 떠난다. 우리말에 ‘아홉수’가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그 시기가 10년 주기의 환절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홉수를 잘 넘기면 다음 10년으로 연결되고 그렇지 못하면 마감을 맞는다. 사주명리학상의 대운도 10년 단위이다. 인생의 나이테인 셈이다.

국가와 사회에도 계절이 있고 환절기가 있다. 몇 년 단위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나라마다 단체마다 성쇠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계절은 무엇일까? 폭죽 같은 꽃을 피워 올리고 싱싱한 잎을 내미는, 늦봄에서 여름으로 옮겨 가는 시기가 아닐까. 그런데 식물이 한창 성장할 무렵에 경계해야 할 것은 많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나쁜 친구와 각종 유혹이 다가오듯 식물에도 연한 잎과 가지를 노리는 곤충과 초식동물들이 몰려든다.

지금 당신 인생은 어떤 계절인가? 지금 우리 가정과 단체는 어떤 시기인가? 한창 성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마주한 위협은 무엇인가? 환절기에 짚어 본다. 아이들에게도 인생 환절기를 알려 주고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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