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유럽에서 이민한 사람들이 세운 국가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서인도 항로를 개척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흘러들어가게 된 유럽인들은 16세기 초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납치해 신대륙 경영에 이용했다. 1863년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외칠 때까지 억압받던 흑인들의 고통은 인종 차별을 논할 때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은 눈에 띄지 못했다. 이 문제는 사회 어딘가에 묻혀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 2020년 코로나19를 양분으로 자라났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서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과 아시아인들이 자연스럽게 타깃이 된 것이다.
2020년 한 해를 코로나19로 날려버린 사람들의 갈 곳 없는 분노가 아시아인에게 향하면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미국 내 혐오범죄는 지난 한 해 동안만 150%가 증가했다. 혐오 범죄의 증가세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시작했던 3월부터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암암리에 벌어지던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아시아계 미국인 대상 총격사건 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총격으로 8명을 살해한 백인 남성 로버트 에런 롱에게 당한 피해자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곳곳에서 혐오 범죄를 당했다는 폭로가 쏟아져 나왔다. 아시아계 혐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충격적인 살해 행위에 미 하원도 30년만에 처음으로 미국 사회의 아시아계 인종차별을 청문회 안건으로 올렸다.
하원 청문회에 이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끔찍한 일이라며 인종 혐오 범죄를 근절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한편, 사회 문화 속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인식의 변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종차별이 폭행이나 범죄를 넘어 문화 콘텐츠에서도 쉽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 예는 이달 14일 열린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그래미 어워즈에는 우리나라의 인기 아이돌인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테일러 스위프트, 메건 더 스탤리언, 빌리 아일리시, 해리 스타일스 등 스타들이 출연했다. 미국 카드회사 롭스는 이날 그래미 어워즈에 출연한 주요 스타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가비지 페일 키즈 셰미 어워즈(Garbage Pail Kids SHAMMY Awards) 카드 세트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했다. 그런데 카드 속 다른 스타들은 트로피를 들거나 말을 타는 등 멋진 모습을 보이는 반면 방탄소년단만큼은 트로피로 얼굴을 맞아 멍이 든 모습이다.
방탄소년단 같은 전 세계 수천만 팬들의 지지를 받는 세계적 스타의 처우조차 이러한데 평범한 아시아인들에 대한 박해는 어느 정도일지 염려스러울 뿐이다. 이번 일로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범죄 척결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전체에 스며든 혐오 인식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정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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