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반(反) 패권형 제국의 진정한 의미는 초국의 질서인가
A. 패권형 제국은 인공적이지만 초국의 질서는 자연적이다. 인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하나로 만드는 기술적 진보에 심성가치를 심으면서 초국을 향해 가야 한다고 했다. 민족국가들은 최선의 생존권을 담보하기 위해 초국의 전초단계를 밟고 있다. 당연히 과거형 제국논리는 거의 사라졌다. 따라서 제국의 꿈은 민족국가 간 입체적 얽힘의 운동성(진행형)인 초국의 질서에 편입하고자 하는 의지다. 이 운동성은 하나같은 다수의 지속적인 협력 네트워크라고 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풍요를 누리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선의(善意)의 경쟁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555쪽 : 개별자들이 만들어 내는 각종 울타리들은 막혀 있지 않고 정형화 돼 있지 않아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얽힘의 원리를 따른다) 민족국가는 이익과 생존을 서로 담보하는 상호주의를 통해 부가가치 효율을 높여야 할 소명을 부여받았다. 상호주의는 쉼 없는 상생의 지속이다. 이는 불연속이 아닌 연속의 생명현상과 같다. 지배·침략의 방식이 아닌 책임·사랑의 방식으로 부가가치 효율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현상성의 방식으로 절대성을 추구하는 일이다. 이 같은 얽힘의 방식이 강화될수록 창조력이 극대화 된다. (555쪽 : 본질과 현상이 하나로 움직이는 얽힘은 절대성과 유한성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호주의에 기반한 얽힘의 지속성은 개별 민족국가들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제고시킨다. 따라서 초국의 얽힘은 본질적 원리라는 믿음이 중요하다. 원리는 현실에서 다양성으로 드러난다. 현상에서 나타나는 경쟁력은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얽힘의 변수에 따른 결과다.
Q. 새로운 제국의 꿈을 이루기 위한 세부 실천지침이나 방식은 무엇인지
A. 자유시장의 건전성을 강화시키는 진화가 진행돼야 한다. 건전성은 구성원들의 창조력을 키우기 위한 경쟁의 촉진으로 이뤄진다. 평면적인 창조만으로 입체적인 창조력이 높아지지 않는다. 경쟁이 가미된 창조는 치열한 생명의 운동성이다. 이 같은 창조력의 양대 기반이 인간만의 특권인 직관과 통찰이다. 성숙된 국가 경쟁력의 강화는 곧 심성가치 문화다. 심성가치의 한 쪽에는 양심에 기반한 도덕률이, 다른 한 쪽에는 창조를 위한 직관·통찰이 각각 마주보고 있다. 도덕률은 민족국가들 간의 배타적 이타성을 유인한다. 혈연의 천륜이 배타적 이타성의 근간이라고 했다. 직관은 초국의 네트워크에 얽히고자 노력하는 접선이다. 통찰은 접선을 통해 공동의 부가가치 효율을 내기 위한 소통이다. 직관과 통찰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면 초국의 혼돈이 닥쳐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를 발휘하게 된다. (298쪽 : 국가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한 조건은 자연의 원리에 있다. 이는 직관과 통찰을 전제로 하면서 사건의 섭리에 늘 서는 위험을 자처하는 자세다) 선진국은 계급 질서의 상위국이 아닌 초국 네트워크 내에서 담당해야 할 몫이 많은 국가다. 선진국은 위험한 사선(死線)과 악조건의 상황에서도 앞장서야 하는 만큼 고통스러운 맞바람을 맞아야 한다. 때로는 모순된 상황을 마주하면서 모순조차 주저 없이 수용하는 전향적 태도가 요구된다. 이런 태도가 직관과 통찰 능력일 높인다. 초국으로 가는 험난한 상황에서 매 순간 초심을 잡을 기준이 필요할 때 직관·통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 기준을 과감히 설정하는 직관·통찰은 창조의 시작이다. 이는 패권형 제국과는 전혀 다른 신 제국의 질서에서 중심축을 다잡는 역할을 한다. 초국의 질서 내에서 패권형 제국은 창조가 만들어 내는 결실을 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탐한다고 해도 취하지 못한다.
