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1월의 독립운동가’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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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17 06:30:50

어디서였나? 길을 가다 우연히 ‘1월의 독립운동가 이승만’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았다. 어린 시절 이분의 음성을 텔레비전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그의 노욕에 대항했던 4·19학생혁명도 있었다. 민심을 거스를 수 없어 하야한 대통령 이승만, 노년을 하와이에서 쓸쓸히 지낸 그가 왜 1월의 독립운동가가 되었을까? 마음속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그가 독립운동가였음은 확실하다. 1904년 11월, 이승만은 대한제국 광무 황제의 명으로 미국 밀사가 되었다. 독립운동가로서 국제적 첫 행보이다.

미국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났지만 이미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추인된 때였다. 그대로 미국에 머문 그는 명문 대학에서 5년 만에 학사·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곧바로 식민지가 된 조국에 돌아와 활동했지만 ‘105인 사건’ 체포자 명단에 오른다. 간신히 투옥을 면한 그는 출국하여 하와이에 머물며 열렬한 교육·언론·외교활동을 펼친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상하이로 건너가 세 차례 내각회의를 주재했고, 임시정부가 사분오열되자 다시금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후 그는 미국과 서구를 상대로 대한 독립을 위해 살았다.

핵심은 조·미수호조약(1882)이다. 조선과 미국 사이의 이 조약에는 서로의 안전을 지켜 주는 ‘거중조정’ 조항이 있다. 일제가 조선을 야금야금 먹어치울 때마다 광무 황제는 조·미수호조약에 따라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을미왜변 이후 미관망명을 시도하다가 미국이 응해 주지 않아 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한제국 시기에 들어서도 광무 황제는 줄기차게 미국을 ‘짝사랑’했다. 미국 선교사·외교관과 각별했고 외교고문과 군사고문도 미국인을 고빙했으며, 각종 이권도 미국인에게 내주었다. 조·미조약을 군사동맹으로 확대하려 했던 광무 황제의 의도였다. 러·일전쟁 발발 후 대한제국은 미국 정부에게 다시금 거중조정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카쓰라·테프트 밀약을 맺고 대한제국의 운명을 방관했다.

미국 조지워싱턴·하버드·프린스턴 대학에서 서양사·정치학·외교학·국제법을 공부한 국제정치학자 이승만은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서당에서 공부한 유학의 인의(仁義) 사상도 그를 지탱해 주었다. ‘물질상의 진화’를 추구하는 일본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그는 직감했다. 청·일전쟁 때부터 일본은 선전포고를 하기 전에 상대방을 기습했다. 러·일전쟁도 마찬가지였고 조선 침략도 그랬다.

이승만에게는 국제적 만행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 일본의 다음 행보가 명약관화했다. 진주만 공격(1941)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본의 기습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이 일을 예언한 책이 있었다. 1939년에 이승만이 저술한 ‘일본내막기: 오늘의 도전’이다. 국제 전문가로 위상이 높아진 이승만은 미국을 향해 계속 경고장을 던졌다.

수천 년간 자신들에게 문화와 문명을 전해 준 조선을 힘으로 제압하여 먹어 버린 일본, 대한을 발판으로 주변국을 초토화한 일본이 이에 그치지 않고 미국에까지 내달을 것임을 국제정치 전문가 이승만은 똑똑히 내다봤다. 위기의 출발점은 바로 조·미조약이라는 ‘신성한’ 의무의 일방적 배반이었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仁)과 신(信), 기독교의 사랑과 정의 사상에 투철했던 이승만은 미국과 서방·국제사회의 양심을 계속 두드렸다. 이웃과의 신의와 약자에 대한 사랑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그것을 저버린다면 그 과실은 바로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라고….

해방 된 조국으로 돌아온 이승만은 우익 세력을 모아 반탁운동을 했고, 1946년 5월에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12월 미국을 방문해 워싱턴 정가에 ‘코리아 돌풍’을 일으키면서 남한 과도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주지시켰다. 결국 1948년 5월 유엔한국임시위원단 감시하에 남한에서 총선거가 치러졌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미국의 군사 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초대 주한 미국대사 존 무초는 1949년 5월7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아는 한 미국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시대 이래 어느 국가와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일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이승만의 요구를 일축했고 그해 6월30일에는 주한미군 철수를 완료했다.

다음 해 6·25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은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이승만과 맥아더는 북진 통일의 목표에 뜻을 같이 했으나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맥아더는 해임되었고, 한반도에서 휴전이 논의되었다. 이승만은 휴전 동의의 5가지 조건을 내세워 미군의 휴전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처음부터 ‘미·일안보조약’에 준하는 상호방위조약을 미국에 요구해 왔다. 하지만 여의치 않자 유엔군 사령관 동의 없이 단독으로 반공포로를 석방시켰다. 그러고는 지속적으로 미국이 한국에 저지른 수차례의 배신행위, 즉 조·미조약의 불이행을 거론하며 미국의 양심을 각성시켰다. 미국은 결국 이승만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급기야 1953년 8월8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졌고, 미국은 군사 주둔뿐 아니라 경제원조도 약속했다.

이 조약의 체결은 광무 황제의 밀사로 미국에 갔을 때부터 평생에 걸친 그의 숙원의 결실이다. 그는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의 후손은 앞으로 누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갖가지 혜택을 누릴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명암을 드리운 초대 대통령 이승만, 그는 독립운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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