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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80년대는 라디오 드라마 황금시대였다.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 우리네 서민은 라디오 극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울고 웃으며 삶의 고달픔을 잊었다.
영상기기의 활황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라디오 드라마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라디오 드라마만의 말맛을 잊지 못한 사람들과 오디오 클립 마니아들이 주요 청취자다.
라디오 드라마의 인기를 증명하듯 안동MBC의 창사특집 라디오 드라마 ‘존애원, 낙강에 뜬 달’(극본 김순희 연출 강병규)이 한국방송협회가 주최하는 제50회 한국방송대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방송대상 작품상만 세 번째
강병규 PD가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대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별기획 라디오 드라마 ‘임청각’, 2020년 6·25전쟁 70주년 특별기획 ‘낙동강 전선’으로 이미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존애원, 낙강에 뜬 달’은 세 번째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수상작인 셈이다. 해당 방송은 지난해 9월13일 첫 회를 시작으로 매주 평일 저녁 매회 15분씩 10주간 존애원 사람들의 활약상을 다루었다. 강 PD에 의하면 존애원은 세계 최초의 조선식 공공의료시설이었다.
“K-방역으로 대표되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점에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여러 기관에 자문을 구했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기록유산센터장은 19세기에 들어서야 ‘공공의료’ 개념이 정립된 서양보다 무려 200여 년이나 앞선 사례라고 이야기해주더라.”
한국 최초의 사설의료기관 존애원은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인 1599년 탄생했다. 경북 상주 지역 13개 문중이 자치적으로 의료 문제를 해결하고자 십시일반 돈을 모아 건립한 게 그 배경이다. 존애원은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례인 셈이다.
존애원은 한양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혜민서·활인서를 지방에 들이면서 많은 약재와 시설을 갖추어 양반이나 평민 할 것 없이 치료했다. 존애원이라는 이름은 중국 송나라 학자 ‘정자’의 ‘존심애물’에서 따온 것이다. 존심애물이란 마음을 지키고 길러 타인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상주에 존애원이 들어서게 된 데는 이곳이 경상도 지역에서도 전란의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입었던 영향이 크다. 상주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열흘도 안 돼 함락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기근과 역병이 창궐했다. 중앙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지방 사족들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존애원은 병든 향민을 치료하고 구휼하였으며 나중에는 교육 업무까지 담당했다. 사립병원으로 출발한 존애원이 공적인 분야로까지 영역을 넓힌 데는 지방 사림의 역할이 막대했다. 전란을 겪으면서 존애원 건물은 모두 불타 없어지고 현재 단출한 건물 한 채만 남았다.
작가·성우·음악감독에게 감사
강 PD는 함께 일했던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렸다.
“무엇보다 함께 이야기를 발굴하고 만들어 온 김순희 작가에게 감사를 드린다. 안동 출신으로 누구보다 경북 지역을 잘 알며,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자 애쓰는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의 1등 공신이다.”
강 PD가 라디오 드라마를 연출하기 시작한 것이 2019년이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기획으로 ‘임청각’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는데 그때부터 함께 해온 성우들이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다. 처음에는 6명으로 시작한 인원이 어느덧 12명으로 늘었다.
“모두 10~25년 경력의 베테랑급 성우들이다. 그들이 1인 3~4역을 소화해 내는 것을 보고 천상 연기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픈 장면에서는 실제로 눈물을 흘리고, 전투 신에서는 효과음 없이 호흡만으로 치열한 칼싸움 현장에 있는 듯 신들린 연기를 펼친다. 감정이 복받쳐 한 신이 끝나면 한참을 쉬었다 다시 녹음을 이어가야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최혜인 음악감독을 일러 드라마의 보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저렇게 젊은 사람이 무슨 음악감독을 하나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영화 ‘신과 함께’ ‘군함도’ ‘박열’ 등 다양한 영화음악과 드라마 OST에서 활약 중인 작곡가 겸 음악감독이었다. 보통 라디오 드라마에서는 장면전환 음악을 주로 사용하는데 최 감독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BGM과 등장인물별 테마음악까지 수준 높은 음악을 극에 녹여냄으로 극적 긴장감을 유도한다.”
지역방송국 PD 25년째
강 PD는 지역방송에만 25년 째 몸담고 있다. 초창기에는 남들처럼 중앙으로 진출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2005년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을 역임하면서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지역’의 의미를 알게 됐다.
“프로그램을 만들수록 지역 공영방송에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방송장이가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 수많은 지역방송인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수도권 집중이 망국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균형 발전과 자치분권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일지도 모른다.”
수도권 뿐만 아니라 지역 어디서든 골고루 잘살 수 있는 나라, 교육·주거·의료 그 어떤 분야에서도 고르게 인간 존중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재 조선 최초의 영남만인소(1792)를 소재로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 중이다. 이제 막 성우 녹음을 끝낸 상태인데 안동MBC 방송권역에는 9개의 기초단체가 있어 각 지역마다 매우 재미난 이야깃거리들이 쌓여있다. 전통문화의 보고가 바로 우리 지역이다.”
그동안 그는 안동의 독립운동부터 6·25전쟁 초기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전투, 여중군자 장계향, 존애원, 만인소까지 상주 곳곳의 이야기를 소재로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어 왔다. 여건이 허락되는 전 지역의 이야기를 전부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다. 또한 오디오 드라마에 웹툰을 접목한 오디오 웹툰을 제작 유통해보고 싶은 꿈도 있다.
현재 ‘존애원’은 유튜브·오디오 플랫폼을 통해 만나 볼 수 있으며 한국전파진흥원의 해외 한국어 방송 유통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해외 한인 라디오 방송사에도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우직한 노력으로 지역방송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강병규 PD. 앞으로 그가 만들어 낼 고품격 라디오 드라마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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