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문제투성이로 그냥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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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24 06:30:44

복잡다단한 한 해의 끝에 검진센터에 갔다. 꾸역꾸역 연말에 억지로 발걸음을 떼었다. 몸의 ‘문제’를 찾으러 시간과 돈을 들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문제를 찾아서 없애려고 온 것이다. 내 몸에도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아주 오래된 문제들도 있다. 그중에 어떤 것은 일찍이 포기하여 장애인 채로 살아가고, 그중 어떤 것은 작년에 부랴부랴 수술을 했다. 빨리 수술하면 좋아질 거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혹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욕심이었다. 최선의 수술에도 운이 따르는 법! 기대 밖의 상황에 절망과 후회로 돌돌 뭉쳐 반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힘든 대로 아픈 대로 불편한 대로 문제를 가진 채로 그냥 살자고. 그렇게 하니 살아졌다. ‘문제’ 소위, 장애를 지니고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거기다가 사는 날까지 할 일은 하자고 마음먹으니 그것도 할 만했다. 인간이란 본디 문제투성이가 아닌가? 결점 없는 인간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다.

김난도 선생이 매년 쓰는 ‘트렌드 코리아 2024’에는 인공지능 이야기가 있다. 매년 서둘러 원고를 영역하여 영문판과 한글판을 거의 동시에 출간하는데, 이번에는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많이 받아 기간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한국 특유의 단어들을 잘 모르는 통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다고, 아직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마음이 놓이는 이야기다. 어느 사이 나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렇지, 그래야지!’ 그렇다. ‘문제’ 있는 인공지능은 귀여운 존재이고 우리가 잘 길러 내야 할, 아직은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는 정겨운 존재이다. 우리가 거실의 식물을 아끼는 것도 그들이 지닌 ‘문제’ 때문이다. 수분의 문제·햇빛의 문제·온도의 문제·벌레의 문제 등등 우리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산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나무는 어떨까? 그들은 그나마 돌보는 인간이 없으니 더더욱 많은 ‘문제’를 지니고 산다. 에누리 없는 자연의 변덕을 견뎌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태풍·폭염·폭우·폭설가뭄·화재 등이다. 이걸 잘 견뎠다고 끝이 아니다.

숲의 별별 친구들과의 만남도 문제이다. 틈만 나면 잎을 갉아대는 곤충의 침입, 가지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고치, 둥치를 튼실하게 만들어 놓았더니 신나게 날아들어 집 짓겠다고 부리로 쪼아대는 새, 가렵다고 둥치에 몸을 비비대는 동물, 감정 처리하느라 큰 뿔로 둥치를 강타하는 성질 나쁜 동물, 밤마다 찾아와 자신을 침실로 이용하는 동물도 있다. 땅 속의 뿌리는 조용할까? 우리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선충들이 오글거린다. 나무는 잠시도 편안할 날이 없다. 그런데도 수백 년·수천 년을 산다. 각종 문제들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서, 숲의 온갖 민원을 다 접수하고서.

그 비결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문제’를 안고 살기 때문이다.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문제가 많아진다. 뿌리의 문제·둥치의 문제·가지의 문제·잎의 문제·열매의 문제이다. 마음과 몸의 질병의 문제·배우자의 문제·자녀의 문제·손자녀의 문제·직업의 문제·노후의 문제이다.

문제를 피한다고 피해질까? 살아 있는 한 그것은 힘들다. 문제를 없애는 것은?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그것도 답이 아니다. 없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부작용만 커진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죄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사실은 죽은 자는 ‘문제’가 없을 터이다. 불교에서 화장을 권장하는 이유 중 하나가 망자의 시신이 가지는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연말이면 추위 속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예수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인기가 많은 분이다. 예수는 ‘문제’를 자청해서 이 땅에 왔다. 신은 완전무결한 존재이다. 그런데 신의 아들인 예수가 흠결과 문제가 없는 온전함을 내던지고 문제투성이 인간으로 왔다. 인류의 태생적 ‘문제’를 혼자서 감당해 주러 온 것이다.

짧은 공생애 기간을 통해 그는 갖가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혼인 잔칫집의 모자라는 술·혈루병 앓는 여인의 문제·젊은 나이에 죽은 청년의 문제·귀신 들린 남자의 문제…. 정작 자신은 억울한 누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않은 채) 가장 비참한 형을 받아 죽었다. 몸에는 창 자국을 남긴 채!

우리는 왜 인간 예수의 출생과 죽음에 감동하고 때로는 열광하는가? 예수는 문제투성이 세상에 와서 자신 또한 문제를 안고 살다가 갔다. 마치 숲의 나무처럼 말이다. 문제는 끌어안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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