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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전달되는 브랜드의 진실> 거대 기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성공이 단순히 거대한 규모나 압도적인 기술력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쌓아 올린 철학과 진심, 바로 ‘심성(心性)’의 존재를 느낍니다. 본지 창간 14주년을 맞이하여 기획한 ‘심성(心性) 브랜드 전략’ 시리즈란 이처럼 기업의 깊은 곳에 자리한 ‘마음과 철학’의 가치를 조명하는 노력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기업이 단순히 이윤 창출의 주체를 넘어 우리 사회와 어떻게 함께 호흡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지 탐구하고자 합니다. 삼성의 바이오로직스·가전에 이어 반도체를 들여다 봅니다. 기술과 자본의 경쟁을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초격차란 바로 ‘심성’에서 비롯됩니다. ‘산업계의 식량·연료’라는 반도체가 어떤 경위로 우리나라 주력 산업이 됐을까요. 오늘날 현대인의 삶은 반도체 기반 위해 이뤄집니다. 일상·업무·놀이와 그 속에서 필요한 이동에 사용되는 모든 것에 반도체가 들어갑니다. ‘산업의 쌀’을 넘어 이젠 현대문명의 공기·물 같은 요소이며 ‘21세기 전략자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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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도쿄선언... 현재적 한계를 초월한 ‘정확한 미래 통찰’
삼성반도체는 한국 산업화 및 고도성장에 얽힌 모든 극적인 요소의 상징이다. 1970년대 반도체 산업에 진입한 후 불가능을 뚫고 이뤄낸 성과, 오늘날 미국·중국 패권 경쟁 속 지정학적 의미까지... 드라마틱한 색채를 더한다. 1974년 삼성은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산업에 발을 들였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1910~1987)의 결단은 자본주의 정신의 꽃이 ‘기업가 정신’이며 기업가야말로 ‘혁신’ 주체이자 ‘미래를 읽어내는 영감’의 소유자임을 일깨운다.
1983년 2월8일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64K D램 개발 및 반도체 사업 본격 진출이 천명됐다. 훗날 ‘2·8 도쿄선언’으로 불릴 만큼 역사적인 대목이다. 그해 12월 64K D램 개발을 이뤄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이듬해 대량 생산을 해낸다. 한국의 기술 수준으론 불가능하다고 본 전 세계 업계 관계자·전문가들 예상을 뒤엎고 약 10개월 만에 결과를 냈다.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시점에서 삼성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로 부상한다.
1980년 초부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저금리, 기술 인력 육성, 연구개발 투자)과 ‘패스트 팔로워(Fast Follwer)’ 전략이 맞물렸다. 선도기업(First Mover)이 개척한 신기술을 신속히 모방·개량해 빠르게 따라잡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퍼스트 무버가 고위험을 감수하고 시장을 개척한다면 패스트 팔로워는 위험을 줄여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1981년 7월 정부의 ‘반도체공업육성계획’과 함께 “반도체는 산업의 식량·연료”라는 전두환 대통령 발언 이후 언론·정책자료에서 상식화됐다.
“10년 고생해 100년 먹거리를 찾는 길”
텔레비전·냉장고 등 가전을 수출하던 삼성이었으나 부품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훗날 이건희(1942~2020) 선대 회장은 “아버지가 평생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선택이 반도체 진출”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돈만 잡아먹는 구멍” “미국·일본이 버티는 판에 무모한 시도” 등 비관론이 쏟아졌으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10년 고생해 100년 먹을거리를 찾는 길”이라며 밀어붙였다. 이 결단이 한국 산업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른바 도쿄선언 직후 인텔이 삼성을 ‘과대망상증 환자’로 불렀고 일본 미츠비시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 보고서를 냈다. 여론 역시 부정적이었다. 자전거 수리공 출신 라이트 형제의 ‘하늘을 나는 꿈’이 1903년 첫 비행에 성공하기 전까지 황당무계하게만 여겼졌듯 삼성의 반도체 도전도 그러했다. 이렇게 삼성은 기술·인력·자본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반도체에 뛰어들었으나 과감한 설비투자와 해외 기술 습득, 인재 양성을 통해 불가능에 가까운 격차를 메워 갔다(HRI 보고서 ‘기업성장의 경험’).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1980~90년대 “선진 기업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품질 좋게 만들라”는 게 삼성 경영주의 주문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자주 언급한 “창조적 모방”이란 ‘패스트 팔로워’ 전략의 삼성 버전이었던 셈이다. 2009년 ‘퍼스트 무버 전략’으로의 전환 또한 주목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 관련 연구에서 삼성·현대·LG가 패스트 팔로워 국가전략의 대표 사례로 지칭됐으며 이 가운데 삼성의 전략 변화가 전 세계 경영학계 눈길을 끌었다. 지금껏 삼성은 패스트 팔로워의 전형이자 최고 성공 사례로 분류된다.
