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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게임 시장을 집어삼키고 있는 중국이 국내 게임업계에도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차이나 리스크’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국내 게임업계에 유독 엄격한 규제를 들이밀고 있어 국내 게임업계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중국 기업이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한국 게임시장에 진출하면서 국내 게임업계가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기업이 정치·외교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게임이 중국의 문화침탈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나 리스크에…인도 시장선 퇴출·중국 시장 출시는 감감무소식
텐센트는 자회사를 통해 넷마블 주식의 17.54%, 크래프톤 주식의 15.52%를 보유하고 있다. 텐센트는 아워팜·로얄크로우 등 중소게임사 지분도 사들였다. 게임 업계에 텐센트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국내 게임 회사가 차이나 리스크에 휘말리는 사례도 부쩍 늘고 있다.
크래프톤은 5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 로고를 공개했다. 지난해 9월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퇴출한 지 8개월 만이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중국과 인도 간 국경 분쟁이 불거진 이후 인도에서 중국 기업들을 퇴출하는 과정에서 텐센트가 퍼블리싱을 맡았다는 이유로 퇴출당했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퇴출 당시 인도 하루 이용자는 약 3300만 명으로 알려졌다. 인도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크래프톤은 인도 서비스를 재개하면서 1100억원의 대규모 현지 투자와 현지법인 설립, 현지 인력 고용 등을 약속했다.
크래프톤이 최근 공모 청약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것도 ‘차이나 리스크’ 여파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출의 상당 부분이 중국 시장에서 발생하는 상황인 만큼 중국 내에서 게임 관련 규제가 발생하거나 외교 문제가 발생하면 타격을 피하기 힘들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배동근 크래프톤 CFO는 “중국에 대한 매출 의존도는 높지 않다”며 “당사 퍼블리셔의 위치가 중국에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 크래프톤이 전 세계에 직접 서비스하고 있는 배틀그라운드 등의 게임들이 매출의 과반을 넘는다”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과의 협력은 인구 13억의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한국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넥슨의 ‘던전 앤 파이터’와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는 텐센트와 손을 잡고 중국 시장에 진출해 각각 2019년 매출 1조원, 6000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국내 게임들의 중국 시장 출시가 연달아 연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과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레드나이츠’ 등이 허가 신청을 한 뒤 3년이 지났지만 판호(게임 등 출판물이 중국 내에서 서비스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고유번호)를 발급받지 못해 출시가 미뤄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이후 ‘한한령’의 일환으로 한국 게임들의 판호 발급을 막고 있다. 지난해 12월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가 판호를 발급받아 중국 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가 커졌지만, 추가적인 판호 발급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내 수많은 게임사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판호 발급 허가를 신청했지만 문턱을 넘은 건 손에 꼽을 정도다. 텐센트와 손잡고 중국 시장 진출을 추진한 펄어비스의 ‘검은사막’만이 약 2년 4개월 만에 중국으로부터 판호를 발급받았을 뿐이다.
판호를 발급받았다고 해도 넘어야 할 관문은 또 있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버전은 지난해 8월 중국 출시가 연기된 후 아직도 중국 시장에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미성년자 게임 의존 방지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위해서지만 중국 정부가 게임 산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보니 텐센트 역시 눈치를 보느라 게임 출시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판호가 나올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보니 중국시장을 포기하고 동남아시아로 방향을 틀거나 미국·유럽 시장 진출을 노리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샤이닝 니키·세라핀 사태…중국 자본 영향력 확대에 문화침탈 우려
중국 정부에 의한 리스크 외에도 중국 자본에 의해 국내 게임 업계가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중국 자본이 투입된 게임 등이 중국 정부의 문화 침탈에 이용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4월 국내 출시된 중국 모바일 게임 ‘황제라 칭하라’ 등장 캐릭터의 청나라 의복이 2016년 종영된 SBS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려’에서 아이유가 입었던 한복과 비슷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에는 중국 게임사 ‘페이퍼게임즈’가 출시한 ‘샤이닝 니키’가 한복 의상을 출시한 후 게이머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게임 속 한복 아이템이 중국의 전통 의상이라는 주장이 중국 유저들 사이에서 나오자 페이퍼게임즈는 이를 수용했다. 한국 유저들이 항의하자 페이퍼게임즈는 샤이닝 니키의 한국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한국 서비스 중단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로 유명한 라이엇 게임즈도 반중 감정에 불을 지폈다. 라이엇 게임즈는 미국 회사지만 텐센트에 인수돼 텐센트가 지분 100%를 소유 중이다. 지난해 라이엇 게임즈가 신 캐릭터 ‘세라핀’을 출시하면서 공개된 캐릭터 대사 중 한국 버전에서만 ‘화이팅!’이 ‘짜요!’로 변경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세라핀은 공개될 당시 게임 내 K-POP 걸그룹 K/DA와 콜라보를 진행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세라핀의 보컬 담당이 중국 가수라는 점과 분명히 K-POP 장르로 분류된 노래에 중국어 가사가 포함됐다는 점까지 발견돼 중국 정부가 K-POP을 문화 침탈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텐센트는 라이엇 게임즈를 인수하면서 경영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라이엇게임즈가 중국 자본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 게임사도 중국 자본의 영향이 커지면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 열린 ‘게임산업계 현장 간담회’에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소개발사 같은 경우에는 텐센트와 계약 시 경영권, 소스 코드 등 상당히 많은 걸 내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한다”며 “중국 게임사에 의해 한국 게임이 휘둘리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 회사가 해외에서 수익을 얻는다고 해도 국내 매출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며 “중국의 문화 침탈에 대한 경계심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와 관련된 요소가 발견되면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당장 노골적인 문화 침탈은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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