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6일부터 11일까지 필리핀·싱가포르·라오스를 잇달아 방문해 세일즈 외교를 펼치고 있다. 필리핀과 싱가포르를 각각 국빈방문해 양국 간 관계 강화와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8일부터는 라오스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으나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필리핀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 참여 등 경제협력이다.
윤 대통령은 첫 방문지인 필리핀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바탄 원자력발전소 재개 타당성 조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마닐라 서쪽에 있는 바탄 원전은 1976년 착공됐으나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여파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양국은 바탄 원전 건설을 재개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맡는 것으로 합의했다. K원전과 ‘팀 코리아’에 대한 필리핀의 신뢰가 바탕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수원을 비롯해 한전기술·두산에너빌리티·대우건설·한전연료·한전KPS 등으로 구성된 ‘팀 코리아’는 올해 7월 무려 24조 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다. 이로써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에 이어 상업용 원전 본산지인 유럽 시장 진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번에 한·필리핀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원전 협력의 필요성에 의견 일치를 보이는 가운데 필리핀에서도 ‘팀 코리아’가 최고의 원전 파트너로 부상한 것이다. 중단됐던 필리핀 바탄 원전 재개에 대해서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전력난 해소를 위해 먼저 우리 측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필리핀이 ‘팀 코리아’에 대한 신뢰를 보인 만큼 향후 필리핀 원전 수주에서도 한국이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바탄 원전은 우리나라 고리 2호기와 동일한 노형이라는 점에서 고리 2호기를 40여 년간 운영해 온 경험을 쌓은 한수원에 유리한 조건이다. 재건 타당성 평가를 통해 본계약으로 이어질 기대를 갖는 이유다. 마르코스 정부는 ‘에너지계획 2050’ 아래 민도로섬과 팔라완주에 원전을 추가로 짓는 등 원전 총 3기를 가동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바탄 원전 재건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면 추가 수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필리핀과는 원전 개발뿐 아니라 핵심 원자재 공급망 협력 MOU를 체결했다는 점도 주목을 끈다. 필리핀은 니켈 생산 세계 2위·코발트 생산 세계 6위의 자원부국으로 손꼽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의 전쟁으로 언제든 공급망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양국이 협력을 약속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2차전지에 필수 소재인 니켈·코발트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처지다. 공급선 다변화 차원에서 자원부국인 필리핀은 우리의 우군이 될 것이다.
원전 수출은 동남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로의 진출도 가능해졌다. 최근 원자력발전소 도입을 놓고 국민투표에서 70% 이상의 찬성표가 나온 카자흐스탄도 한국을 유력한 파트너 중 하나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원전 1기당 50억 달러(약 7조 원)가 소요되는 2800㎿ 규모의 신규 원전 2기를 2029년 착공해 2035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한국 한수원·중국 핵공업그룹(CNNC)·러시아 로사톰·프랑스 EDF 등 총 4곳이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카자흐스탄 원전 수주를 성공시켜 중앙아시아로 K원전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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