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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매사 한목소리를 내긴 어렵다. 태생이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정치란 게 상대당을 비판하고 자당(自黨)을 내세워 ‘정권 창출’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험한 말과 검은 돈도 오간다. 그래서 ‘정치는 필요악’이요,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라는 조롱도 듣는다.
여야 관계가 원래 그런 거라 해도, 근래 한국 정치는 너무 심하다. 여야는 악수 회동 하루 만에 다시 각을 세웠다. 다신 안 볼 것처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재명정부 첫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이번에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은 발끈했다. 장동혁 대표는 “제1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라 규탄했고, 송언석 원내대표는 “야당 파괴, 보수 궤멸의 일당 독재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향후 정국에 거친 풍랑이 예고된다. 길고 긴 정쟁(政爭)의 세월은 민초의 삶을 어둡게 한다.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우리 정치는 대화와 협상의 기술이 부족하기에 그렇다. 그러면서 욕심은 많다. 다 가지려 한다. 제로섬 게임이다.
하긴 우리 역사를 일컬어 ‘승자(勝者)의 기록’이라 하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승자만이 충신으로 기록됐다. 권력을 둘러싼 파벌과 당쟁의 대립에서 승리한 자는 권력을 갖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역사를 재해석하며 그 권력이 계속되는 한 부귀영화를 누려 온 과거의 역사는 재현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년 전인 1589년 정여립의 역적모의 사건으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동인 1000여 명이 대거 숙청됐다. 당시 거두였던 정철을 정점으로 한 서인들에게 다시 권력의 칼을 쥐어 준 선조는 비대해진 동인 세력들을 견제하는 차도지계(借刀之計)로 서인들을 등용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권력의 균형추를 복원한다. 그런데 그 복원의 폭이 너무 커서 1000여 명의 동인들이 밀려나니 이제는 서인 중심의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선왕조 5백년 내내 충신론·역적론은 당쟁 정치의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를 중심으로 천하 통일 후 잘 조련된 조총부대를 앞세워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도 당시 조선의 문인 계급은 이를 애써 무시하는 방관의 태도로 일관했다. 조선 국왕 선조를 정점에 놓고 동인과 서인은 겉으로는 백성을 위하고 국왕에게 충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대부분의 신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올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전란으로 죄 없는 백성들만 살상되고 후유증으로 삶의 고초를 처참하게 겪어야 했다. 힘없는 민초의 수난사다.
그 역사적 교훈은 수백 년을 뛰어넘어 오늘 분단된 한반도에 더 크게 울리고 있다. 미·중·일·러가 자국 이익에 따라 민첩하게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100년 전 역사가 반복된다면 가장 위험한 곳은 동북아시아다. 특히 한반도는 남북 대치 국면에서 자칫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되기 십상이다. 정부의 능동적 외교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럼 국회는? 외교·안보와 경제 살리기라는 양대 과제를 구현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에 힘써야 할 책무가 무겁다. 지금 우리는 국가 위난의 시대라는 현실을 살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과 물가 상승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영세 자영업 모두 힘겹게 버티고 있다. 설상가상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시대를 맞아 ‘관세폭탄’으로 세계 경제와 우리 실물경제가 둔화되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엄중한 경제 상황이다. 국가적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주요 국정 과제에 대한 국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정치는 바로 공동선에 기여하도록 틀을 바로잡아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과 정의를 살리고 국민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정략적 속내’가 드러나 보이는 ‘좁쌀정치’ 말고 국민과 미래를 위한 ‘큰 정치’를 기대한다. 우리 민족의 기막힌 수난사를 돌이켜볼 때 오늘의 상황이 결코 절망적이지는 않다. 국난을 극복한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을 되새겨 국민 통합에 힘쓴다면 외부 도전도 물리칠 수 있음을 되새기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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