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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함께 나이 들며 맛도 무르익는 명동 노포

다시 문 열길 바라는 최불암 모친의 ‘은성’

담백과 구수함이 웅숭깊은 설렁탕 ‘미성옥’

서울 스타일 옛날식 양념 갈비 ‘장수갈비’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20 10:13:42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명동이란 이름은 조선 시대 한성부 5부 49방 중 남부 명례방(明禮坊)에서 유래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곳을 명례방골 또는 북고개, 종현(鍾峴)이라 했다. 북고개의 원래 이름은 북달재로 조선 초 간고(諫鼓)를 달아놓고 억울한 사정이나 조정에 알릴 일이 있는 사람은 북을 쳐서 하소연하도록 한데서 나왔다. 일제 때는 명치정으로 불렸다. 한 곳의 지명이 이처럼 복잡한 이유는 순우리말 지명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억지로 한자화 되고 다시 해방 이후 행정구역 변경 등을 통하면서 곡절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명동의 본격적인 변화는 일제강점기 때다. 조선 시대 이 지역은 주택 밀집 지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때 충무로 일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면서 명동도 점차 변모하게 됐다. 1923년 이후부터 명동은 서울의 번화가가 됐다.
 
이 무렵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본정통 입구 사진을 보면 이미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왼쪽 아래에 전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①조선은행(1915), 오른쪽으로 대각선 방향의 길 건너에 있는 건물이 ②경성우편국(1912)이다. 경성우편국 건물에 의해 일부 가려진 건물이 ③조선상업은행(1911)이다. 이 세 건물 사이의 넓은 공간을 당시 ④‘鮮銀前廣場’(조은전광장)(현 한국은행 앞 네거리)이라 불렀다. 이곳은 동시에 본정통의 입구 앞 광장이기도 했다.
 
1920년대부터 급변한 명동
  
▲ 일제가 발행한 엽서의 사진. 1920년대 초반 명동의 입구 변화를 보여준다. [사진=필자제공]
 
사진에서 본정통은 경성우편국 바로 옆 골목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뻗어 있다. 선은전 광장으로부터 9시 방향으로 난 도로가 남대문통(현 남대문로)이며, 11시 방향의 길이 현재의 소공로다. 소공로 중간 왼쪽에 ⑤경성상공회의소(1920) 건물이 있고, 길 건너 오른쪽에는 ⑥조선 호텔(1914)이 보인다. 소공로의 끝 지점에 아직 ⑦경성부청 신청사(1926)가 보이지 않고 조선은행 맞은편에는 미쓰코시 백화점(1934)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사진 속 도시 경관은 1920년대 초로 추정된다.
 
1910년 일본인 거류민단은 자신들의 주요 거주지에 ‘정(町)’이라는 일본식 지명을 붙였다. 지금의 충무로에 해당하는 당시 진고개길 일대는 本町(본정), 명동 일대는 明治町(명치정)으로 바꿔 불렀다. 당시 일본인 거류민단이 지명 변경을 건의하면 일본 영사는 그것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대적인 행정구역 명칭 변경을 시행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에 의해 ‘본정’이 공식 지명으로 등장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본정을 지역에 따라 혼초, 혼마치, 모토마치 등으로 읽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혼마치로 발음했다. 일본인들에게 중심가란 의미를 담은 지명이다.
 
일제 패망과 광복, 그리고 6·25전쟁을 전후한 시기 명동은 여전히 서울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 명동 일대는 금융 중심가이자 자본주의 반대급부인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문화와 위락 공간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파괴된 이 지역은 위정자들의 관심으로 전후 복구 과정에서 금융, 문화, 상업, 위락 등의 중심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1952년 전후 시가지 복구 사업 계획을 고시하면서 명동과 충무로 일대를 가장 시급히 복구해야 할 지역에 포함시켰다. 고시 시행 직후 일대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실시해 1962년에 완료하게 된다. 전후 서울시 복구를 담당했던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은 “대통령, 서울시장과 함께 명동, 진고개, 남대문 일대를 여러 차례 돌아다녔다. 그리고 폐허를 걷다가 지치면 진고개(충무로 2가)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다방에서 차를 마셨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 속에 전후 복구가 가장 빨리 진행됐고 대표적인 소비 공간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광복의 환희, 전후의 허무가 명동 거리를 뒤덮었고 문화예술인들은 명동거리의 다방과 술집 등에 모여 어려운 시기 예술과 인생을 논하며 회포를 풀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어김없이 음식점과 주점이 들어서기 마련. 명동 역시 유명한 음식점 여럿이 이 무렵 들어선다.
 
표지석만 남아있는 문인들의 아지트
 
▲ 지금은 사라지고 명동파출소 앞에 표석만 남은 ‘은성주점’은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였다. 인제산촌박물관 내 박인환문학관에 복원해 놓은 은성주점(아래). [사진=필자제공]
 
대표적인 곳이 지금은 사라지고 명동파출소 앞에 표석만 남은 ‘은성주점’이다. 표석에는 ‘문화예술인이 찾았던 은성주점 터’라고 돼 있고 내용은 이곳에서 약 10m 앞에는 1960년대 소설가이자 언론인 이봉구(1915~1983)와 변영로, 박인환, 전혜린, 임만섭 등이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던 주점 터이다. 특히 이봉구 선생은 명동을 좋아하여 ’명동시장(明洞市長)·명동백작(明洞伯爵)‘이란 애칭으로 불렸다고 쓰여 있다.
 
