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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 ‘이태원 참사’로 돌아보는 정신건강 시스템
대형 참사 ‘트라우마’… 치료 시스템 있으나 ‘망설임’은 여전
대형 참사 때마다 직·간접 노출되는 스트레스
심리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문제해결 걸림돌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느낄 때 찾도록 유도해야”
이건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1-16 00:05:00
▲지난 3일, 이태원 참사 사고 닷새가 지났지만, 추모를 위한 시민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스카이데일리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닷새가 흐른 3일, 이태원 1번 출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안타까운 비극의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의 마음을 표했다. 역 입구에 꽃과 포스트잇·과자·음료 등이 계속 쌓여만 갔다. 서울광장도 마찬가지였다.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은 점심시간을 쪼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슬픔에 잠겼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무기력·우울감을 호소했고 TV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간접적으로 노출된 사람 중에서도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국가적 대형 사고가 피해자와 직접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고로 재발 방지 대책 등 시급한 현안들이 쌓였지만, 결코 제쳐둘 수 없는 것이 국민의 심리적 안정이다. 사고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의 마음 건강을 챙기면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 등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바이러스
 
사고로 친구를 잃은 외국인 네이선(24) 씨는 어제 사망한 친구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순천향대학병원을 서성거렸다. 그는 사고 전 현장 상황을 이야기할 때는 침착하게 설명했지만 숨진 친구들의 이야기를 할 때는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커뮤니티를 통해 사고 생존자가 쓴 글이라며 소개된 게시물도 올라왔다. 글에는 “SNS를 보며 무력감과 원망스러운 감정이 무지막지하게 올라왔다며 사고 후 SNS를 통해 퍼지는 이야기를 보며 부정적 감정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는 제 자신이 너무 징그러운 인간인 것 같다면서 참사 이후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뉴스를 보는데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시작되더니 구토할 것만 같았다며 후유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사고 현장에 노출된 후유증은 구출을 위해 출동한 경찰관에게도 덮쳐왔다. 당시 현장에 투입된 경찰관 A씨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지인이나 SNS를 통해 관련 내용을 전달받으면 고통스럽다다들 괜찮은 줄 알았는데 팀원 중 한 명이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문제는 이런 후유증을 사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디어 등을 통해 사고를 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에게도 우울감과 무기력은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져나간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세월호 참사 전후 한국 성인의 우울 궤적 분석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직후에 성인들의 우울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국가적 대형 참사가 사회적인 우울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7년 동안 우울 문항에 응답한 19세 이상 9393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2년에는 평균 6.31점 수준이었던 우울감이 2018년에도 6.67점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에는 8.76점으로 훨씬 높아져 있었다.
 
해당 논문은 자아 존중감이 높고 이타심 수준이 높을수록 참사로 인한 우울 수준은 일시적으로 더 크게 증가했다정치적 지향에 따라서는 우울 수준 변화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던만큼 참사로 인한 우울 현상은 전 사회적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다.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은 60대 신 모씨는 가슴이 먹먹하고 참담하다이틀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밝혔. 분향소에서는 엎드린 채 숨죽여 눈물을 흘리는 청년부터 젊은이의 죽음이 애통하다며 절규하는 노인까지 많은 사람이 슬픔을 호소했다.
 
허난설 순천향대 청소년상담학과 교수는 시청각적으로 간접 노출된 경우를 대리 외상이라 설명하며 우려를 나타냈다. 허 교수는 대리 외상은 직접적인 외상보다는 적지만 일상생활에서 트라우마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면서 간접적인 대리 외상도 건강한 일상생활로의 복귀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0월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문을 마치고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마음 바이러스치료하기를 꺼리는 대한민국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피해를 호소할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 파급력은 크지만,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 분야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보건복지부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7.1%로 미국(201543.1%)·캐나다(201446.5%)·호주(200934.9%)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정신건강문제 상담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발표한 대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조사에는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적 없는 응답자 488명 중 74.3%가 향후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할 경우 주변인 또는 전문가 상의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정신질환과 우울증에 대한 부정적 답변도 낮게 나오면서 인식이 개선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정신질환을 위한 고용·문화 등의 서비스가 충분하다는 의견에 46.6%가 부정적으로 답했고 내가 정신질환에 걸리면 친구들은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은 22.5%에 불과했다.
 
결국 정신질환을 극복해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사회적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신질환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021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이 진행한 대국민 특별기획 심포지엄에서 박지은 서울대 교수는 여전히 정신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모르겠고, 두렵고,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방황으로 치료 시기가 늦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정신과 진입장벽 중 제도적 불이익과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이 61.8%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면서 일선 선생님들은 적극적으로 진료정보가 보호되고 있음을 알리고 예외적인 경우에 대한 설명을 명확히 해야한다며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달 31일부터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통해 재난 현장 및 이태원 인근 상가, 대중매체를 통한 사고 간접 경험자 등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심리적 응급처치와 전문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재난 현장에 있었던 사람뿐만 아니라 이태원 사고를 접한 모든 이들은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전국 대표번호 1670-9512를 통해 상담 신청 가능하며,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에서도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경남도청 합동분향소 내 재난심리상담 부스 및 회복지원차량. [뉴시스]
 
이태원 사고 계기로 사회 인식 개선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이번 이태원 사고이후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추모 현장 한 곳에는 마음건강 버스가 함께 해 피해자들은 물론, 사고 이후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일반인들의 상담까지 도왔다.
 
한국임상심리학회 등 관련 학회들에서는 성명서를 내고 지원활동을 약속하며 호흡법과 주변 사람들의 역할 등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지침을 안내하기도 했다.
 
사고 이후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도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태원 파출소에서는 심리 치료를 요청해 민간 심리상담가가 상주하며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들을 11 상담해주고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을 활용하기에는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해 망설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왕실이 정신질환 인식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전 왕자는 상담 치료 홈페이지 캠페인 광고에 내레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해리 전 왕자는 어머니인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세상을 떠난 뒤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 있다고 밝힌 적도 있다.
 
허 교수는 “(우리 사회는) 어려움이 있을 때 정신과나 심리 상담이 도움이 된다는 인식 자체가 낮다사회적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느낄 때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인식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정신과·정신건강증진센터·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주요 기관의 서비스 종류를 명확히 해주고 대중들에게 와닿게홍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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