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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당태종의 눈알을 뺀 안시성의 정확한 위치

사서 기록 바탕으로 장소 분석하면 산서성에 있는 것으로 나와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8-04-11 12:16:40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추앙받고 있는 당 태종 이세민의 눈알이 빠진 안시성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지금부터 사서기록으로 안시성의 위치를 추적해보기로 하겠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안시는 유주에 속한 요동군에 속한 현이다.
 
‘한서지리지’에는 “요동군은 진나라 때 설치했고 유주에 속한다”며 “ 5만5972 가구에 27만2539명 인구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양평(襄平), 신창(新昌),무려(無慮),망평(望平),방(房),후성(候城),요수(遼隊),요양(遼陽),험독(險瀆),거취(居就),실위산(室偽山),고현(高顯),안시(安市),무차(武次),평곽(平郭),서안평(西安平),문(文),반한(番汗),沛(패),답씨(沓氏)의 18현이 있다”는 기록이 이어진다.
 
안시현이 속해있는 위 요동군은 요서군의 동쪽에 있어야 한다. 허신의 ‘설문’에 전하기를 “수양산은 요서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사기 집해’에는 “마융이 말하기를 수양산은 하동지방의 포판에 있는 화산의 북쪽에 있고, 그곳은 황하가 꺾여 흐르는 곳이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따르면 요서군은 남쪽으로 흐르던 황하가 동쪽으로 꺾이는 지금의 산서성 서남부 영제시 일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동군은 요서군의 동쪽인 산서성 남부 운성시 일대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기록만으로는 더 이상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다.
 
 
▲ 대청광여도에 산서성 서남단 황하굴곡지점에 그려진 백이숙제의 묘 일대가 요서군[사진= 필자 제공]
 
‘신당서’ 열전145 동이전에는 “대요수와 소요수가 있는데, 대요수는 말갈의 서쪽 남산에서 시작되고 남으로 안시성(安市城)으로 흐른다. 마자수는 말갈의 백산에서 시작되고 색이 오리의 머리 색깔과 흡사하여 압록수라 부른다. 국내성 서쪽으로 흘러 염난수와 합해지고, 서남쪽으로 안시(安市)에 이르러 해로 흘러 들어간다. 평양성은 압록의 동남쪽에 있어 커다란 배로 사람을 건네고 믿음직한 참호 역할을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참고로 ‘한서지리지’에서의 마자수에 대해 “마자수는 서북에서 염난수로 들어가고 서남으로 흘러 서안평에서 해로 들어간다. 2개 군을 거쳐 길이는 2100리이다”라는 설명을 남겼다.
 
두 기록이 아주 비슷한 것으로 보아 안시는 서안평과 같거나 아주 가까운 곳임을 알 수 있다.
 
위 기록대로라면 국내성, 평양성, 안시성, 서안평이 모두 압록수변에 위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식민사학계는 압록수는 현 압록강, 국내성은 집안, 평양성은 평양, 서안평은 압록강 하구 단동으로 비정했다.
 
그런데 현재 국내로 비정되는 집안은 압록의 북에 있다. 평양성은 압록강이 아닌 대동강 변에 있고, 안시성 역시 압록수가 아닌 요하강변에 있다. 따라서 모두 ‘신당서’ 기록에 위배되기 때문에 잘못된 비정이라 하겠다.
 
▲ 신당서의 압록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산서성 분하 [사진=필자 제공]
 
그렇다면 진짜 압록수가 어디인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위에서 보듯이 압록수는 분명 서쪽으로 흘러가는 강이다. 한반도에는 서류하는 강이 흔하지만 중국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위 기록을 산서성 남부를 서류하는 분하에 대입하면 언급된 지명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략적인 안시성의 위치는 서쪽은 황화와 분하가 만나는 곳 동쪽은 분하가 서쪽으로 꺾이는 곳 그 사이 분하의 북쪽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그곳은 현 산서성 남부 운성시에 속해있는 하진시, 직산현, 신강현이다. 공교롭게도 설인귀 집과 아주 가까운 곳이다. 따라서 이곳 어딘가에 안시성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겠다.
 
안시성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결정적인 기록은 ‘태백일사 고구리국본기’ 기록이다. ‘태백일사 고구리국본기’에는 “‘자치통감’에서 말하기를 현토군은 유성과 노룡 사이에 있다. ‘한서’의 마수산은 유성의 서남쪽에 있다. 당나라 때 토성을 쌓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서의 노룡은 요서군에 속한 비여(肥如)이고 유성 역시 요서군에 속한 현이다.
 
요서군에 속한 유성의 서남쪽에 있는 마수산에 당나라 때 토성을 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토성이 유주의 요동군에 속한 안시성 앞에 당나라가 쌓은 토산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위 토성과 ‘신당서’와 ‘한서지리지’에 설명된 안시의 위치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마수산은 요서군의 상징인 이제묘와도 그리 멀지 않아 요서군과 접하는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 마수산에 대한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의 설명은 ‘신당서’와 ‘한서지리지’에서 언급한 안시성의 위치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는 “마수산은 산서성 신강현 서북 사십리. 속명 말머리 산으로 지금의 화염산이다”며 “산서성 신강현 서북 사십리는 화염산의 남단으로 남쪽에는 분하가 흘러가는 곳이다”고 기록돼 있다.
 
 
▲ 분하 북쪽 신강현에 위치한 난공불락인 절벽요새의 좌측이 안시성 [사진=필자 제공]
 
안시성의 위치가 정확히 밝혀지자 필자는 즉각 답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연인원 50만 명의 당나라 병사들이 2개월간 쌓을 정도의 토산이면 쉽게 없애지는 못했을 것이므로 아직도 뭔가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막상 직접 가서 보니 자그마한 흔적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이 아직도 생생하게 그대로 남아있었다.
 
유주에 속한 요서군의 상징인 백이․숙제의 묘를 찾았다. 요동군에 속한 안시성의 위치가 정확히 밝혀졌다. 낙랑군에 속한 패수(浿水)가 하남성 제원시를 흐르는 추수가 바로 격수임이 확인됐다. 우리 고대사의 주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라 산서성 남부라는 것이 100% 증명되었다 할 것이다. 
 
▲ 황하변에 있던 진장성이 만리장성으로 둔갑된 과정[사진=필자 제공]
 
위대했던 조선과 고구려에 밀려 황하 주변 하남성과 섬서성에서 조그맣게 웅크리고 숨죽이며 살던 중국은 명나라 영락제 때부터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을 자행함으로써 고대 중국의 땅이 산해관 만리장성 안쪽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동북공정을 통해 장성의 동단이 단동 호산장성까지였다는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안시성의 발견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이 얼마나 허황된 이론임이 밝혀졌다 하겠다.
 
그러나 일제식민사학을 계승한 강당사학계는 아직도 대륙을 지배했던 민족의 역사무대를 한반도 가두리 양식장으로 가두는 반도사관에 물들어 있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에서 설치한 조선사편수회처럼 스스로 민족혼을 말살하는 행위로서 이러한 일제의 잔재를 청산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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