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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가 지난 연말부터 공공기관장을 잇달아 새로 임명하며 이른바 ‘정권 말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를 단행한데 대한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임명된 상당수 인사가 이른바 ‘캠코더(캠프 출신·코드 인사·더 불어민주당 소속)’로 불리며 자진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일부 기관장이 ‘자리 굳히기’에 나서며 신·구 권력 대립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대통령이 임기 말에 기관장을 새로 임명하는 ‘알박기 인사’는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 불일치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활한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목돼 온것 또한 사실이다. 공공기관은 정부 정책의 집행 및 지원을 담당하는 곳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책 방향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역할을 해왔다.
공공기관에 대한 고강도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윤 정부의 국정 기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임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대통령과 그 뜻을 함께하는 전문성 있는 기관장들이 호흡을 맞춰야 한다. 문 정부가 지명한 기관장들에 대한 대한 자진사퇴 압박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與, 문 정부 공공기관 알박기 몽니 인사 … ‘59명+22명’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달 2일 문 정부의 임기 말 ‘알박기 인사’로 임명된 공공기관 주요 보직자 59명 중 상당수가 아직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2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 저격했다. 권 대행은 “이런 비상식의 최종 책임자는 문 전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권 대행은 “후임 대통령이 일할 수 있게 배려하기는커녕 대규모 낙하산 인사로 알박기를 한 저의가 무엇인가. 새 정부에 대한 몽니였나 아니면 퇴임 이후가 두려워 보험 인사를 남발한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17년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 박근혜정부 때 임명된 국책연구원장들에게 임기 만료 전 줄사표를 받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3월 기준 국민의힘이 자체 조사한 결과 등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 임기 종료 6개월 이내에 임명된 공공기관 기관장이나 이사 등은 총 59명이다. 이와 함께 2024년까지 임기인 인사는 28명, 2025년까지 임기인 인사는 14명에 달한다. 이달 17일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은 알박기 인사가 기존 59명보다 22명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문 정부 시절 비서실 인사는 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올해 안에 기관장을 임명할 수 있는 공기업·준정부기관은 전체 130곳(공기업·36곳, 준정부기관·94곳) 가운데 10.8%인 14곳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 임기와 관계없이 기관장은 3년, 이사와 감사는 2년의 임기를 보장하도록 규정해놨다. 지난 5월 공공기관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 정부에서 임명돼 3년 임기가 남아 있는 기관장이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현재 60% 이상의 공공기관장은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다는 얘기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등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350개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상임감사 460명(공석 23명 포함) 가운데 290명(64%)의 임기가 1년 이상 남아있는 것으로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207명(45%)는 임기가 2년 이상 남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권 교체 → 자진사퇴’ 관행 달라진 이유
앞서는 정권이 바뀌면 관행적으로 공공기관 및 연구기관의 기관장들이 사표를 냈다. 그러나 문 정부의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2017~2018년 박근혜정부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로부터 사표를 받아내고 공석이 된 후임 자리에 청와대나 환경부가 점찍은 인물들을 앉힌 혐의를 받아왔다.
문재인정부가 임명한 전·현직 장관 가운데 첫 실형이 확정된 사건도 있다. 올해 1월27일 대법원은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이 수사를 윤석열 검찰이 담당한 것도 눈길을 끈다. 국민의힘 전신인 당시 자유한국당은 김 전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고, 그 이후 자발적 사퇴 분위기는 수그러들고 말았다.
여권은 간접적 압박 행보에 나섰다. 윤 석열정부도 여당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내각에서는 임기가 내년까지인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당·정의 자진사퇴 요구를 거부하며 사실상 자리지키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윤 정부는 두 위원장을 국무회의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거취문제에 대해 “임기가 있으니 자기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겠느냐”라고 모호한 답변을 남기며 당사자들에게 공을 떠넘겼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필수요원, 국무위원도 아닌 사람들이 와서 앉아 있으면 다른 국무위원들이 주저할 수 밖에 없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권 대행은 재차 맹공에 나섰다. 지난 4일에는 기자들을 만나 “공공기관장이나 장관급 공무원은 대통령의 정치철학, 국정과제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원칙”이라며 “민주당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주장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을 통해 “임명된 인사 대부분은 민주당과 청와대 출신 등으로 누가 보더라도 전문성과는 무관한 보은성 인사”라며 “공공기관장들은 ‘개인적인 임기’보다는 국민이 바라는 ‘합리적 상식’에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한다”라고 자진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실제 자진사퇴도 이어졌다. 권 대행은 문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홍장표 전 KDI 원장을 ‘알박기 인사’ 예시로 거명했다. 홍 전 원장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설계한 인물로 문재인정부 초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이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도 역임했다.
권 대행은 홍 원장이 소득주도성장 정책 설계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경제폭망의 주범이 도대체 무슨 염치로 자리보전을 하면서 세금을 축내고 있나"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지난달 28일 세종 총리 공관에서 열린 취임 1개월 기념 기자단 만찬에서 홍 원장에 대해 “소득주도성장 설계자가 KDI 원장으로 앉아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사실상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 결국 홍 전 원장은 6일 자진 사퇴했다. 일자리 수석을 지낸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장(KLI)도 사의를 표명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취임 한 달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과 공공기관 수장·임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특별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임기가 남아 있는 공공기관장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돼 정권 교체기에 권력 갈등을 증폭하는 고질적 문제로 작동해온 만큼 여·야의 전폭적 협의에 따른 대통령·기관장 임기 불일치를 없앨 제도 마련이 절박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 위원장은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임기제 공무원의 임기와 대통령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측은 같은 날 “입법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그 전에 알박기 인사부터 결자해지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한편 감사원은 지난달 22일부터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대대적 감사에 착수해 며 25일부터 내달 12일까지 보름 동안 직원을 현지에 파견하는 ‘실지감사’를 실시키로 했다. 이번 감사원의 방통위 정기감사는 2019년 이후 3년 만으로 감사원 측은 기관별 정기감사는 2년에서 5년 주기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또 이미 예정돼 있었던 만큼 최근 국민의힘측에 의해 사퇴 압박을 받는 한 위원장의 거취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검찰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문 정부 출범 초기 산하 공공기관장들을 압박해 사표를 받아냈다는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이들은 대선이 끝난 시점에서 급물살을 타면서 문 정부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탈원전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산하 발전사 사장들을 교체하려 불법적으로 사표를 받아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사건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이인호 전 차관 등 4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발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문 정부 출범 첫해 9월 산업부 담당 국장이 광화문 소재 호텔로 4개 발전사 사장들을 각각 불러내 사표를 요구했고 당시 임기가 1년4개월~2년2개월 남아있었음에도 모두 사표를 냈는데 그 배후에 산업부 장·차관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번 사태의 핵심인 셈이다.
검찰은 ‘환경부·산업부 블랙리스트’와 유사한 사건들이 동부지검에 여러 건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특감반 330개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국무총리실·과기부·통일부·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이 그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초 문 정부 초기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등을 통해 전 정권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고, 특별감찰반의 불법 감찰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두고 국민의힘이 고발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등에 배당해 수사에 나선 상태다. 문재인 정부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청와대 전 민정수석) 등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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