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222] 백정 박성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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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과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27 06:30:30

1898년 5월에 서재필이 미국으로 돌아가자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은 윤치호가 이끌게 되었다. 7월이 되자 독립신문은 격일간지에서 일간지로 자랐다. 독립협회 지도자들은 ‘의회 설립’을 추구했고 수구파 친러정부의 퇴진과 동시에 개화파 정권의 수립을 꿈꾸었다.

결국 그들은 10월1일부터 경운궁 앞에서 철야 상소 시위를 벌였다. 광무 황제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박정양과 민영환이 중심이 된 개혁파 정권이 출범되었다. 개혁파는 여세를 몰아 10월 하순에 종로에서 관민공동회를 열었다. 시민들과 관리들의 공개협의의 장이었다.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의정부 참정 박정양과 대신들이 참가했다. 회장인 윤치호의 취지 설명과 박정양의 인사가 있고 나서 백정인 박성춘의 감동적인 연설이 있었다. 단상에 올라간 그는 힘있게 연설을 시작했다.

“이 사람은 대한에서 가장 천하고 무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충군애국의 뜻은 대략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나라를 이롭게 하는 길은 관민이 합심한 연후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차일(볕을 가리기 위해 치는 포장)에 비유하면, 한 개의 장대로 받치면 역부족이지만 많은 장대를 합해 받치면 매우 공고해집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관민이 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만만년 이어지게 합시다.”

박성춘은 1862년 서울 관철동에서 백정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자라서 백정이 되었다. 1894년 중병에 걸려 위기에 처했을 때 아들이 다니던 곤당골 예수교학당의 무어 선교사가 제중원 의사이자 고종 황제의 시의였던 에비슨 박사를 모셔와 치료해 준 후 살아났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백정이 황제의 시의에게 치료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겨 박성춘은 거부하였으나 에비슨 박사의 의술과 정성스러운 치료로 회복되었다. 그는 무어 선교사의 곤당골교회에 출석하여 예수교인이 되었고 활발한 전도 활동을 펼쳤다. 교회에는 왕족을 비롯한 양반 교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백정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하며 박성춘을 다른 곳으로 보낼 것을 요구하였다.

무어 선교사는 ‘만민평등’을 내세워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양반 교인들은 홍문동에 교회를 따로 세웠다. 장로가 된 박성춘은 서울·수원·평택·양주·포천 등지의 백정 마을을 다니며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백정과 천민들로 곤당골교회가 가득 찼다. 이어 경기도 수원에도 백정들이 교회를 세웠다. 당시는 백정들이 정부 칙령만 믿고 도포를 입고 밖에 나갔다가 구타를 당하는 일이 빈번한 시기였다. 박성춘은 1895년 4월 곤당골 예수교학당의 무어 선교사의 도움으로 백정 차별제도 철폐를 재확인해 달라는 탄원서를 내각에 제출하였고, 5월에 정부는 백정차별금지 칙령을 한 번 더 발표했다.

박성춘의 연설 후 관민공동회는 황제에게 올리는 ‘헌의 6조’를 채택했다. 광무황제는 이 헌의를 받아들였다. 헌의 2조는 국왕의 자문기관인 중추원을 의회(상원)로 만드는 것이었다. 백성이 직접 선출하는 하원은 11월5일에 독립협회에서 민선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다. 관민공동회는 대한의 백성들이 근대적 시민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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