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룡의 와인이야기] 프랑스의 숨결 그르나슈(Grenache)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어승룡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27 06:31:20

오랜 기간 와인을 마시다 보면 대중적인 품종인 카베르네 쇼비뇽·쉬라즈·메를로·피노 누아·말벡·템프라니요를 벗어나 새로운 품종의 레드와인을 찾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그르나슈(Grenache)라는 새로운 품종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르나슈의 최대 재배 국가는 약 23만7000ac(에이커) 규모를 재배하는 프랑스다. 프랑스의 남부 론(Rhone)에서 프로방스(Provence)와 랑그독(Languedoc)·루씨용(Roussillon)이 주요 생산지다. 그 다음은 20만5000ac의 스페인이고, 이탈리아 사르데냐는 5만5000ac로 세 번째다.

그르나슈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역은 프랑스 남부의 론 계곡이다. 꼬뜨 뒤 론(Cotes du Rhone)과 같은 대중적인 와인과 지공다스(Gigondas)·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바케이라스(Vacqueyras) 등 명성 높은 와인들 모두 그르나슈를 사용한다.

▲ 그르나슈로 만든 프랑스 론 지역의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 와인들. 디켄터 제공

그르나슈는 더위와 가뭄에 강한 품종으로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잘 자란다. 샤토네프 뒤 파프(아비뇽에서 론강 건너편 북쪽, 교황 전용의 와인을 생산하던 언덕 마을)의 자갈밭은 물론 메마른 편암과 화강암 토양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프랑스 남서부 랑그독·루씨용 지역에서도 카리냥(Carignan)·무르베드르(Mourvedre)와 함께 그르나슈를 주요 품종으로 이용한다.

스페인에서는 가르나챠(Garnacha) 혹은 가르나챠 틴타(Garnacha Tinta)로 불리며, 아라곤(Aragon)·카탈루냐(Catalunya)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리오하(Rioja)에서는 템프라니요에 블렌딩해 사용하고 있다.

‘그르나슈’는 바디가 강하고 비교적 숙성이 빨리 되는 편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비싼 레드와인 품종으로 진하고 맛이 풍부하며,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움이 잘 조화된 미디엄바디 와인이다.

스페인 북중부 나바라(Navarra)는 올드 바인 가르나차로 고급 와인을 만들고 있다. 카탈루냐의 프리오랏(Priorat)에서는 그르나슈의 중요성이 한층 높다. 프리오랏의 그르나슈는 오히려 피노 누아(Pinot Noir)의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까리네냐(Carinena) 품종과 함께 필록세라로 황폐화된 프리오랏의 부활을 이끈 품종이 가르나차다. 덥고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견디는 가르나차는 연평균 강수량이 400mm를 밑도는 프리오랏의 건조한 기후와 리코레야라는 독특한 테루아에 최적이다.

올드 바인 가르나차는 뿌리를 길게 뻗어 리코레야의 단층 속에 존재하는 습기를 흡수해 극도로 농축된 풍미를 지닌 포도를 생산한다. 이는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프리미엄 프리오랏 와인을 만든 원천이다.

이탈리아 사르데냐에서는 99% 이상 그르나슈를 사용해 만든 와인을 카노나우 디 사르데냐(Cannonau di Sardegna)라고 부른다. 그르나슈를 가르나챠 네그라(Garnacha negra)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그르나슈는 주로 다른 레드와인 품종과 블렌딩을 많이 한다. 프랑스의 샤토네프 뒤 파프와 호주의 맥라렌 베일(McLarel Vale)은 그르나슈에 시라와 무르베드르를 블렌딩한 와인인 GSM(Grenache-Syrah-Mourvedre)으로 유명하다.

그르나슈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대부분 스파이시한 열매 풍미를 지니며 부드러운 질감에 알코올 도수가 높고 풍만한 바디, 그리고 낮은 산미가 특징이다. 또한 옅은 선홍색은 산화에 약해 빠르게 갈변한다. 그러나 수확량이 적은 올드 바인 그르나슈는 짙은 컬러와 밀도 높은 풍미, 그리고 높은 산미를 지닌 고급 와인으로 탄생한다.

그르나슈는 라즈베리·딸기 향이 두드러지며 블랙커런트·블랙 체리의 풍미를 매력적으로 표현한다. 구운 자두·가죽·마른 허브·붉은 오렌지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르나슈는 데일리 와인의 친근감과 고급 와인의 잠재력을 갖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오크에 숙성하지 않아도 빼어난 풍미를 느끼게 하는 훌륭한 품종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주로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생산자 연합인 론 레인저스(Rhone Rangers)가 그르나슈를 비롯한 론 밸리 품종들을 사용해 빼어난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차츰 워싱턴·오레곤·미시간 등지로 확산하는 추세다.

호주 남부에서는 올드 바인 그르나슈에 쉬라즈와 마타로라고 부르는 무르베드르를 블렌딩한 GSM 와인이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르나슈를 GSM의 첫머리에 적고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그르나슈를 80% 이상 메인 품종으로 사용하거나 심지어 단독으로 양조한 프리미엄급 와인도 많이 눈에 띈다.

이 외에도 프랑스의 타벨·프로방스, 스페인 나바로 지역의 로제 와인이나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인 카바(Cava)의 로제 스타일을 양조하는 데도 그르나슈를 사용한다. 루씨용의 특별한 주정강화 와인 바뉼스(Banyuls)는 그르나슈를 최소 50% 이상(그랑 크뤼는 75% 이상) 사용해서 만들고 있다.

그르나슈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나라는 프랑스지만 원조는 프랑스가 아니라 스페인의 아라곤 지역이다. 가르나차는 방사성탄소연대분석법으로 씨와 잎을 분석해 스페인 북동쪽에서 기원전 153년부터 재배된 게 확인되었다. 틴토 아라고네스(Tinto Aragones)라고 불리던 그르나슈가 14~15세기 아라곤 왕국이 확장되며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의 루씨용, 남프랑스의 론·랑그독,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그리고 그리스 일부 지역까지 퍼져 나간 것이다.

어승룡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