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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현장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힐 줄 모른다. 최근 울산의 한 발전소에서 또다시 발생한 안타까운 인명 사고는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여전히 허점을 드러내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논란과 진통 끝에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선언에만 머문 안전 시스템이 아니냐는 물음이 고개를 든다. 현장에서는 이미 법의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과연 이 법은 현장에 경각심을 심어주었는가, 아니면 그저 누군가에게 처벌을 떠넘기는 면피용 장치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중대재해법이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경영 책임자에게 실질적인 압박을 가해 안전 투자를 이끌어내고,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계만 보면 법의 효력은 일정 부분 나타난 듯하다. 2023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598명으로 전년(644명) 대비 46명 감소했다. 2024년 사고사망자는 589명으로 전년 대비 9명 감소했다.
그러나 수치 이면의 현실을 냉정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2022년 1월27일 법 시행 이후 2024년 12월31일까지 약 3년간 발생한 중대산업재해는 887건,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는 943명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망자 중 3분의 2에 가까운 63.8%가 하청 노동자였다는 사실이다. 수치 속 숨겨진 ‘위험의 외주화’라는 현실은 변함이 없다. 법은 ‘처벌’의 수위를 높였을지 모르지만, ‘위험’의 무게는 여전히 힘없는 하청 노동자들의 몫으로 외주화되어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사망자 수 감소에 대해서도 더 깊이 들여다보자. ‘건설 경기 위축에 따른 일감 감소’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더욱 키운다. 2023년 건설업 사망자 감소 폭(11.1%)이 전체 감소 폭보다 크다는 점은, 단순한 안전 강화의 결과라기보다는 경기 상황의 변수와 얽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024년에도 경기 영향 등으로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가 크게 감소(27명)하며, 전체 사고사망자 수 감소를 견인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고용노동부는 분석했다. 이는 법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안전 관리 체계 구축보다는 일시적 상황 변화가 통계 숫자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중대재해법의 본질은 사업주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 형사 처벌을 통해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하는 데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대형 사고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들은 수사, 벌금, 형사 책임이라는 3중고를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사전 예방’ 시스템 구축은 여전히 뒷전이다. 처벌, 그 이상의 ‘예방 시스템’이 절실한 이유다.
규모가 작은 중소 사업장에서는 안전 관리 전담 인력을 둘 여력조차 부족한 현실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5인 이상이라고 규정한 사업장 규모에 따라 법 적용을 달리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5인 이하 사업장은 왜 제외된 것인지 명백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재해가 반복되는 기업 명단이 공개되고 있음에도, 근본적인 구조 변화 없이 ‘땜질식’ 대응에 머무르는 기업들이 존재하는 현실 역시 ‘중대재해법 무용론’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산업재해 감소의 핵심은 경영진의 안전 관리 ‘의지’와 예방을 위한 ‘예산 투자’다. 이는 단기적 처벌 회피가 아닌, 장기적인 안전 문화 구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중대재해법이 도입된 것은 ‘사람의 생명’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선언이었다. 하지만 선언만으로 생명을 구할 수는 없다.
울산 발전소 사고는 우리 사회의 산업 외주화라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대재해법은 단순한 ‘사후 처벌 도구’라는 한계를 넘어야 할 것이다. 통계 수치의 감소만으로 법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중대재해법 시행 4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법이 실질적인 억제력과 안전 문화 정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중대재해법은 그저 ‘경영진 옥죄기’ 논란만 키운 채 생명은 지키지 못한 법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산업 현장에 울려 퍼지는 경각의 종소리는 단순히 사고를 낸 기업에 대한 분노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에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묻고 있다. 이제 선언을 넘어선 ‘실천’과 ‘구조적 변화’를 통해 중대재해법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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