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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엽 3대(숙종·예종·인종)에 걸쳐 무려 10명의 왕비를 배출한 대표적인 귀족 문벌인 이자겸은 당대의 ‘썬 파워’였다. 인종은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이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갖고 국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게 눈엣가시였다. 인종은 무신 척준경과 결탁해 이자겸을 제거한 뒤 전남 영광의 법성포로 유배를 보내 외척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자겸이 유배지에서 밥상에 오른 생선을 먹어 보니 맛이 빼어나 이를 개성에 있는 인종에게 보냈다. “내가 비록 귀양을 온 몸이지만 결코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굴비(屈非)’라는 이름을 붙여 보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이자겸의 자존심이 서려 있는 게 굴비다.
고급 생선 참조기를 소금에 절인 뒤 바람과 햇볕에 말린 것을 굴비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다. 예로부터 영광에서 난 굴비를 최상으로 친다. 궁중에 진상되고 제수용·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 그중에서도 5년생 알배기가 최상품이다.
물고기 중 으뜸이라는 뜻의 중국어 ‘종어(宗魚)’가 급하게 발음되면서 조기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사람의 기를 돕는다는 뜻으로 ‘조기(助氣)’라 부르기도 했다.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고가의 생선이어서 실학자인 정약전의 자산어보 등 각종 문헌에도 등장한다.
맑게 국을 끓이거나 찌개·소금구이·양념구이 등으로 먹으며 짜게 절여 조기젓으로 먹기도 하는 게 참조기다.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하며 고도 불포화지방산인 DHA와 EPA 등이 들어 있는 고급 생선이다.
찬 바람이 부는 요즘이 참조기의 제철이다. 하지만 연근해에서 도통 잡히지를 않아 어민들 시름이 깊어만 간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즉시 팔려 나갈 정도로 수요가 높지만 어획 부진을 하소연하고 있다. 제주도 북부 해상의 추자도와 신안 홍도·흑산도 근해에 참조기 어장이 형성되는 게 보통이지만 올해는 참조기 떼가 도통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근래 들어 어획량은 반토막 났다. 공급량이 줄면서 한 상자당 가격은 50% 이상 폭등했다. 공급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이 그나마 어민들이 버티는 힘이다. 참조기가 꼭꼭 숨어 버린 것은 수온이 평년보다 2℃ 이상 올라가는 등 기후변화 탓이라고 한다. 5·6년 뒤에는 참조기 씨가 마를지도 모를 일이다. 엘니뇨나 라니냐 같은 기후 현상 탓에 익숙했던 우리네 식탁 메뉴가 바뀔 듯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병헌 디지털뉴스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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