일본 경제력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환율을 압박해 일본산 수출품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이른바 ‘플라자 합의’(1985) 반사효과도 있었지만 모든 천운이 자기것으로 승화되진 못한다. 2010년대 이래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글로벌 시장 점유율 40% 이상이다. 파운드리(시스템 반도체 위탁 생산)에선 TSMC와 양강 체제이며 3nm·2nm 경쟁을 벌인다.
2000년대 들어 메모리 반도체 절대강자 자리를 삼성이 차지했다. 플래시메모리(NAND)·D램·모바일DRAM 등 대부분 분야에서 1위다. 휴대폰·PC·서버, 이후 스마트폰 혁명 등 모든 게 삼성반도체 없이 불가능했으리라. 삼성은 또 이 시기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로도 확장을 시작했으며 미·중 패권 대결의 한 축인 기술 경쟁·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 고도성장의 한 축이었던 삼성반도체가 이젠 글로벌 기술·안보 질서의 주인공이 됐다.
30여년 전부터 추구한 ‘기술 초격차’
반도체 세대의 숫자 변화란 메모리 용량·속도·소비전력·집적도 차이를 말하며 전자제품의 성능 도약을 의미한다. 칩 하나에 담길 데이터량이 수십~수백 배 증가함으로써 기기의 소형화·경량화·고화질·고음질·속도 등 획기적 개선을 가져온다. 집채만하던 컴퓨터가 책상 앞 기기로, 들고 다니는 노트북으로, 심지어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까지 진화하게 만든 게 반도체의 발전이다. 그 역사의 출발과 견인차가 삼성이었다.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성공 이래 일본 기업을 추월했다. 이 시기부터 삼성은 ‘기술 격차 1~2세대 이상 확보’ 전략을 명확히 표방한다. 2002년 낸드플래시 세계 최초 1Gb 개발, 2005년 세계 최초 16Gb 낸드플래시로 모바일·스토리지 시장 판도를 바꿨다. LCD·OLED 분야에서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최초’ 패널 상용화를 반복, 디스플레이 분야 초격차 전략을 강화했다. 2014년 “기술 초격차 유지”가 경영 화두로 부상했으며 2017년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반도체 초격차 전략이 자주 공식 언급된다. 2010년대 중반 3D V낸드 상용화에선 2013년 24단, 2014년 32단 양산으로 후발 주자와 3~4년 격차를 벌렸다. 파운드리 분야 초미세 공정(7nm, 5nm EUV) 또한 조기 도입된다.
최근 삼성 고대역폭메모리(HBM3E) 제품의 엔비디아 인증을 통과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인공지능(AI) 가속기 시장 진입의 중요 관문이다. 메모리 시장 가격 상승 분위기를 업고 D램 가격의 최대 30% 인상 계획도 공개되는 등 반도체 부문 실적 개선 가능성에 기대가 커졌다. 반도체가 자원·에너지 집약적 산업이기에 환경·사회적 책임도 기업 평판 및 경쟁력에 직결된다. 이에 삼성반도체는 제품 개발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대상으로 책임을 강조하는 노력을 홍보 중이다.
*국운과 문명을 개척한 삼성반도체*
어떻게 그 시절에 반도체 산업 진출을 생각했을까요. 일본 부품 사다쓰던 가전 수출 기업이 말입니다. 그런 창업주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란 이름에 끌렸답니다. 기업가 특유의 영성일까요. 반도체란 전기를 흐르게도 하고 차단하기도 하는, 색(色)·공(空)의 문턱 같은 존재... 흐름과 단절, 양극단을 조율하며 상상적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장치입니다. 현대문명의 뇌이자 심장이죠. 반도체는 아날로그·디지털 세계를 이어주며 우리 지각과 지성을 넓혀 줍니다. 기술의 본질을 “세계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본 유명 철학자의 말처럼 반도체는 삶을 ‘계산 가능한 존재’로 만들며 새로운 세계(디지털·가상현실·인공지능)를 열어줍니다. 반도체는 무한한 가능태, 겹겹이 포개진 무궁한 세계들의 문입니다. 문명 진보와 국운 상승의 계기, 한반도에선 한 기업인의 결단으로 시작해 진행 중인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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