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가난했지만 피나우의 웃음꽃은 못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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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데뷔 첫 승에 무려 188개 대회 걸려
통가 이민자 출신으로 어려운 시절 겪어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5-10 08:30:50

엄청난 상금이 걸린 프로 골프 대회는 비(非)시즌인 겨울철을 빼고는 매주 열리다시피 한다. 미국프로골프(PGA)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가 다 그렇다. 우승 상금만 해도 보통 20억 원이 걸린 PGA 투어의 경우 1년에 대회가 47개나 열리는 만큼 매주 열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투어에서 상금과 명예가 걸린 우승을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20년가량 투어 프로로 활약하면서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은퇴를 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일단 우승을 하면 ‘위너스’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이 따라붙는다.

얼마 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도 1995년생 이주미가 투어 출전 148회 만에 생애 첫 우승을 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안송이(237회)·박소연(167회)·윤채영(157회)등은 이주미보다 더 오랫동안 우승 컵을 안아 보지 못한 선수들이다. 투어 프로 선수들 간의 실력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하지만 정작 우승해 본 선수가 또 우승을 하는 케이스가 많다.

2007년 PGA투어에 데뷔한 미국의 토니 피나우는 2016년 푸에르토리코 오픈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두기까지 무려 188개 대회가 걸렸다.

큰 키(193㎝)에서 나오는 호쾌한 장타와 정교한 샷을 장착한 피나우가 차세대 스타로 떠오르는 건 따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이후 우승 소식은 끊겼다. 성적이 그다지 나빴던 것도 아니다. 준우승 여덟 번을 포함해 모두 39차례나 톱10에 들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뒷심이 약하다’느니 ‘멘털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최종 라운드 선두로 시작한 네 번의 경기에서 모두 경쟁자에게 우승을 내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피나우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나 자신를 믿는다. 기회는 올 것”이라며 우승을 못 해도 덤덤하게 웃었다. 그렇게 여유있는 그를 보면서 주변에서는 근성이 없어 우승은 못 할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피나우의 ‘헝그리 정신’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PGA투어에서 피나우만큼 끔찍하게 어려운 시절을 겪은 경우도 없을 듯하다. 남태평양의 소국 통가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그의 아버지는 항공사에서 심야에 화물 운송 준비하는 일을 하며 힘겹게 7남매를 키웠다. 수당을 더 받을 요량으로 심야 근무를 자청했다. 밤일을 하느라 낮에는 잠을 자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어려서부터 골프에 소질을 보인 그는 14세 때까지 차고에서 샷을 연습했다. 연습장은 엄두도 못 냈던 어린 시절이었다.

어머니와 사흘간 차에서 자고 햄버거만 먹으면서 대회에 나선 적도 있다. 어머니는 사흘 내리 굶었다고 한다. 가난한 탓에 시합에 나갈 경비가 없어서도 많은 고생을 했다. 주니어 때 대회장에 가서도 다른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러 가는데 아들만 보내고, 본인은 돈이 없어서 가지 않았다. 뒤늦게 그걸 알게 된 피나우는 꼭 훌륭한 선수가 되어 어머니께 보답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일찌감치 세상을 떴다. 피나우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부분이다.

▲ 1일 PGA 투어 멕시코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 하는 피나우 가족. EPA=연합뉴스

18세 때 여러 대학 골프팀으로부터 입학 제의를 받았으나 프로로 전향했다. 당장 입에 풀칠을 해야 했던 그였다. 7년 동안 그는 이렇다 할 상금이 없는 미니 투어를 전전하며 번번이 PGA투어 Q스쿨에서 탈락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겪었지만 가난도, 비난도, 자기 의심도 다 삭이고 불평없이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했다. ‘미스터 스마일’이라고 불리며 PGA투어의 나이스 가이(nice guy)로 선정되기도 했다.

피나우는 PGA투어에서 첫 승을 거둔 이후 2022년 8월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차전인 노던 트러스트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또 5년 5개월의 세월을 흘려보내야 했다. 이때 그가 받은 우승 축하 메시지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것을 포함해 1000개가 넘었다고 한다. 평소 인간 됨됨이와 인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긴 좌절의 시간을 겪으면서 그는 무한 긍정과 노력으로 버텼다. 오랜 기다림의 세월은 피나우를 더욱 강하고 좋은 선수로 만들었다. 그런 덕분인지 피나우는 이후 네 번이나 우승한 뒤 한마디 했다. “그 무엇도 그냥 주어지는 건 없다. 노력해서 얻어내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1주일 전에는 멕시코 오픈에서 통산 6승째를 거둬 세계 랭킹 11위까지 올라왔다.

비록 가난했지만 7남매 틈에서 우애좋게 어린 시절을 보낸 피나우는 가족 사랑이 각별하다. 행복한 삶을 공유하는 아내와 함께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이따금씩 공개하는 피나우는 시합 때 쓸 골프공에는 사랑하는 자녀 5명의 이름을 번갈아가며 적어 놓는다. 생각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에는 공을 바꿔 사용한다. 몸은 비록 함께할 수 없지만 마음 만큼은 언제나 가족과 함께한다는 부성애(父性愛)의 표현이다. 이번에도 그린 위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온 가족이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상례적인 통관 절차였다. 가족 사랑의 힘으로 필드에 서는 피나우의 얼굴에 언제나 웃음꽃이 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박병헌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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