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학한 학교에 우리과엔 재수해서 들어온 동기 형이 있었다.

난 중산층과 차상위 계층 사이 어딘가에 있는 서민집안이었고 그 형은 부자였다.
그냥 부자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그 형은 돈을 과시하거나 사람을 깔보지 않아 다들 좋아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돈이 많은게 다른과에까지 알려지고 나선 그것 때문에 접근하는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주변에서 약간 멀리 하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군대갔다와서는 나도 좀 멀어지게 되었지만, 당시엔 그나마 같은 반이었던 우리 몇몇이랑은 친하게 잘 지냈었다. 

그래서인지 친해진 우리와는 그렇게 오해로 멀어지지 않으려고 했고, 평범하게 보이려 노력하는가 싶었으나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것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예를들면 

야간작업을 할때 우린 음악을 틀어 놓고는 하는데 당시 소시가 소녀시대라는 노래를 부를때였다. 
우린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뒤엔 안놀려!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뒤엔 말해줘!라는 코러스를 넣으며 듣고 있었다.

그 형이 그 노래를 듣다가 말했다. 
"소녀 시대 실제로 눈앞에서 노래 부르는걸 듣고 싶어 근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갈거 같아" 
"(콘서트 표) 비싸죠 우리같은 대학생한텐 부담이에요"
"맞아 인기가 많아져서 비싸졌어 전엔 한 3천정도 했던거 같은데" 
"네? 아니 그거보단 비싸죠 전에 우리 건축박람회 엄청 쪼그만 데서 한것도 만원이었는데" 
"응? 만원? 아... 아니 콘서트말고 난 소녀시대를 부르는 가격을 말하는건데....3천원 말고 3천 만원..." 

라던지 

"홍대 지나가다가 플리마켓에서 엄청 예쁜 팔찌를 봤어 자기가 직접 만들어서 파나봐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듣고 일이만원 가지고 고민하다니 우리할 다를거 없다 생각하는 찰나에 형이 덧붙였다. 
"샀어 매대에 있는거 전부, 똑같은거 만들지 않기로 약속하고 돈을 2배로 줬어" 

같은 상황들. 

난 잠시나마 우리랑 같다는 오해를 했던 나 자신을 아주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느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자들만 모여 다니는 학교를 다녔다고 했는데 대학은 그럴 수 없으니 섞여있는게 본인도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돈이 많지 않은 아이들에게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돈과 관련되지 않은 상황에선 워낙 부족함 없이 자리서인지 진짜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모자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곤 했다. 

사람이 3일정도 밤을 새면 보통 만취상태에 가까운 정신이 된다. 
우린 밤새는게 일상이었고. 

1학기 마감 기간에 3일 정도 밤을 샌 상황이었다. 
담배 한대 피우고 온단 사람이 나가서 한시간동안 안들어 오길래 몇명이 찾아 나섰다. 

"담배를 한갑은 피울 시간인데 폐병걸려서 죽은거 아닐까"
"돈 많아서 괜찮아 담배인삼공사 앞에 써진거 못봤어? 담배로 해친건강 인삼으로 되찾자 좋은거 많이 먹어서 오래 살거야 아마" 
라는 대화를 하며 그형을 찾아 헤메다 의외의 곳에서 발견했다.

우리가 쓰는 교실은 원래 도예과가 쓰던 건물이었는데 그래서 건물 바로 옆에 커다란 화덕이 있었다.
그걸 벽돌로 대충 막아놨었는데 그 형이 그 벽돌을 털어내고 그 안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형 거기서 뭐해요?" 
"여기 따뜻해 춥지? 너네도 여기 들어와서 같이 자자"
"형 지금은 6월이에요 어디든 다 따뜻하다 못해 더워 죽어요 내생각엔 거긴 따뜻한데가 아니라 뜨거운데에요 아마 불을 지피면 열역학 법칙상 형의 몸무게와 습도를 가정해서 화덕이 5000도 정도라고 하면 2.1초정도 연소할 수 있을거에요." 

"여기서 한발자국도 안움직일거야" 
"형이 무슨 은행나무 침대 황장군이에요? 왜 거기서 궁상떨고 있어요?" 
춥고 졸리니 나오지 않겠단 형을 질질 끌고 나와서 교실에 라꾸라꾸 간이 침대에 눕혔다. 

"형 신발 벗고 올라가요"
"안돼... 추워" 
"이색... 아니 형 지금 여름이라니까요 그리고 침대에 흙 다떨어지잖아요" 
"침대? 새로 사줄게 미안해"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시트는 그냥 빨면된다고 달래고 나니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벌떡 일어났다. 

화덕안에서 한시간정도 잔거 같으니 이번엔 정신 차렸겠지 하고 놔뒀더니 또 30분을 돌아오지 않았다. ?

