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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환자와 가족의 절박함을 파고든 ‘바나듐쌀’의 허상이 드러났다.
당뇨병 치료, 혈당 강화 등 효능을 내세우는 바나듐 쌀의 효과를 제시하는 핵심 근거로 인용된 연구자 임상 결과를 먼저 살펴보자.
25년 전인 2000년에 브리검 여성병원 즉 하버드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이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된다. 해당 임상은 소규모 임상으로 단 16명의 2형 당뇨병 환자가 참가한 가운데 효과를 관찰했다.
연구에서는 금속원소 바나듐이 체내 흡수되는 비율이 낮다 보니 생체이용률을 높인 형태인 바나딜 황산염이 활용됐다. 6주간 진행된 짧은 임상에서 참가자들은 하루 75mg~300mg의 바나딜 황산염을 투약받았다. 바나딜 황산염에 바나듐 함량이 약 30% 조금 넘는 정도 되니 하루에 23~93mg을 복용한 셈이다.
바나듐 쌀 판매처가 표기한 함량은 쌀 1kg당 바나듐 최고 용량이 3.8mg이다. 연구에서 제시한 용량을 쌀로 섭취하려면 대략 하루에 7~25kg를 먹어야 임상시험 조건에 부합한다.
함정은 또 하나 숨어 있는데, 생체이용률을 높인 바나딜 황산염을 복용했으니 체내 흡수율이 낮은 바나듐을 포함한 쌀을 임상시험 조건에 맞춰 섭취하려면 최소 두세 배 이상 섭취해야 한다.
임상 결과를 보면 75mg 군에서 효과를 제시한 참가자는 없었고 150mg/일은 5명 중 3명, 300mg/일은 8명 중 4명에서 공복혈당과 당화혈색소(HbA1c)가 유의하게 낮아졌다. 간에서 포도당 생성 억제나 전신 인슐린 감수성 개선은 일관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극적인 혈당 개선 효과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
부작용으로는 위장관 장애 등이 보고됐고 고용량 군에서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졌지만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HDL도 함께 줄었다.
상술의 근거가 되는 또 다른 임상 자료는 2013년 이란의 세라즈 의대 연구진이 1형 당뇨병 환자 14명을 대상으로 30개월 동안 하루 3회 50~100mg, 즉 하루에 바나딜 황산염을 150~300mg 투약한 결과다. 연구진은 공복혈당이 평균 36% 감소하고 인슐린 필요량이 30% 줄었다고 보고했다.
임상연구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드라마틱하게 읽힐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일단 참가자 수가 적고 대조군 자체가 없었던 만큼 한계가 뚜렷한 연구결과다. 소규모 임상으로 당뇨치료 또는 보조요법으로 가능성을 타진한 수준이다. 이 외 연구 결과 역시 설치류 대상이거나 극소수 인간 대상 임상 결과만 존재한다.
해당 임상의 투약 용량 역시 150~300mg로 바나듐 쌀로 같은 용량을 투약받기 위해서는 최소 하루에 쌀 한가마니 정도는 섭취해야 한다. 그마저 일관된 효과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한 소규모 임상결과에 의존해야 한다.
쌀에 바나듐의 함량을 높인다고 낮은 생체이용률를 극복되지 않고 효과를 확신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장기 복용에 대한 체내 축적·배설 경로 등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 연구 결과들이다. 대규모 임상을 통해 각국의 규제당국에 승인을 받아 수십 년간 판매된 의약품도 뒤늦게 확인된 부작용 등으로 시판중단된 사례를 고려해보면 어떤 부작용과 독성을 야기할 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초기 연구 단계다.
관련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바나듐 쌀’과 같은 농산물의 과도한 부당광고를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에 나섰다.
식약처는 최근 농산물에 특정 원료나 성분을 첨가해 당뇨병 치료, 혈당 강하 등 질병 예방·치료 효능을 내세우는 광고가 확산되면서 소비자 오인과 혼동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관계 부처와 소비자단체, 생산자단체와 협의해 제도 개선안을 조속히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은 식품에 대해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효능을 표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농산물에 대해서는 2005년 대법원 판례 취지를 반영해 2009년부터 예외적으로 이러한 광고를 부당 표시·광고로 보지 않고 있다.
이 예외가 기능성 농산물 광고의 회색지대를 만들었고, ‘바나듐 쌀’ 같은 사례는 법적 단속을 비껴가게 한 하나의 사례다.
소규모 임상 결과에 대해 업계의 의도된 오독을 통해 이를 소비자를 현혹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암환자·만성질환자·고령자에게 파고드는 과학의 탈을 쓴 기능성 식품의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서 희망에 기댄 소비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소비자가 기댈 것은 업체의 광고가 아닌 정부의 철저한 사전 검증과 사후 감시다. 소비자의 비판이 거세지자 일부 업체들은 효능 광고 내용을 수정하거나 반품처리하고 있으나, 여전히 온라인에서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식약처의 보다 엄격한 관리와 현명한 소비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이와 함께 기능성 식품 시장의 급성장 속에서 ‘의학의 외피’를 쓴 상술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소비자 스스로가 제품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고, 과학적 근거를 따져보는 태도가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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