Q. 직관·통찰에 기반한 창조력이 글로벌 네트워크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까
A. 반 패권형 제국의 권위는 패권의 형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힘의 우월성으로 제국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빈국으로 추락할 위험을 자처할 뿐이다. 새로운 제국의 꿈은 창조 에너지를 공유하는 마인드에 좌우된다. 미래 제국의 자본시장에서 여전히 권능은 돈이지만 그 권능을 쌓은 에너지가 창조일 때 패권 마이든가 사라진다. 물론 창조력을 키우는 경쟁의 특성 때문에 창조력의 공유가 경쟁 상태일 때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자유시장의 본질인 경쟁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창조력을 키우는데서 나아가 창조력의 공유범위까지 확장시킨다. 자유시장 네트워크에 직관을 통한 접선과 통찰을 통한 소통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때 창조력의 공유가 자연스럽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창조력의 공유가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반 패권형 제국의 질서에서 경쟁과 공유는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상호 필요에 의해 하나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정보와 데이터의 공유가 자연스러운 상황 자체가 반 패권형 제국의 질서다. (272쪽 : 공유 에너지는 창조 부문에서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돈은 자본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 내는데 사용된다. 자본시장의 장악은 패권형이 아닌 선두에 선 개척을 의미한다. 창조력의 공유와 그 공유를 개척하면서 쌓은 부(富)는 각 민족국가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선사하는 권능으로 변한다. (272쪽 : 권능은 권위로 커지면서 집단의 자유도 확대된다) 권능과 권위는 일종의 불균형을 상징하는 듯 보이지만 자유시장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오히려 균형추 역할을 한다. 초국의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힘이 균형을 다잡아 가는 일이다. 자유시장은 무한변수가 항상 일어나는 혼돈의 운동장이라는 점에서 언제든 균형이 깨질 환경에 노출돼 있다. 이 때 상호주의 부가가치를 축적한 권능·권위는 무질서의 질서자 역할을 한다. 그 속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폭력적 이념과 권력은 싹을 틔우기 어렵다.
Q. 이념이 추구하는 선의(善意)가 악의(惡意)를 담지한 패권형 제국을 소환하는 이유는
A. 선의에 상처를 입을수록 선의를 강렬히 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악의를 갖고 적개심을 키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념은 대개 선의에 대한 상처로 잉태됐다. 그래서 이념이 품은 선의의 깊은 내면에는 패권·이권 등의 악의가 깃들었다. 상처에 대한 반작용 개념으로 나오는 선의는 포장일 경우가 많다. 설사 그 선의가 진실이라고 해도 악의로 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이념의 싹을 띄우는 배아가 안타깝게도 대부분 악의를 품었거나 악의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초국의 질서 자양분인 포용과 관용의 경우는 이념주의자들에게 사치다. 적대적 전선이 형성되면 무자비한 살육전조차 선의로 포장되고 그 과정에서 절대권력까지 옹립된다. 도덕률의 칼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이념주의자들은 몸으로 실천한다. 자유를 제한하는 이상한 선의가 정의의 사도로 분(扮)한다. 억지춘양의 정의가 패권·이권형 제국을 적대시하면서 소환하면 정의는 본색을 드러내 악의로 변질된다. 이념이 넘실댈 때 자유가 억제되고 창의는 뿌리를 내릴 곳이 사라진다. 이처럼 박제 같은 정의가 산성비를 뿌리면 무애(無碍)를 추구하는 초국의 질서조차 적으로 간주된다. (83쪽 : 무애 속 무아의 공간에 존재를 내재하는 개체는 에너지의 무한 집중이 가능하고 무한 발산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무애(無碍)는 한정이 없는 무애(无涯)의 선상에 함의된다고 했다. 초국의 질서는 장애가 없는 지속성 속에 강력한 에너지로 살아 꿈틀거린다. 또 무아는 입체적인 운동성을 일으켜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얽힘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한다. 비울 때 커지는 힘이 기준을 잡는 일이라고 했다. 초심을 잡는 기준이 매순간 반복될 때 무아의 힘에 의한 초국의 질서가 완성돼 간다.