또 찾아 나섰다. 
"혹시 화장실 비데 온열기능 따듯하니까 그거 켜놓고 자는거 아냐?" 
"여름인데 따뜻한거 엄청 찾네 지금 온열기능 켜면 엉덩이에 땀띠나 찾으면 패딩을 입혀서 묶어놓을거야" 

화장실에 가보니 그 형이 변기를 끌어 안고 울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형 참 잘 운다. 
대뇌피질에 수로가 뚫린게 아닐까

내가 물었다. 
"형 왜울어요?"
그 형이 대답했다

"똥... 똥 잃어 버렸어..."

난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미친 이 또라이 형 새끼야 똥을 잃어 버린게 무슨 개소리야" 

"똥을 쌌는데 변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어... 이렇게 생긴 내 똥, 똥 어떡해 똥 잃어버리고 말았어. 
내 똥 못봤어? 가정부한테 혼날거야" 하면서 헛소리를 해댔다. 

"한번 만 더 똥같은 소리 하면 형 입에서 똥 뱉는다고 알고 변기에 형 머리 집어넣어 버릴거에요"라고 하니 조용해 졌다. 
아마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똥을 싸고 그걸 자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한것 같았다. 


아무튼 이렇게 돈많고 순수한 형의 학교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아무 것도 못하고 한눈팔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마음으로 그 형을 챙겼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 상황을 피해 갈 상황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빗나감 없이 딱딱 맞아 떨어져 난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책상에서 도면을 그리고 있는데 그 형이 다가왔다. 
저번엔 미안했어 헤헤 내가 어깨 주물러 줄게 하면서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형 안하던 짓 하면 죽는대요" 
"에이 내가 동생 고마워서 그러지" 
노동의 댓가가 보통사람보다 큰 집안에서 자라왔으니 그건 밥을 사거나 하는것보단 더 큰 호의였으리라.
게다가 일부러 밥사주려 해도 우리가 잘 안얻어먹기도 했기도 했고.

아무튼 주무르는데 힘이 한개도 없어서 간지럽기만 하길래 
"형 제가 해드릴테니까 보고 배우세요"하고 그 형을 앉혔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난 고등학교때부터 선생님들에게 안마의 신이 깃든 손, 집나간 어머니도 돌아오게 하는 마법의 안마등으로 불렸었고 선생님들은 세게 주무를 수록 더 강한 자극을 원하셨다. 
"그..그랫! 거기 거기야!! 세게! 좀더 세게!!"하는 카타르시즘이 섞인 외침에 맞춰 나의 악력은 보통사람 이상으로 발달한 상태였고 그게 화근이었다. 

난 있어보이려고 손을 합장 한 채 샤먼킹 처럼 안마의 신을 부르는 의식의 심호흡을 잠시 한 후 그 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내게 깃든건 스티븐 시걸이었다. 

선생님들의 아파야 끝나고 나면 시원하다는 지론을 배운 덕에 난 그 형의 아프단 비명을 무시한 채 어깨를 주물렀다.
그땐 '어차피 치과 의사들도 아프면 손 들라고 해놓고 손들면 원래 아파요 이딴소리 하면서 무시하고 계속하잖아?'라는 생각이었다. 
그때 그만 했어야 했다. 

그리고 목을 풀어주려고 했다. 
이러지도 말았어야 했다. 

"우드득"

내가 기대한 소리와 다른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이형은 워낙 작고 가냘퍼서 종이몸, 실버서퍼(게임용)등으로 불리던 남자였는데 내가 그걸 간과했다. 
형의 연약한 목은 교직에서 십수년 모진 풍파를 다 견뎌낸 선생님들의 그것과는 달랐고 내 힘을 버티지 못했다. 

형의 목은 기이하게 꺽인채 굳어 있었다. 
그는 갸냘픈 목소리도 말했다. 

"목이...부러진 느낌이야..." 

바로 병원에 갔더니 다행히 부러진건 아니고 살짝 삔것 같지만 그래도 조심하라고 했다. 
원하면 경과를 볼겸 이틀정도 입원할 수 있다 해서 입원을 했고 난생 처음 난 1인실이란곳에 들어가 봤다. 

"형 미안해요"
"됐어 일부러 그런것도 아닌데 괜찮아"
"그럼 형 내가 대신 내일모레 퇴원하면 맛있는거 사줄게요 진짜 비싼거 먹어도 되요" 
이말은 진짜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 기준에 비싼건 대패나 냉동이 아닌 냉장 삽결살이거나 조금 무리하면 소고기 혹은 초밥정도였고 
밥먹는데 5~10만원정도 쓰면 나도 이런 사치를 저지를수 있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할 정도의 씀씀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 형이 먹고 싶은건 상상을 초월했고 난 내 생에 처음으로 내돈으로 

샥스핀이란걸 사봤다. 

그 형은 또다시 의도하지 않게 돈없는 서민에게 상처를 줬고 통장이 텅장이 된 난 한달 동안 라면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