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아버지를 볼 수 있을까.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기억에 없는 자식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가족의 배웅을 받지 못하겠지만 아버지의 아내 천길자와 아버지의 교회를 물려받을 달봉이, 그리고 내 아내와 아이들이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볼 것이다.
아버지는 침대 끝에 앉은 채 허리를 접어 벗어 놓은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으려 했다. 많은 걸 잃었어도 몸에 밴 습관만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쇠약해진 몸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냥 두세요. 제가 할게요.”
나는 몸을 굽혀 슬리퍼를 똑바로 놓아 주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세계를 침범하지 말라’며 항변하듯 세차게 나를 밀쳤다. 방심하고 있던 나는 엉겁결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기운은 좋으시네.’
무심히 일어서며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데 나를 밀어내면서 아버지의 손에 잡힌 머플러가 내 목에서 주르륵 풀렸다. 침대에 앉아 있던 아버지 손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떨어졌다. 아버지가 빤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버지와 나의 시선이 부딪쳤다. 가만히, 아버지가 몇 번 눈을 깜빡거렸다.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듯, 커다랗게 뜬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흠칫, 나는 뒤로 물러섰다.
‘누구세요?’ 하는 것도 같았고 ‘무훤이니?’ 묻는 것도 같았다. 저 눈!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쥐었다. 폴라 스웨터가 목을 충분히 가렸을 터였다. 그러나 조금 전 화장실 거울 속에서 본 흉터를 혹시라도 들킬세라 긴장한 탓이었다.
아버지의 눈빛이 흔들렸다.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적을 향한 맹수의 맹렬한 적대감이었다. 아버지 눈에는 내가 목을 스스로 조이는 것처럼 보였으리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간 것과 눈을 부릅뜬 아버지가 침대에서 일어서더니 와락, 내게 달려든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아버지의 손바닥이 내 뺨을 세게 후려쳤다. 놀란 내가 뺨을 쥐고 또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숨을 쉬어.”
아버지가 눈을 크게 부릅뜨고 내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숨을 쉬란 말이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아버지의 완력에 밀려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던 나는 휘청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넘어진 내 몸을 올라타고 아버지가 나의 양 뺨을 철썩철썩 때리며 외쳤다.
“숨을 쉬라니까!”
아버지의 절규가 간절해질수록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복도에 있던 노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재미있다며 손뼉을 쳤고 이겨라, 이겨라 소리치며 응원했다. 보호사들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숨 쉬는 걸 멈춰선 안 돼!”
그들이 힘을 합쳐 내게서 떼어 내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죽을힘을 다해 악을 썼다. 어머니를 뿌리던 그날처럼.
“숨을 쉬어야 해! 숨을!”
손발이 묶이고 진정제를 맞은 뒤에도 아버지는 마법의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철창에 갇힌 짐승 같은, 슬픈 눈빛이었다. 스르르 감기던 두 눈에서 흘러넘친 눈물이 아버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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