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갑진년에 품은 ‘청룡 비상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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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09 06:31:30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방학이 휴지기다. 해가 바뀌었다는 걸 실감하는 것도 3월이다. 방학 동안 쉬기도 하고 계획도 세우고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평하게 갖는 휴지기가 있다. 직장에 다니느라 몸은 바빠도 마음은 방학 같은 시기이다. 신정에서 설 사이, 새해 해돋이를 보았는데 아직 새해 기운이 다 들어차지 않은 기간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시간에 이름표를 붙이고 살았다.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이다. 지지에는 정답고 친근한 동물 이름까지 붙여 놓아서 재미도 있다.

해마다 1월1일이면 방송에서 동물 이름을 부르며 새해가 밝았다는 멘트를 날리는데 알고 보면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편의상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올해도 그랬다. “푸른 용의 해,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느낌과 본능으로 알아차린다. 설이란 명절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으니 아직 푸른 용의 해가 아니다.

양력 1월1일 신정과 음력 1월1일 설 사이 소중한 휴지기를 마음속으로 헤아린다. 덕분에 새해 인사도 두 번, 떡국도 두 번 먹는다. 착실한 아이들은 세배를 두 번 하고 세뱃돈도 더블로 챙긴다. 새해가 왔는데 아직 새해가 아닌 시기, 마음이 누리는 인생 방학이다. 새로운 해의 빈 스케줄러를 열면서 무엇으로 채울지 작은 감동을 느끼는 때이다.

푸른 용은 동양에서 상서롭게 여기는 동물이다. 서양은 붉은 용을 그려 놓고 용이 악마의 화신이라고 하지만 동양의 푸른 용은 희망이고 도약이다. 동양고전 ‘역경’의 첫 번째 괘인 건괘는 육효 모두 이 용의 움직임을 말하고 있다. 육효의 스토리텔링은 물속에 잠겨 때를 기다리던 용이 어떻게 땅 위로 올라와 하늘로 솟아오르는가 하는 내용이다.

용의 운명은 하늘로 오르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한 단계에는 깨알 같은 주의사항이 있다. 전설적 동물, 동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용도 ‘역경’에 나오는 매뉴얼 에 따라 움직여야 안전하고 확실하게 날아오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갑자기 저절로 되는 것이 없듯 용의 승천도 철저한 준비와 기다림, 기미를 파악하는 것 등 세심한 호흡 조절이 필요하다. ‘청룡 승천 프로젝트’이다. 계묘년과 갑진년 사이에서 우리도 호흡을 가다듬어 하늘로 비상할 작정을 해야 한다.

갑자기 승천 프로젝트라니? 황당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2023년을 지내면서 우리는 준비해 둔 것이 있으니 염려할 일이 아니다. 계묘년의 묘(卯)는 토끼이기도 하고 온 땅을 뒤덮는 풀이기도 하다. 2022년 임인년에도 우리는 마음속의 나무를 잘 키워 왔다. 임인년의 인(寅)은 호랑이고 활기 있는 목 기운이기 때문이다. 두 해를 착실하게 살아 온 우리는 이미 마음속의 나무를 잘 키워 두었다.

이 나무의 기운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푸르른 새싹처럼 팡! 하고 솟아오르는 해가 갑진년이다. 갑은 새싹이면서 우뚝한 나무이니까. 가만히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느낌이 든다. 춥고 어둡고 힘들었던 코로나19 시절을 버티고 응축했던 모든 것들이 청룡의 해에 본격적으로 터져나올 것이다. 동양 사람들의 오랜 지혜인 오행과 명리의 가르침은 오묘하고 재미있다.

요즘 ‘갑툭튀’라는 말을 쓴다. ‘왜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오느냐’라는 말을 줄인 것인데 갑진년이 이에 해당한다. 갑툭튀라고 하지만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할 말이 꽉 차올라 그렇게 말했을 것이고 보면, 분위기 파악이 좀 딸렸을 뿐 엄밀한 갑툭튀는 아니다. 갑툭튀가 갑툭튀가 아니듯, 갑진년은 ‘갑자기’ 날아오르는 푸른 용이 아니다. ‘역경’ 건괘의 가르침처럼 길고 어둡고 힘든 시기를 참아 내며 힘을 모아 ‘드디어’ 날아오르는 용이다.

그 용이 만나는 하늘은 어떤 하늘일까? 상상만 해도 마음 벅차다. 신정에서 설 사이, 계묘년에서 갑진년 사이, 마음의 휴식기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청룡 승천 프로젝트의 막바지 단계에서 나의 청룡의 모든 상태를 점검하고 재정비하는 것이다. 어떤 용은 갈퀴가 상처 났고 어떤 용은 턱수염에 문제가 있고, 어떤 용은 가장 중요한 날개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을 수 있다. 갈퀴나 턱수염에 문제가 있으면 승천하는 위엄 있는 모습에 도움이 안 되지만 가장 중요한 날개는 비상에 치명적이다. 승천 비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갑진년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카운트다운 해서 인공위성처럼 쏘아 올릴 필요는 없다. 인공위성도 문제가 생기면 D데이를 늦출 수 있는 것이다. 조급해 하지 말고 ‘역경’의 여섯 단계를 살펴보자. 내 마음이 키워 오던 푸른 꿈이 세상에 드러날 갑진년을 축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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