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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배송’의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빠른 배송을 자랑하는 쿠팡이 최근 과로사 등 근로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쿠팡 작업장에서 숨진 근로자 수만 8명에 달하면서 열악한 근로환경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근로자들 역시 처우개선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업의 강도나 환경 등 쿠팡의 실상을 궁금해 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확한 사실 공개를 통해 개선할 점은 개선하고 과장된 부분은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스카이데일리는 쿠팡의 노동 강도와 환경을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하루 동안 직접 ‘쿠팡맨’이 돼 봤다.
말 많고 탈 많은 쿠팡…방역·안전 다 챙겼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
쿠팡은 경기도 화성에 자리한 쿠팡 동탄물류센터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기자 역시 저녁 시간에 맞춰 건대입구역 6번 출구 앞에서 셔틀버스를 탑승하기 위해 대기했다. 통상적으로 물류 작업은 저녁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물류센터로 출발하기 위한 사람들이 일렬로 줄지어 있었다. 버스에 탑승한 지 약 1시간 30분 가량이 지나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물류센터 입구에는 서울과 경기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셔틀버스들이 정차해 있었다.
센터 내로 들어가 손소독 후 쿠팡 전용앱으로 출근등록을 마쳤다. 관리자는 쿠팡 물류센터 내에서는 근무 도중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없다며 각자 소지품과 핸드폰을 반납하라고 지시했다. 락커룸에 넣어둔 휴대전화는 휴식시간(1시간)에 잠깐 사용할 수 있다고도 부연했다. 이후 처음 일하는 신규사원은 반드시 1시간 가량의 안전교육을 이수해야하는 규정에 맞춰 안정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시청각 방식으로 이뤄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다수가 잠을 자거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관리자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30분 뒤 몇 가지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친 후 관리자는 각자 맡을 공정을 배정했다. 기자는 출고 집품 파트 업무를 맡을 예정이었지만 허브(Hub)의 인력 부족으로 부득이하게 신규사원 모두 공정을 재배치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통상적으로 쿠팡 물류공정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출고, 입고, ICQA(재고), 허브 등이다. 그 중 허브는 상품 확인부터 지역별로 맞게 담겨있는지, 또는 다른 지역 상품이 섞여있진 않은지 등을 확인하는 업무다. 쉽게 말해 배송물건을 각 목적지별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기자가 이날 했던 업무는 컨테이너벨트에서 내려오는 박스를 파레트에 올려두고 분류작업 및 랩핑(박스에 테이프를 붙여 밀봉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작업에 투입하기 전 근로자들을 인솔했던 관리자는 각자 핫팩을 2개씩 챙기라고 말했다. 앞서 쿠팡이 난방을 목적으로 근로자들에게 핫팩 1개만 지급해 논란이 많았다. 이러한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필요하면 더 가져가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3시간이 경과한 22시30분, 한창 작업에 익숙할 때쯤 1차로 식사를 하라는 방송멘트가 흘러나왔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면 급식이 아닌 도시락 배식이 이뤄졌다. 책상은 혼자서 앉도록 돼 있었고 칸막이가 구비돼 있었다. 앞서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를 의식한 탓인지 방역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쌀쌀한 저녁 날씨 탓에 밥과 반찬은 차갑게 식어있었고 근로자들은 아무런 말없이 먹는 데만 집중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기자와 함께 허브 작업을 했던 근로자 권상철(가명) 씨와 담소를 나눴다. 그는 일용직 근로자였지만 이곳에서 1년 가까이 일한 베테랑 이었다. 권 씨는 “최근 잇따른 근로자 사망사건 이후에 근로환경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아직까지 개선된 점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며 “주 3일마다 야간근무를 하면서도 식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는 쉴 새 없이 일해야 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 결국 근로자들의 건강을 악화시키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단 한 시간의 휴식조차 편할 수 없는 환경…그 이후에 찾아온 고강도 작업
식사를 마치고 근로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는 휴게실로 가봤다. 물류센터 1층에 마련된 휴게실에는 우산형 난로 4기가 설치돼 있었다.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지급받은 핫팩으로 몸을 녹이기 바빠 보였다. 옆에 있던 권 씨는 “휴식을 하려면 제대로 된 공간에서 마음 놓고 쉬는 것이 중요한데 보다시피 열악한 편이다”며 “휴게실에 쉴 공간이 마땅치 않아 노동자들은 과로사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귀띔했다.
휴게실은 잠시라도 쉬기 위한 근로자들로 붐볐지만 정작 비치된 의자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일부 근로자들은 락커룸 앞에 쪼그려 앉거나 아예 누워서 쉬고 있었다. 하루 10시간 가까이 서서 고강도의 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을 위한 휴게실이라 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1시간의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작업장으로 들어가 같은 업무를 수행했다. 그로부터 약 2시간이 경과한 새벽 1시가 되자 무거운 물건들이 컨베이어를 따라 하나 둘 내려오기 시작하더니 점차 숫자가 늘어났다. 잠시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보니 근로자 대부분이 입고 있던 겉옷을 탈의한 채 작업에 매진 중이었다.
또 다른 일용직 노동자 김기호 씨는 “새벽 1시가 넘으면 컨베이어벨트에서 박스물량이 쉴 틈 없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워낙 물량이 많고 몸을 빨리 움직여야 되다보니 추운 날씨조차 못 느낀느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저녁식사 후 따로 쉬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으며 화장실 가는 시간이 유일하게 쿠팡에서 허락한 쉬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녹록치 않다. 물량이 많고 마감시간이 임박할 땐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쉬는 시간 없이 계속된 작업에 근로자들은 하나 둘 말을 잃어갔다. 저녁시간 전까지만 해도 주변 근로자들 사이에서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한 이후에는 단 한마디의 대화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취재만 아니면 당장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허리와 팔이 쑤실 정도로 근로강도가 쎘다.
그러던 중 ‘마감이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서둘러달라’는 작업장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시계바늘은 어느덧 3시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4시가 되자 한 관리자가 각 파트를 돌아다니면서 연장근무 가능여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기자는 관리자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
10시간 가까운 고된 근로를 마치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머릿속엔 다양한 생각이 맴돌았다. 우리나라를 넘어 아시아 시장을 넘보는 신흥 유통강자 쿠팡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몇 시간 전에 몸소 느꼈던 열악한 처우가 순간 오버랩 됐다. 쿠팡이 진정한 글로벌 유통강자로 우뚝 서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노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됐다. 비록 하루였지만 쿠팡맨이 돼 본 경험자로서 쿠팡의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는 지금처럼 아주 모자라지 않은,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의 ‘근로자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창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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