Q. 인간의 기본 욕망인 권력에의 의지를 온전히 버리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인데
A. 권력은 힘이다. 권력에의 의지는 힘을 통해 타자를 지배하려는 욕구다. 지배를 하기 위해서는 욕망하는 주체의 힘이 강해야 한다. 여기에 무한경쟁이 개입되면 항상 상대적으로 강해야 한다. 권력에의 의지가 무한히 상대해야 할 대상은 네트워크 내에 존재한다. 패권형 제국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네트워크의 버림을 받는다. 지배욕구는 필연적으로 소외를 부른다. 네트워크는 지배하려는 탐욕을 흡수하거나 녹여 없앤다. 이는 수없는 역사의 소용돌이였다. 반면 네트워크에 융화되는 방식을 통한 제국의 꿈은 권력에의 의지를 버리지 않아도 소외받지 않는다. 권력에의 의지가 전혀 다른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배가 아닌 무애(無碍)의 방식이 그것이다. (112쪽 : 무애 속 에너지는 구분이 없기에 교류의 장조차 없는 에너지장이다) 초국의 네트워크 내 민족국가들이 하나처럼 움직일 때 권력에의 의지가 무애의 방식으로 공유된다. 권력에의 의지는 존재하지만 없는 이중성을 관통한다. 무소유의 소유가 진정한 소유이자 부가가치를 키운다고 했다. 권력에의 의지 또한 유무상생(有無常生)의 원리를 탄다. 생명이 존귀하고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에고의 욕심조차 존귀하다는 대전제를 선의로 간주할 때 권력에의 의지가 공유되면서 상호 존엄성을 키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다만 채움을 지향하는 에고의 선택은 비움 쪽으로 치열해야 한다. 비움이 더 큰 채움인 탓이다. (112쪽 : 에고가 무한 에너지를 갖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는 역설의 동인(動因)을 필요로 한다) 에고를 버리는 것이 창조 에너지처럼 상호 공유 에너지로 신뢰할 수 있을 때 에고를 놓을 수 있다. 창조력의 공유는 에고의 공유(비움)와 같은 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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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개인이든 국가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마인드를 결코 버릴 수 없지 않나
A. 경쟁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면 경쟁이 아닌 절도나 강도 행위일 뿐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마인드는 협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부가가치를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경쟁을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의 요건이자 승부사의 자격이다. 결국 경쟁하면서 협력을 끌어내는 지혜가 요구된다. 속된말로 누가 먼저 자신만의 비밀을 과감히 상대에게 던질 수 있느냐에 승패가 좌우된다. 그 패는 경쟁을 통해 협력을 유인하는 결단이다. 이는 자유시장을 풍요롭게 하는 순환의 동력이 된다. (152쪽 : 순환을 위한 최선의 도덕률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가가치의 대중적 공유로 이해돼야 한다) 선순환을 돌리는 것이 좌표계 기준을 잡는 일이다. 자신의 비밀 패를 던지는 것이 무아의 용기다. 협력만이 자신은 물론 타자들의 이익까지 커진다는 것을 아는 선순환의 개척자들이 리더로 올라선다. 부의 키를 잡을 용기를 가지면 패권형 제국이 패망의 지름길이고 초국의 질서가 번영의 네트워크임을 매 순간 실감한다. 자유시장에서 일어나는 무한변수를 창조의 씨앗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기도 한다. 나아가 자유시장의 윤활유인 자유로의 무한 항진을 이끌어 가는 모습에서 초국의 질서가 다듬어진다. 자유의 확대는 다시 경제적 도덕률의 확대를 요구받는다. 도덕률이 치열한 경제현상에서 필요하다는 것은 경직된 법률이나 규칙이 아니라 유연한 불문율이다. 반 패권이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초국의 질서에서 도덕률은 불문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 된다.