‘은성주점’은 막걸리 주점이었는데 주인은 다름 아닌 탤런트 최불암 씨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1986년 작고)가 운영하던 곳이다. 이 여사는 영화 제작자였던 남편과 일찌기 사별하고 외아들인 최 씨와 생계를 잇기 위해 ‘은성’을 열었다. 표석에 없는 인물 중 박인환, 김수영, 오상순, 천상병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자주 찾았다.
 
박인환 시인은 이 여사가 외상값을 갚으라고 하자 즉석에서 시를 써 내려갔다. 이것이 후일 박인희가 부른 ‘세월이 가면’이다. 최 씨는 ‘은성’의 부활을 조심스레 알아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애환과 어린 시절 기억이 서린 ‘은성’의 부활, 참 멋질 것 같단 생각이다.
 
그 옛날 ‘은성’을 거치면서 현대사에 영롱한 시어를 남긴 이들과 그들의 시가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개인적으로 필자 할머니의 숙부였던 변영로 선생이 생각난다. 단 한 번 뵌 적 없지만 이명숙 여사처럼 일찍 청상이 된 필자 어머니를 음양으로 많이 도왔다고 한다. 그리고 오상순, 천상병 등과 어울려 한강에서 배 타고 술 먹은 일화며 염상섭, 이관구 등과 술에 취해 홀딱 벗고 소를 타고 활보했다는 전설을 들으면 그 시절이 꽤나 낭만적이었단 생각이 든다.
 
명동에는 유명한 노포가 즐비하다. 하동관, 명동교자, 명동영양센터, 명동할머니국수, 전주중앙회관, 개화(중식당) 이외에도 필자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최근에 만나면 3,4차는 기본인 선배와 명동에서 만나기로 한 김에 노포 몇 곳을 들렀다.
 
“57년 차 내공 수육 맛보세요”
 
▲ 1966년 문을 연 설렁탕 전문점 ‘미성옥’의 설렁탕과 수육. [사진=필자제공]
 
먼저 골목 안으로 꼬불꼬불 찾아 들어가는 노포 ‘미성옥’이다. 설렁탕 전문점 ‘미성옥’은 1966년부터 지금까지 56년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오면서 뚝심 있기 깊은 맛을 내는 곳이다. 점포에 들어서면 ‘영동설렁탕’ 같은 고릿함은 없지만 분위기가 천상 노포다. 메인 메뉴에 사용되는 한우부터 쌀, 김치 등의 부재료까지 국내산 재료만 고집스럽게 사용해 오고 있다.
 
대표 메뉴는 뽀얀 국물에 소면과 고기를 넉넉하게 담아 제공하는 설렁탕이다. 담백하고 한편으로 웅숭깊은 구수한 맛이 숟가락을 놓지 못하게 한다. 곰탕 버전 국물과 잡내 없이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의 조화가 일품이다. 고기와 소면을 어느 정도 건져 먹은 후, 밥을 말아 깍두기와 김치를 올려 먹는 방법이 인기라고 한다.
 
수육은 양지, 사태, 차돌박이, 머리고기, 우설, 지라 등 다양한 부위가 나온다. 여러 부위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따라 나오는 것이 수육이다. 미성옥 측은 “부위마다 다른 식감과 풍미를 즐길 수 있어 술안주로도 좋다”고 홍보한다. ‘술안주로 좋다’ 제일 마음에 드는 홍보 문구다. 물론 이날도 선배와 충실히 문구를 따랐다.
 
조리 후 달군 철판에 담겨 나오는 갈비
 
▲ ‘장수갈비’는 1968년 문을 연 갈비 전문점이다. [사진=필자제공]
 
‘장수갈비’는 1968년 문을 연 갈비 전문점이다. 서울 스타일의 옛날식 양념 갈비를 선보인다. 양념장에 재운 갈비를 주방에서 따로 굽고 뜨겁게 달군 무쇠 철판에 내준다. 무쇠 철판은 황소 모양으로 장수갈비 맞춤 기물이다. 2018년 1만2000원(150g) 했던 갈비가 지금은 1만8000원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다만 정갈하고 맛있는 김치와 깍두기 등 밑반찬이 가격 상승의 섭섭함을 달래준다. 당면과 버섯, 소갈비가 들어간 갈비국도 인기 메뉴라고 한다.
 
3차로 근처에 있는 중식당으로 향했다. 명동은 한성화교학교가 있었던 터라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집이 아직도 많다. 꽁시면관(恭喜面館)도 그중 한 곳이다. 꽁시는 꽁시꽁시(恭喜恭喜)에서 나온 말이다. 꽁시꽁시는 '축하한다'는 뜻이다. 면관은 대중음식점을 말한다. 육즙 작렬 샤오룽바오(小籠包, 소룡포)와 새우 소룡포가 역시 명불허전이다. 구복만두가 캐주얼한 맛이라면 이곳은 다소 묵직하다.
 
샤오룽바오는 바오쯔(包子, 중국식 만두)의 일종으로 작은 대나무 찜통인 샤오룽(小籠)에 쪄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상하이, 창저우, 우시,장시, 항저우, 난징 등 중국 양쯔강 남쪽 지역의 대표 먹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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