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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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민족을 집단으로 한 국가 시스템이 인류에게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
A. 인류는 집단생활을 통해 미지 또는 기지의 수많은 위험이나 위협을 극복하고 생명을 지켜 온 지난한 역사를 써 왔다. 개인적인 레벨을 벗어난 집단의 생명유지속성은 집단 자체의 안전 수준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생존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데 기여했다. 씨족·부족을 거쳐 확장돼 온 민족 집단은 이 같은 생명보호 시스템으로 최적화 된 국가와 절묘하게 결부됐다. 서로 다른 상(象)을 보이는 집단의 이합집산(像)은 민족국가로 수렴돼 갔다. (634쪽 : 상(象)들의 카오스는 또 다른 상(像)들을 만들어 낸다. 자신의 상(象)이 상대의 상(象)이 되면서 상호 갖게 되는 상(像)들을 교환하고 있다. 이는 사회·단체·민족·국가 등으로 나타났다) 민족국가의 탄생은 구성원들의 생존 가능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이는 애국심으로 불려졌다. (374쪽 : 애국심은 국가 또는 민족 내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민족국가는 동시에 침략 또는 지배의 목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탐욕을 확장시켰다. 그 결과 민족 간 분쟁이 수많은 전쟁의 참화를 불렀다. 배타성이 강한 민족국가는 상생·협력의 정신이 부족한 특성을 보인다. 내부적으로 생존을 위한 결속은 강화됐다고 하지만 타민족 간의 불필요한 갈등과 전쟁 가능성을 훨씬 증가시켰다. 일부 민족은 한 때 과거형 제국과 식민지 권력에 심취해 다른 민족국가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수탈하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육 전쟁이 비참하게 벌어졌다. 민족은 생존의 보호수단으로 아주 중요했지만 국가와 결부되면서 잘못된 힘의 논리를 만들어 내는 자가당착까지 범한 것이다. 민족국가의 잘못된 행태는 타민족의 이권을 무자비하게 빼앗는 선 수탈형 후 패권형 또는 타민족에 대한 지배권을 우선 확장해 가는 선 패권형 후 수탈형 등의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들 탐욕의 제국주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Q. 수탈·패권형 민족국가의 타락상은 어떤 모습인지
A. 일본의 경우 자민족 중심의 대동아공영이라는 수탈형 제국주의를 아시아에 건설하려다 핵이라는 가공할 무기의 참상을 불러들이며 패망했다. 독일 또한 히틀러 체제 아래에서 패권형 민족의 절대적 우월성을 표방하며 전쟁의 참화를 일으키는데서 나아가 수백만 유대인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민족국가의 탐욕은 인류 전체로 보았을 때 생존이란 본래의 선의(善意)를 버리고 침략이란 악의(惡意)의 탐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 역사였다. 패권·이권을 향한 욕망과 지배·침략의 국가적 탐욕은 한번 타락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특히 민족적 앙금이나 적대감이 결부되면 타락을 부채질한다. (381쪽 : 타락은 자신을 반추하는 미학이 있지만 그것은 잠시 존재하는 허상이다. 자체 발산하는 미학이 아니라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아름답지 않고 추한 모습이다) 민족국가의 타락은 상호 영향을 주면서 타락의 속도를 높인다. 특정 민족국가의 정의로 옹립되면 인류에 엄청난 위해를 가해도 그 정의감이 유지되는 경향까지 보인다. 민족의 이상은 허상이 되고 허상은 적의감을 확산시켜 상호 불운을 부르고 만다. 민족국가가 생존성 향상이라는 본래의 선의를 지켜가기 위해서는 민족이라는 배타적 보호본능을 정의의 허울로 씌워 권력의 밥그릇으로 활용하는 부조리를 막는데서 출발한다.
