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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아빠 엄마 이야기…사위도 자식이잖아요③
매번 인내하며 미래 설계, 힘이 되는 울타리 ‘가족’
암울한 현재, 과거로 가고 싶어…아들들에게 아빠노릇 못해 마음 아파
대통합 필진페이지 + 입력 2017-05-28 18:48:11
 ▲  [사진=국민대통합위원회]
“원성아(당시 집에서 불렀던 내 이름)”
 
사립문 쪽에서 힘없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병수 형 어머니셨다. 지병이 있으셔서 몸이 야위셨고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아휴, 형님(어머니가 병수 형 어머니를 부르던 말) 오셨어요”
 
아침을 드시다 말고 어머니는 부리나케 마당으로 뛰어나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요양원에 계시다가 우리 집으로 오셨던 모양이었다. 그해 겨울,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총각김치에 보리가 많이 들어간 밥이 전부였지만 따뜻한 정을 나누며 한겨울을 함께 했고 병수 형 어머니도 점점 병세가 회복됐다. 비록 가난했지만, 인정만큼은 넉넉해서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지금은 어머니는 저 먼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셨지만, 첫눈이 올 때면 까마득한 세월을 자식만을 위해 살아오신 우리엄마와 지병으로 고생하시면서도 병수형님을 사랑과 정성으로 잘 키우셨던 병수형님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처럼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해보면 비록 못 먹고 못 살았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이 많았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을 정도로 이웃 간의 정이 두터웠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가족끼리는 서로 챙겨주고 보듬어주는 뜨거운 가족애가 있었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고 모든 것이 편리한 요즈음 자살과 이혼가정이 늘어나며 여기저기서 암울한 소식들이 들려올 때마다 가끔 어릴 적 행복했던 순간들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이 있다. 오순도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았던 어린 시절처럼 모두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참 좋겠다.
 
아내는 목사님의 소개로 만났다. 당시 나는 헐렁헐렁한 새파란 청바지에 꽉 끼는 티셔츠를 입고, M자형 대머리에 빗질도 하지 않은 막 시골에서 올라온 삼돌이였다. 만난 횟수가 더해가면서 ‘내가 왜 진작 이러한 여자를 못 만났을까?’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우리는 다정한 연인이 됐다.
 
청송대에서의 모기 미팅, 달리는 버스 뒤에서의 영화 촬영(?) 등을 계기로 몇 달도 안 돼 결혼에 골인했다.
 
둘째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라고 하면 한 편의 소설을 써도 될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녔고 민간요법도 써보았지만 큰 차도가 없었다. 밤새도록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찬송가, 군대, 흘러간 노래, 동요 등 안 불러본 노래가 없을 정도로 꼬박 밤을 새웠던 적도 많았고 메리야스만 입고 업어주면 등에 피가 잔뜩 묻어서 하루가 멀다고 옷을 자주 갈아입어야했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도 공부한다고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
 
“아빠, 영광이에 대한 기억나는 것 있어?” 아내의 질문에 “글쎄……”하며 장인 어르신은 한참을 생각하신 후에 “고 녀석이 내가 시골에서 포도 농사지을 때 막걸리 한잔 하고 취해서 풀밭에 누워있을 때 ‘할아버지, 얼른 일어나세요. 집에 가셔야지요’라고 했었지. 내 손자지만 어렸을 때부터 참 착했어”
 
장인 어르신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기억력에 감동했는지 신이 난 아내는
 
“그럼, 혹시 예찬이에 대한 기억도 있어?”라고 묻자
 
“걔가 누구더라” 한참 생각하시다가
 
“있지, 한 번은 학교에서 집으로 길을 잃어서 어떤 트럭을 모는 아저씨가 집 근처 삼거리까지 데려다줬어. 내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참 그 양반 착하기도 하지. 만약 나쁜 맘먹었으면 정말 큰 일 날 뻔 하지 않았냐?”
 
장인 어르신의 대답은 늘 고정돼있다. 손자들이 모두 착하고 공부를 잘해서 이다음에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너무도 뻔 한 대답을 말이다. 아마 장인 어르신의 간절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어느 날은 멀쩡한 정신으로 아주 구체적인 일까지 기억을 하시는데 대부분 기억을 못 하시거나 생리현상까지도 참지 못하고 그만 실례를 하는 바람에 요양 보호사분께서 이만저만 고생이 아닌 것 같다. 당뇨, 고혈압, 갑상선, 식도암 등 종합병원을 앓고 계신 장인 어르신께서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치매까지 걸려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번 갔을 때는 온통 바지에 큰 것을 실례해놓아서 아내와 장모님께서 한바탕 큰일을 치르셨다. 치매에 걸리시기 전에도 아무 음식이든 잘 드시는 대식가였는데 이제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 과자든 과일이든 모두 다 먹어치우는 수준에 이르렀다.
 
“엄마, 아빠 너무 드시는 것 아냐? 저 봐, 오늘 또 일을 냈잖아?”
 
아내의 잔소리에 장모님께서는 “내버려둬라, 온종일 병원에 있는 양반이 이제는 먹는 재미까지 없으면 무슨 맛으로 산다니?”
 
워낙 성품이 좋으시고 인정 많으신 장모님이라 충분히 그러한 마음을 읽을 수 있지만, 남편이 치매와 암, 당뇨로 사경을 헤매는데 몸에 안 좋다는 음식을 과식하도록 방치하시지는 않으실 텐데 이제는 먹는 즐거움마저 뺏을 수 없으니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야, 나 쉬 마렵다”
 
아내에게는 서슴없이 이런 말씀을 하시지만 사위는 어려운지 내게는 절대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법이 없다. 그럴 때면 아내는 “아빠, 그냥 편히 하세요”라며 패드에 할 것을 권한다. 건강이 온전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실 때는 편지 한 장을 버릴 때도 가위로 잘게 잘라서 불태워서 버릴 만큼 철두철미하고 치밀하셨던 분이 갑작스레 딴사람이 돼버렸으니 너무 서글프고 인생무상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이제는 대소변도 본인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어 패드를 착용하고 침대에서 누워서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분이 됐다.
 
어느 날인가는 요양보호사분께서 “할아버지께 먹을 것 조금만 주세요. 너무 많이 드셔서 힘드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다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하는 자식들보다 매일 간병을 하는 당사자로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러한 말씀을 하실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어제는 아들 녀석까지 동반하고 갔더니 같은 병실에 계신 어르신께서 “할아버지 웃는 모습 처음 봐유. 얼마나 조커슈, 저렇게 손자들까지 오니……”
 
모처럼 장인 어르신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보고 “얘들아, 할아버지 웃는 모습 보았지? 앞으로 자주 오자”라며 아들 녀석의 어깨를 툭 치며 신이 나서 맛있는 음식을 사줬다.
 
앞으로 장인 어르신께서 살아계실 동안 한 번이라도 더 병원에 방문할 생각이다. 물론 평소에 좋아하시던 과자와 과일을 잔뜩 사서 말이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있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이 힘든 순간순간을 참고 인내하며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에 분주하게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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