Q. 치열한 이윤 경쟁이 생사를 좌우하는 경제현장에서 도덕률은 혹시 허상 아닌가
A. 기부나 봉사 등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도덕률이다. 경제현장에서 최선의 도덕률은 창조력을 공유하고 무아의 에너지조차 공유하고자 하는 진정성이다. 창조와 무아는 상호 길항하면서 강한 힘을 낸다. 창조는 무아의 바탕에서 확장되고 무아는 창조의 임계선상에서 큰 힘을 유지한다. 경제에 도덕률을 진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발상은 이 같은 협력 시너지를 인식하지 못하는데서 나온다. 버릴 때 얻는 것이 크다는 확신이 들면 경제적 도덕률을 실천하는 선두에 과감히 선다. 초국의 질서에 필요한 부는 이런 원리로 커진다. 진정한 제국의 꿈은 집단의 도덕률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국가정신이나 헌법정신은 총화의 가치를 중시하는 도덕률이지만 국가 간 배타성을 촉발시킨다. (276쪽 : 자유시장에서 총화의 우선가치는 개인의 자유이며, 그 자유의 기반이 되는 부(富)라는 밥솥을 키워가는 것이 도덕률의 최전선에 있다) 세속적으로 돈을 버는 것이 협력의 키워드로 공유될 때 돈은 스스로 기막힌 긍정의 도덕률을 세운다. 돈이 모두에게 풍요로운 행복의 근원 역할을 하면서 협력의 모태가 되면 무엇보다 강한 도덕이 된다. 그래서 부의 소스를 공개하는 도덕률이 많은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부의 소통은 부의 형성과정이나 부의 결과물을 모두 포함한다. 이에 대한 대중적 정보 공유가 협력 네트워크의 신뢰를 강화시킨다. (277쪽 : 부의 정보공유는 경제적 도덕률 실현과정의 가치를 키우는 소통의 과정이다) 부의 오픈 소스가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빈부격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부를 이룬 명성이 시기나 질타가 아닌 존경의 대상이 된다. 진정한 제국의 꿈은 자유시장에 기반한 글로벌 부의 질서 형성에 있다는 것이다. 초국의 질서에서 부를 창출하는 협력적 네트워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패권형 제국의 음울한 기운이 마치 정의의 사도로 둔갑해 등장한다.
Q. 신 제국이 마치 글로벌 이상국가를 꿈꾸는 느낌이 드는데
A. 현상계에서 완성은 불완전성의 다른 모습이다. 이념은 완성된 정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끝내 불의를 몰고 온다. 초국은 완성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했다. 멈추지 않는 진행형을 운동성이라고 했다. 운동은 평면상의 2차원이 아닌 3차원 입체구조에서 이뤄진다. 초국에서 민족국가 간 얽힘이 입체성을 띈다는 것은 그만큼 견고하다는 의미다. 초국의 얽힘은 인위적이지 않고 작위적이지 않다. 민족국가 간 상호 이익과 안전의 담보라는 신뢰 메커니즘이 실시간 무한 진행형으로 지속된다. 이를 배타적 이타성의 상호주의 얽힘이라고 했다. (567쪽 : 질서는 혼돈을 필연적으로 머금지만 그 혼돈을 평정하려는 작위적 혼돈은 머금지 않는다) 혼돈의 대명사는 차별과 불평등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차별보다 더 극심한 혼돈을 일으키는 것이 인위적 평등이다. 인위적으로 완성된 글로벌 이상국가는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존재할 수 있다면 불완전한 질서가 절대성이라고 착각의 장막을 치는 행위다. 그 행위가 오만한 권력을 낳지만 그 권력이 오히려 이상국가라고 자임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심지어 무차별 유토피아는 숱한 목숨을 유린해야 한다. 반 패권형 초국의 질서는 무차별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의 질서를 향해 나아간다. 희망을 목적으로 삼지만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장된 행위는 가린다는 점이다. 차별 속 협력은 반드시 멈춤이 없어야만 성과를 낸다. 살아 있는 자존감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모두가 행복하고 풍요를 누리는 신 제국질서의 건설이 앞당겨 진다. [계속]
[스카이데일리 알앤알(R&R, Rich-Research)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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