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가 범농협 차원의 고강도 인적 쇄신에 돌입하면서 조직 전체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농협은 12월 초 ‘범농협 임원 인적 쇄신안’을 전격 발표하고 2026년 경영진 인사부터 즉각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와 임원, 집행간부까지 절반 이상을 교체하고, 퇴직자의 재취업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며, 성과 중심 인사를 강화하는 등 조직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내용이다.
최근 강호동 회장을 둘러싼 금품수수 의혹, 선거 캠프 출신의 대거 인사 복귀 논란, 농협금융 계열사의 부진한 실적 등으로 흔들린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조치다.
농협중앙회는 이번 쇄신안을 ‘신뢰받는 농협중앙회·청렴한 농축협·국민에게 사랑받는 농협’이라는 3대 원칙 아래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지배구조 개선, 부정부패 제로화, 농업인 부채 감면 등 다양한 개혁 과제를 포괄하는 ‘범농협 혁신태스크 포스(TF)’도 즉시 출범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발표 직후 농협 내부에서는 정작 이번 혁신TF의 중심 인물이 누구냐를 두고 거센 논란이 제기됐다.
혁신TF 팀장으로 지준섭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내정됐다는 내부 인사 정보가 퍼지면서 조직 내 반발이 증폭되고 있다. 지 부회장은 NH농협무역 대표로 재직하다 2022년 퇴임한 뒤 강호동 당시 후보의 선거 캠프에 참여했고, 강 회장 취임 직후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퇴임 → 캠프 참여 → 중앙회 요직 재취업’이라는 경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가장 강하게 지적받은 전형적인 ‘낙하산·회전문 인사’의 사례다.
더욱이 지 부회장은 현재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이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서영홀딩스 한상권 회장은 허위 서류를 제출해 NH농협은행에서 약 149억 원의 대출을 받았고, 대출 심사를 맡은 직원의 승진을 청탁했으며, 지 부회장은 직접 인사권이 없음에도 인사부에 영향력을 행사해 실제 승진 인사가 이뤄진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이를 농협은행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한 ‘업무방해’로 보고 기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 부회장이 혁신TF를 총괄하게 된다면 ‘농협이 진정으로 쇄신을 추진할 의지가 있는 것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준섭 부회장 △여영현 상호금융 대표 △박서홍 농업경제 대표 △박석모 조합감사위원장 △김창수 남해화학 대표 △김정식 농민신문사 대표 △조영철 농협에코아그로 대표 등 주요 임원들이 비슷한 유형의 낙하산 인사로 지적됐다. 이들은 모두 퇴직 후 강 회장 캠프에 몸담았다가 2024년 3월 강 회장 취임 이후 주요 요직으로 복귀한 인물들이다. 당시 강 회장은 “마음을 나눈 분들, 도움을 준 분들”이라고 답하며 사실상 캠프 인사 재취업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쇄신안은 “퇴직 후 경력단절자의 재취업을 원칙적으로 제한한다”고 명시했다. 즉 이미 논란이 됐던 인사들의 거취를 어떻게 처리할지 시선이 집중되지만 중앙회는 이 기준이 기존 재취업자 교체까지 포함하는지, 아니면 향후 인사부터 적용하는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결국 기존 논란 인사들은 그대로 두고 이후 재취업만 막겠다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커지고 있다.
농협금융 계열사의 실적 부진도 이번 쇄신의 배경으로 꼽힌다. NH농협금융지주는 올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이 2조2599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 줄며 5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역성장했다. 3분기 순이익은 전 분기 대비 31% 급락했다. 특히 올해 초 강 회장이 전면 교체한 △농협은행 강태영 행장 △농협생명 박병희 사장 △농협손보 송춘수 대표 등 세 최고경영자(CEO) 모두 실적이 부진해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모두 경상권 출신으로 ‘강 회장 측근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농협생명은 판촉물 수의계약 특혜 의혹으로 국감에서도 집중 질타를 받았으며 3분기 누적 순이익은 전년 대비 14.9% 감소했다. 농협손보는 12.1% 감소, 농협은행은 4.6% 감소했다. 농협금융의 체면을 세운 곳은 NH투자증권과 농협캐피탈이지만, NH투자증권 역시 내부 임원의 공개매수 정보 유출 사건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으며 도덕성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현재 농협 노조는 거리행사 등의 일정으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내부 노동조직이 어떤 평가를 내놓느냐에 따라 이번 개혁 패키지의 실효성과 신뢰도에 대한 여론이 갈릴 전망이다.
농협은 이달 말 추가로 ‘국민 신뢰 회복 고강도 개혁 패키지’를 발표한다. 이 안에는 지배구조 선진화, 부정부패 방지, 농·축협 합병, 농업인 부채 감면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혁신TF를 이끌 주요 인사들 자체가 낙하산 논란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이번 개혁이 조직 구조를 실제로 바꿀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 ‘셀프 개혁’에 그칠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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