Q. 전 세계 많은 국가가 민족단위로 형성된 상황이 부정적으로 흘렀다는 의미일까
A. 민족국가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동시에 취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민족국가들이 효율적인 보호 울타리 역할을 하는 긍정성과 타민족과의 갈등을 촉발하는 부정성의 모습을 모두 띄고 있다. 이를 굳이 벗어나려 하지 않는 의도를 민족국가 대부분이 갖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민족국가는 전쟁 가능성이 항상 잠재된 평화라는 절묘한 평형을 유지 중이다.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등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쟁조차 갈등을 수렴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민족단위로 형성된 국가 시스템은 불안정 하지만 이상적인 꿈인 초국으로 가는 과정의 징검다리에 있다고 봐야 한다. 초국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하나의 국가 시스템이 아니다. 초국은 민족국가의 긍정성을 보다 더 많이 담보하는 쪽으로 지향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인류가 공동으로 이런 노력을 지속한다면 민족단위 국가들이 보다 평화롭고 안전한 글로벌 시스템을 유지할 기회를 더 많이 갖는다. 과정의 가치가 목적을 이루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했다. 인류의 공존공영을 위한 지난한 노력은 이상국가를 완성하려는 이념주의 보다 현실적이기에 위대하다. (742쪽 : 이상국가가 가능하다고 구체적인 몽상을 한 철학자가 지상에서 수십억명의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데올로기 망상이다) 수억명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몬 이념적 이상국가는 전 인류의 각기 다른 민족적 상(象)을 담지하는 초국의 질서와는 근본 맥락이 다르다.
Q. 국가 간 상호 이익과 안전을 담보하는 방법론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A. 완성을 향한 욕망은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지만 완성을 향한 과정을 중시하면 상생·협력을 우선해야 한다. (395쪽 : 과정 자체를 목적으로 간주하는 진정성 있는 에너지가 강력히 담보되면 목적은 당연히 실현되면서 과정과 동기화 된다) 민족국가들이 인류의 공존공영을 이루기 위한 가장 합리적 방법은 신 제국의 네트워크에 뜻을 함께 하는 일이다. 이는 과거형 제국과 식민지가 없다는 강력한 의지에서 출발한다. ‘민족의 꿈’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작업은 상호 안전을 효율적으로 담보하는 일이다. 배타성을 줄이면서 탐욕을 제어하는 방법론으로 민족 자주성을 상호 인정하는 역설이 필요하다. 배타성의 상호 인정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인류의 숙제다. 하지만 과정이 목적이고 목적이 과정이라는 인식이면 가능해진다. (395쪽 : 목적이 완성되면 과정이 사라지기에 이율배반이지만 과정이 또한 목적이 된다면 모순된 이중성은 용납된다) 상대의 배타성을 상호 인정하는 과정인 ‘배타적 네트워크’는 과정과 목적의 동기화다. 그 결실이 이루어졌을 때 ‘상호 이익’ 또는 ‘상호 안전’의 극대화라는 수혜를 누린다.
Q. 이익과 안전이 배타성을 통해 담보될 수 있다는 논리가 모순 아닌가
A.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으로 크게 인식론과 존재론이 조화롭게 존재한다. 우선 존재론으로 보면 이익과 안전이 배타성을 통해 담보되기 쉽지 않다. 서로 미워하면서 협력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상호 빼앗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으면서 나눔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는 사랑과 증오의 관계처럼 각각의 실재하는 존재만을 한정해서 보는 시각이다. 인식론으로 보면 애증(愛憎)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다. 상호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애증이 붙어 다닌다. 배타성이 곧 단일성이라는 의식이 중요하다. 실제로 대상성은 배타성이자 단일성이다. 인식론은 곧 존재론과 조화된다. (455쪽 : 이해관계 없이 대상성만을 인지하고 행동하고자 할 때 그것이 아름다움의 객관적 실체이고 미학이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대상을 배타적으로 보지 않는 신뢰다. 아름다움의 실재(實在)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따져보면 이해된다. 미학이 존재한다고 믿는 과정은 대상성이 완성돼 있다고 의심하지 않으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존재의 대상성은 완성 속 과정이라는 단일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식론·존재론 모두 합목적성을 띤다. 존재론은 상대성을 띠면서 단일성을 갖고 인식론은 단일성을 절대성으로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인식론과 존재론은 대척점의 위상이지만 이런 연결고리 때문에 어느 것이 우선한다고 단정 짓지 못한다. 수많은 현자들의 이치는 존재론에서 찾았지만 또 다른 수많은 현자들은 인지하는 주체의 인식론에서 찾았다. 서로 다른 것으로 보이는 탐구방식이 조화로울 때 민족국가의 배타성은 오히려 인류공영을 위한 씨앗으로 발아된다. 배타성이 곧 인류공영의 시작이라는 믿음이 중요하다. 누구나 배타성과 함께 인류애라는 선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이 된 배타성이 인류공영의 대상성과 항상 함께 있다. 증오가 사랑을 떠받치는 존재의 대상성으로 사랑의 기둥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민족의 이익과 안전이 배타성을 통해 담보될 수 있는 원리 또한 같다.
