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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길해성 팀장, 배수람·이슬비 기자]역대 정부는 육아정책에 적지 않은 공을 들여왔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고 일·가정 양립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였다. 현 문재인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과 직장생활에서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업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가족친화제도를 시행 중이다.
가족친화제도 유형으로는 유아휴직, 출산전후휴가, 양육수당지급, 배우자 출산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가족친화인증제를 실시해 인증을 받은 기업에는 정부사업 참여 시 가산·우선권 부여, 투·융자 대출 시 금리 우대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정부 기조와 함께 일과 가정의 균형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걸쳐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업들도 그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의 실행 측면에 있어 규모에 따라 확연한 온도차가 나타나 우려감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기업은 이미 정부 정책과 관계없이 선제적으로 관련 제도들을 시행해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는 반면 상황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제대로 실행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가족친화제도 시행이 대·중소기업 간 격차 확대, 중소기업 인력난 가중 등의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인력공백은 곧 회사위기”…육아휴직 맘 놓고 실행하면 회사가 망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약 1600만명 근로자 가운데 200만명 정도에 불과한 대기업 직원이 받은 육아휴직 급여가 1400만명을 차지하는 중소기업보다 더 많았다. 2016년 육아휴직 지급금액 총 6252억원 가운데 300인 이상 대기업 직원에게는 3300억원(52.8%), 300인 미만 중소기업 직원에에는 2952억원(47.2%) 등이 각각 지급됐다.
정부가 이른바 ‘워킹맘(일하는 여성을 일컫는 신조어)’을 위한 일·가정 양립 육아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회사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대기업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례로 CJ그룹은 지난해 5월 ‘자녀 입학 돌봄 휴가’를 신설해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한 달간 휴가를 지원하기로 했다. 남녀 관계없이 2주간 유급휴가를 지원하고 희망자에 한해 무급으로 2주를 추가 최대 한 달간 가정에서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
CJ그룹 관계자는 “직원들의 사용률을 살펴본 결과 여직원 70% 이상, 남직원 60% 이상이 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회사의 매출에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실질적인 복지제도를 기업 차원에서 마련하다보니 그에 따른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서울을 비롯한 수원·광주·구미 등 전 사업장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종전 1년이었던 육아휴직을 최대 2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인사제도를 개편·시행 중이다. 임산부가 휴식을 취하고 출산 이후에도 육아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유유축실’도 적극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대 2년이라는 공백이 생기더라도 회사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지금까지 원활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특히 요즘에는 남성들의 육아 참여 비율도 높아지고 있어 관련 제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상시적으로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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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
그러나 중소기업의 현실은 대기업의 일·가정 양립 육아대책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상황이 열악하고 인력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육아휴직 제도를 시행은 하지만 이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경영자나 직원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사용하는 당사자 역시 주변에 눈치가 보여 난감할 때가 많다는 반응을 보였다.
소프트웨어 관련 IT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형준(37·남·가명) 팀장은 “전체 직원이 30여명 정도 되는 스타트업이다 보니 한 명이 육아휴직으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게 되면 업무에 바로 지장이 생긴다”며 “결국 새로운 사람으로 빈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나중에 육아휴직이 끝나고 오는 사람은 다른 업무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육아휴직 1년이 보장된다고 하지만 남직원들은 아예 해당 사항이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고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여직원 같은 경우에는 퇴사를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육아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지만 각 개인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일·가정 양립을 외치고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중소기업에게는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민간보안업체를 운영 중인 고재열(59·남·가명) 사장은 “한 사람이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나머지 직원들의 업무가 늘어나는 데 반해 기본급은 매달 지급해야 하니까 결국 회사나 직원 모두에게 마이너스다”고 말했다.
고 씨는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사실 기본금을 받는다 해도 그 돈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며 “회사에서도 육아휴직을 권장해도 동료직원들 눈치 때문에 직원들이 먼저 회사를 관두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소기업 입장에서 육아휴직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처우개선, 인력난 등 근본적인 지원 대책 빠진 육아휴직 권장…결국 구색맞추기”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노동전문가 및 중소기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과의 처우개선, 인력수급 문제 등 근본적인 지원 대책이 선행돼야 육아정책이 중소기업에도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제조업계에서는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도 해당되는 젊은 인력이 없어 무용지물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근로자 10인 이상 전국 1만2129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7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중견 규모 사업체에 입사한 신입사원 3명 중 2명은 1년 안에 퇴사했다. 산업기술인력은 고졸 이상 학력을 갖고 사업체에서 △연구개발 △기술직 △생산·정보통신 업무 관련 관리자 △기업 임원 등으로 근무하는 인력을 일컫는다.
중소·중견기업에서의 조기퇴사율이 경력사원은 13.3%인데 반해 신입사원은 66.6%에 달했다. 젊은 층의 중소·중견기업 조기퇴사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화됐다. 중소·중견기업에서 일하는 20·30세대 비중 역시 갈수록 하락했다. 2014년 각각 15.6%, 38.1% 등에서 2016년 14.0%, 35.3% 등으로 감소했다.
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종길 전무는 제조업에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여직원이 간혹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회통념상 일컬어지는 ‘워킹맘’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문성을 가지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들은 중소기업 생산현장에서는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며 “제조업에서 말하는 워킹맘들은 40대 이상에 접어든 중년여성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육아휴직을 써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전무는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에서 내놓는 육아정책이 자칫 신규인력 채용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소기업에 청년들을 채용할 경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제도들은 대개 2~3년 정도에 그치는 일시적인 지원책이다”며 “그 기간을 채우고 나면 젊은 인력은 퇴사해버리기 십상인데 그러면 되레 남아있는 기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중소기업 상황이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 역시 중소기업에 청년들의 유입이 활발해지면 자연스럽게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워킹맘들의 육아휴직도 실효성을 얻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일시적인 지원금 지급은 근시안적인 접근에 불과해 일·가정 양립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근본적인 지원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세종사이버대학교 윤남수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육아휴직 같은 제도가 잘 갖춰져 있지 않고 설사 그걸 요구하더라도 받아들일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대기업처럼 인력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젊은 여성을 채용할 때 주저하는 부분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대부분 중소기업이 공단에 위치한 점을 감안해 금전적인 보전보다 모유수유시설, 공동육아시설 등을 국비로 마련해 관련 종사자들이 함께 이용하고 그 속에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가족친화제도 등을 기업이 자발적으로 선택·실행하는 것이지 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며 “예산 등의 현실적 문제가 있어 기업 쪽에서 최소한의 노력을 보이면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도 활용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기업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중소기업 위주로 가족친화인증을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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