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과 만나 다시 찾아온 수빈의 동네는 낯설었다.
그날 밤 호텔에서 차를 타고 수빈 집을 향할 땐 수빈이 밴 기사에게 직접 길을 안내하는 바람에 아파트에 대한 정보가 기억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선우는 나정과 함께 호텔로 가서 호텔에서부터 다시 출발했다. 호텔로부터 차로 20분 거리였고 한강 다리를 건넜다는 건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네조차 찾기 힘들었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어느 동네 어떤 아파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가람아파트 301동이래.”
그날 밴을 동원시켰던 화영이 빠르게 움직여 주었다.
“오늘은 꼼짝없이 묶였으니 이런 거라도 도와야지.”
하필 오후에 급하게 주주총회가 열린다고 연락이 와서 화영은 나서다 주저앉고 말았다. 이복남매인 언니 오빠들의 눈엣가시인 자신이 언제 어느 때 밀려날지 몰라 화영은 주주총회만큼은 목숨처럼 지킨다고 했다.
“첫 번째 라인이었고 24층이었어.”
선우는 나정과 함께 301동 첫 번째 입구로 들어가 24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24층에 내려서 보니 수빈의 집이 확실했다. 그날 수빈의 옆집 앞에 작은 화분이 놓여 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작은 화분은 여전히 옆집 문 옆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선뜻 수빈의 집 벨을 누를 수 없었다. 병원에선 수빈이 아직 회복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로 잠시 집으로 돌아간 상황이라고 했다.
지금 해원의 문제를 두고 수빈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가족이라도 만나서 이야기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좋겠지?”
나정도 선우의 생각에 동의했다. 선우는 수빈 집 벨을 눌렀다.
“집 보러 오셨어요?”
옆집 문이 열리더니 화분 위로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집, 비어 있어요.”
여자는 밖으로 나오더니 친절하게 선우 앞으로 걸어와 수빈의 현관문을 휙 열어젖혔다.
집은 비어 있었다. 그날 어질러졌던 서재 앞의 사진도 흔적 없이 치워져 있었다. 그날 보았던 수빈의 가구는 하나도 없었다.
“이삿짐은 누가 옮겼어요?”
정상이 아닌 수빈을 누군가 나쁘게 이용한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본인이지 누구겠어요?”
옆집 여자가 웃었다.
“어디 도망이라도 가듯이 한밤 중에 이삿짐센터 불러서 짐을 옮기더니 하루걸러 하루 사람들이 찾아오네요. 집주인이 세놓는다고 안내 좀 해 달래서 나와 봤더니, 집 보러 온 거 아닌가 봐요?”
돌아서는 옆집 여자를 선우가 잡았다.
“잠깐만요. 집 보러 온 사람 말고 다녀간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 남자들이 여럿 들락거려서 누가 누군지.”
모른 척 자기 집으로 들어갔던 옆집 여자가 잠시 후 다시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이 거요. 이수빈 씨 눈에 띄면 바로 연락 달라고 이걸 주더라구요.”
옆집 여자가 내민 건 상훈의 로펌 로고가 찍힌 장 변호사 명함이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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