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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전 대통령들처럼 자유민주주의·인권·국제규범·개방 등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면서 개혁을 다그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MASA(Make America Safe Again·미국을 다시 안전하게)’를 앞세워 불법 이민자 추방·마약 단속·국경 수비 강화 등에 팔을 걷어붙였고, 대외적으로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않고 관세 폭탄을 발사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동맹국들을 향해서는 ‘공정한 안보 비용’ 부담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거래적 동맹정책’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낯설어진 미국’을 상대로 세계 각국은 협상도 하고 저항도 하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한국도 ‘경제와 안보’라는 두 개의 보따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미국과 담판을 해야 할 처지다. 바야흐로 한미동맹이 또 한 번 폭풍전야를 맞고 있다.
그중에서도 안보 비용 협상은 경제 논리나 감정보다는 ‘국가 생존’의 논리로 풀어야 하므로 한국으로서는 두 가지 전제를 가지고 임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한미동맹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없어서는 안 될 축이라는 전제다. 인정과 영향력 확대를 원하는 먼 나라와 손잡아 굴복과 정복을 원하는 가까운 나라를 견제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은 지금도 국제정치의 철칙이지만, 홀로 감당하기 힘든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데다 동맹 공조가 필수적인 핵 문제까지 머리맡에 두고 있는 한국에게는 더욱 당연한 철칙일 수밖에 없다.
둘째, 트럼프발 개혁을 무차별적인 광풍(狂風)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선제에 능한 협상 메이커이긴 해도, 적성국과 동맹을 구분하는 것을 포기한 비합리적인 지도자로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마찬가지로 참모들의 표현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힘센 자들의 아무 말 대잔치’로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한국은 그들의 뇌리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합리적 지도력과 심중의 목표를 읽어 내면서 ‘변화하는 미국’에 부응할 것은 부응하고 버틸 것은 버틴다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
우선, 한국은 서둘러 국내총생산(GDP) 4% 국방비 시대를 개막할 필요가 있다. 자발적인 국방비 증액과 함께 포퓰리즘이나 정치 논리가 아닌 ‘안보 수요와 안보 정론’에 입각하여 성실하게 자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음이다. 이는 미국의 요구가 없더라도 한국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이면서 동시에 미국과의 담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길이기도 하다.
주한 미군에 대해서는 현 위상과 규모를 유지하되 운용상의 유연성에서는 양보할 부분도 있어 보이며,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방위비분담금 증액에도 융통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전쟁 억제라는 목표의 막중성에 비추어 보면 이런 비용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한국은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아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문제는 그야말로 ‘전쟁 억제와 국가 생존’을 최우선으로 놓고 판단해야 하는 사안이다. 현 전작권 체제는 전쟁 발발 시 더 많은 자원과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미군 장성이 사령관인 단일 지휘 체제 아래 한·미군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싸우는 체제이기에 전쟁을 예방하는 데 대단히 효과적이다. 한국은 이런 체제하에서 70여 년 동안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고, 그래서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은 이 체제를 부러워했다.
이러한 현실 인식과 전제 그리고 각오를 가지고 담판에 임한다면, 다시 한번 동맹을 재확인하고 안보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협상 카드들을 가지고 있으며, 75년 혈맹의 역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카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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