Q. 배타성을 이타성으로 발현시키기 어려운 집단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방식은
A. 수많은 집단 중 이타적 목적성을 갖는 공적 조직을 논외로 하겠다. 이익과 안전을 우선하는 집단에 한정한다면 집단의 배타성은 해당 집단의 기본 정체성이다. 민족국가는 대표적인 이익과 안전 지향형 집단이다. 민족의 이익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가 많고 민족의 안전을 소명으로 하는 국가는 대부분이다. 나아가 민족의 꿈을 패권·이권형 제국의 이상으로 삼는 국가 역시 적지 않다. 민족국가의 이 같은 배타성을 이타성으로 발현시키는 것은 인위적으로 되지 않는다. 배타성 자체는 배타성으로 존재하고 배타성 안에 있는 이타성이 발현되는 원리를 봐야 한다. 물론 이타성 안에도 배타성이 잠재돼 있다. 따라서 배타적 이타성은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인공성이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이타성을 강력히 불러내는 자가발전 방식만이 민족국가의 이타성을 실현시킨다. 배타성을 성찰할 때 타민족의 배타성을 포용하면서 이타성을 발휘할 수순을 밟는다. 민족이 갖는 특유의 집단적 아집(我執)을 탈출하는 탈아(脫我)는 그 시작이자 목표다. 아집은 타민족의 이익과 안전을 중시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집단적 의지다. 그 결과 배타적 민족 또한 동일한 사태를 부메랑으로 받는다. 탈아는 그 반대다. (462쪽 : 탈아를 통해 추상성을 강화시키면 일을 통해 에너지를 고루 저장하는 부(富)의 특성을 본다) 추상성은 전선(全善)의 절대이성을 지향한다. 종교적으로 신성을 품고 있는 것이 인간의 추상성이다. 탈아는 추상성을 통해 배타성 속에 잠재된 이타성을 불러내는 것이 가능하다. 민족국가의 이타성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 국가 간 상생·협력을 통해 부가가치 효율을 높인다. 국가 간 자유시장의 부가가치를 견인하는 지혜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444쪽 :추상성은 존재 그 자체를 드러내는 속성을 띠면서 경험의 가치가 극대화 된다) 절대성과 불완전성을 동시에 갖는 지혜의 눈은 배타성의 절제 속 이타성을 찾는 노력이다. 절제는 추상처럼 미학이 아닌 듯 하면서도 고도의 미학적 태도를 견지하는 이타성을 발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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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국제질서가 철두철미 패권과 이익을 사이에 둔 경쟁관계라는 점에서 과연 이타성 발현을 위한 절제가 가능할까
A. 자연계에서 음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과가 마이너스로 존재한다는 실체는 없다. 인류는 자연수를 양의 정수인 양수로만 인식하고 음의 정수인 음수는 자연수로 인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수를 발견한 인류는 실체가 없는 음수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음수는 자연계에 없지만 자연의 원리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온도계에서 영하의 온도, 자금의 흐름에서 빚(부채) 등은 음수의 원리로 취급된다. 나아가 경제성장률, 주식변동률 등 각종 그래프에서 마이너스는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실체만을 따지지 않는 변동성을 볼 때 음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음수의 존재로 양수는 세련된 위상을 확보했다. 음수의 사건이나 상황이 벌어질 때 인류는 양수를 지향했다. 