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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권 아파트 단지들이 공공시설을 둘러싸고 잇달아 갈등을 빚고 있다. 입주민 안전과 주거권을 앞세운 ‘단지 보호 논리’와, 인근 주민들이 내세우는 ‘공공성 침해’ 논리가 정면 충돌하면서, 도시 속 새로운 형태의 ‘부족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강동구 상일동의 대단지 아파트 ‘고덕아르테온’(4066세대)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입주민 투표를 거쳐 단지 내 보행로 보안시설 설치를 결정했다. 공공보행로지만, 입주민만 출입할 수 있도록 카드 인식 자동문과 펜스를 세워 외부인 출입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단지 중앙을 관통해 지하철 상일동역으로 이어지는 이 보행로는 재건축 당시 ‘공공 개방’이 허가 조건이었으나, 동시에 사유지로 지정돼 있다. 입주민들은 “외부인 난입으로 시설물 파손과 위협이 반복돼 안전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지자체가 단속과 관리에 나서지 않아 부담이 전적으로 입주민에게 전가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단지 이기주의의 전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행로가 막히면 인접한 고덕자이 주민들이 상일동역 5번 출구로 향하기 위해 최대 500m를 우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기자가 최근 찾은 고덕아르테온(4066세대) 단지는 고덕그라시움(4932세대)과 함께 강동구를 대표하는 대장 아파트 단지로 꼽힌다. 단지 주변으로는 고덕센트럴아이파크(1745세대), 고덕자이(1824세대),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4066세대) 등 대형 단지들이 밀집해 있다.
상일동역을 중심으로 한 ‘고덕주공 재건축 벨트’는 강동구 내에서도 가장 고밀도이자 상징적인 신축 주거지로, 단지 간 경계가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고덕비즈밸리 조성과 서울 지하철 9호선 연장선 신설이 맞물리면서, 앞으로 유동인구가 크게 늘고 상업·주거 기능이 더욱 복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상권 분석가의 전언이다. 주거와 업무, 교통이 집중된 지역에서 공공보행로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졌다는 점은 도시의 ‘공공성’이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읽힌다.
이곳에서 만난 상권 분석가는 “상일동역을 중심으로 방사형 구조를 이루는 초고밀도 대단지 주거지가 이미 형성돼 있고, 이 일대는 재개발·지하철 연장·상권 개발이 동시에 진행 중인 서울 동남권의 핵심 성장축”이라며 “이런 지역에서 단지 내부 통행로를 사유화하려는 움직임은 도시 공간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는 행위로, 결과적으로는 ‘알박기식 지역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보행로는 단순한 통행 수단이 아니라 상권과 생활권을 연결하는 도시의 모세혈관”이라며 “이 같은 사유화가 확산될 경우 지역 내 상권 순환 구조가 왜곡되고, 도시 전체의 공공성이 훼손될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강동구는 구청장이 직접 중재에 나섰으나 합의에 실패했고, 아르테온 측은 오는 13일 구청에 보안시설 설치 허가 공문을 제출할 예정이다. 비슷한 갈등은 송파구 신천동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올해 말 입주를 앞둔 ‘잠실 래미안아이파크(1706세대)’와 맞은편 ‘파크리오(6864세대)’ 주민들이 초등학교 배정 문제로 충돌하고 있다. 래미안아이파크 학생들이 파크리오 학생들이 다니는 잠실초등학교로 배정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파크리오 주민들이 “학급 과밀을 초래한다”며 반발한 것이다.
이들은 아이파크 학생들을 1km 이상 떨어진 방이초등학교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실 증축을 추진 중이지만, 파크리오 측은 “안전 문제가 있다”며 증축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갈등의 근저에는 ‘공공재의 희소화’와 ‘주거공간의 신분화’가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서울의 집값이 계층 서열을 상징하게 되면서, 아파트 단지는 이제 ‘공동체’가 아닌 ‘영역’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사회학자들은 이를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현상의 한국적 변형으로 본다. 도시가 점점 ‘닫힌 공간’으로 변하면서, “이웃이 아닌 적(敵)을 경계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동구에 신축아파트를 보유한 A씨는 강동구는 최근 천호뉴타운 2·3구역을 비롯해 둔촌주공, 명일동 일대 재건축 사업이 잇따르며 대규모 신축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본지에 “고덕동은 이미 강동구의 ‘대장 주거벨트’로 불릴 만큼 상징성이 크다”며 “이곳 단지들이 교통로와 보행로를 잇따라 사유화하기 시작하면, 천호·둔촌 등 다른 재건축 단지들도 ‘우리도 막자’며 따라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 일부 단지에서 이미 나타난 ‘폐쇄형 단지화’ 현상이 강동으로 번질 경우, 도시 전체의 보행 동선이 단절되고 지역 커뮤니티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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