배타성은 음울한 음의 기운이고 이타성은 밝은 양의 기운이다. 배타성이 지나칠 때 이타성은 자연스럽게 발현된다. 이를 생명의 자가발전 시스템이라고 했다. 또 경쟁관계는 음수와 양수가 그래프 방식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그리듯이 전개된다. 경쟁이 배타성을 띠면 이타성을 부르는 대성상이 발현된다. 대상을 향한 이타성은 매우 강한 주체적 의지다. 에고에 휩쓸리지 않는 자아는 탈아를 통해 강력한 이타성을 확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470쪽 : 인식의 주관이 대상의 본질에 실재성을 규정할 때 이기적 에고가 스며들면 불가능하다) 민족국가에 대상성의 본질은 타민족의 배타성까지 품는 지혜다. 이는 강력한 에너지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 이 의지 자체로 민족국가 간 이타적 네트워크가 강화된다. 배타성을 버리고 이타성을 좇는 것은 주관적 판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포용적 이타성의 탈아는 역으로 인식능력을 강화시킨다. 이는 이타적 인식의 강화를 통해 주체를 강화하는 주관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다. 이타성이 강한 주체적 민족국가들의 신 질서가 패권형 제국을 넘어 선 초국의 모습이다.
Q. 초국의 질서를 성숙시켜 가는데 민족국가의 존재 자체로 방해가 되지 않는지
A. 민족과 국가는 각각 평면의 개념이다. 특정한 민족국가가 특정한 위상을 점유할 때 민족과 국가는 각각 특정한 좌표평면에 있다. 가령 개도국의 국가가 후진국의 민족성을 가질 때와 선진국의 민족성을 갖는 경우를 각각 상정해 보면 해당 민족국가의 평면상 위치가 다르게 정해진다. 전자의 국가는 후발국으로, 후자의 국가는 선진국으로 지향하는 잠재력을 갖는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이를 운동성으로 표현하고자 하면 평면에서의 회전기하 공간이 필요하다. 상상의 수인 허수를 필요로 하는 복소평면은 회전하는 운동성을 표현해 준다.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허수가 현상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크기와 방향을 갖는 4원수(quaternion)는 공간에서의 회전기하를 표현하게 해준다. 평면으로 출발한 민족국가들의 이 같은 입체적 운동성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모두 지향하지만 그 자체가 초국의 질서에 필요한 에너지들이다. 심지어 부정성이 강한 민족국가라고 해도 긍정성을 유인한다고 했다. 평면상의 민족과 국가 간 연합을 통해 입체적 운동성을 갖는 민족국가의 존재 자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류에게 필요충분한 조건에 있다. 민족국가의 존재가 초국의 질서를 방해한다고 해도 필요한 잠재성이 많다면 방해한다고 볼 수 없다. (476쪽 : 질서가 고도화 될수록 거울에 비춘 인간 네트워크는 아름답다. 이 망은 어떤 것도 가능하게 하는 신성의 얼굴이다) 질서의 고도화는 완벽한 코스모스 질서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운동성이 만들어 내는 입체적 파동의 얽힘이기도 하다. 반면 완전성은 얽힘 그 자체가 필요 없는 완벽함이다. 운동성을 통한 입체적 얽힘은 민족국가 간 함께 하는 연대다. 초국은 신들의 나라가 아니다. 초국은 불완전한 인류가 불완전한 네트워크 속에서 입체적 얽힘을 더 단단하게 엮어가는 운동의 연속성이다. 절대 멈출 수 없는 입체적 얽힘을 통한 공존공연의 연속성은 인류가 짊어지며 가야 할 끝이 없는 숙제로 간주된다. [계속]
[스카이데일리 알앤알(R&R, Rich-Research)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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