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과로 시작된 노사 위기 수습이 4000억원 규모의 온누리상품권 환류로 이어졌다. 사과 후 한 달 남짓한 시간동안 변화의 흐름은 단순한 개별 기업의 위기 극복 사례를 넘어 대기업의 이익이 서민 경제로 선순환하는 정교한 국가적 상생 모델을 제시한다.
▲ 이재용 총수가 5월 16일 회사 내부문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한 이후 노사합의에 급물살을 탔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는 5월 16일 이 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 총파업 예정 전날인 20일 밤 노사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이후 27일 조합원 찬반투표 가결을 거쳐 2026년 임금협약을 체결했다. 이어 6월 8일부터 4주간 제품 구매 고객에게 구매액의 20%를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 돌려주는 ‘국민과 함께, 삼성전자 감사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균열의 위기를 극복한 삼성은 그사이 글로벌 시가총액 9위 까지 오르며 글로벌기업으로 위상을 높였고 주가는 30만원을 돌파했다. 대한민국 경제의 대동맥인 삼성전자가 역사적 분수령을 통과하자 경영성과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변곡점은 5월 16일 김포공항이었다. 이 회장은 해외 출장 일정을 조정해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로 귀국한 직후 노동조합과 임직원을 향해 “한 몸 한 가족”이라고 했다. 또 고객과 국민에게 회사 내부 문제로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과했고, 현장에서 세 차례 고개를 숙였다.
총파업을 앞둔 대기업 총수의 공개 사과는 단순한 메시지 이상의 효과를 냈다. 강경 대치로 흐르던 교섭 국면에 책임의 주체가 분명해졌고, 노사 모두 한 발씩 물러설 명분을 얻었다. 이 회장이 “비바람은 제가 맞겠다”는 취지로 책임을 자임한 대목은 이후 교섭 재개의 심리적 문을 열었다. 실제 사측 대표교섭위원을 교체하는 인적쇄신으로 협상을 물꼬를 텄다.
이후 삼성전자 노사는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을 이어갔으나 공식 조정은 결렬됐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장관 중재 아래 자율협상이 재개됐고, 총파업을 1시간여 앞두고 잠정합의안에 서명했다.
갈등의 비용을 성과 공유로 돌린 합의
합의는 임금 인상보다 성과 공유 구조로 재설계됐다. 노사는 전체 임금을 6.2% 인상하고, 반도체 사업을 맡는 DS부문에는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했다.
해당 성과급은 세후 전액 자사주로 지급하고,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은 유지하는 방식이다. DX부문과 CSS사업부에는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 지급안이 포함됐다.
▲ 여명구 DS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 초기업 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 마련 이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현금 유출을 최소화하면서 임직원을 장기 주가와 기업가치의 이해관계자로 묶는 절충안이다. 자사주 가운데 일부를 즉시 매각할 수 있게 하면서도 나머지 물량에는 보호예수 성격을 부여해 보상과 장기성과를 연결한 점도 특징이다.
과제도 남았다. DS와 DX 간 보상 격차, 자사주 활용에 대한 주주 판단, 향후 업황 둔화 시 보상 공식의 지속 가능성은 추가 관리가 필요하다. 다만 총파업 직전의 불확실성을 성과 공유의 틀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삼성 노사관계의 분기점으로 볼 만하다.
슈퍼사이클 2.0이 만든 타협의 배경
노사 잠정합의로 내부 리스크를 털어낸 삼성전자는 글로벌 전역에서 불어닥친 '반도체 슈퍼사이클 2.0'의 중심에 서서 기록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33.9조원, 영업이익 57.2조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DS) 부문만 매출 81.7조원, 영업이익 53.7조원을 냈고, 메모리는 AI용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와 가격 상승에 대응하며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시장규모가 전분기 대비 85.3% 팽창한 D램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38.6%의 독보적 지위을 유지했고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테슬라와 22조 7648억 원 규모의 AI 자율주행 칩 공급 계약을 확정하며 단일 고객 기준 역대 최대 규모 수주에 성공했다.
또 업계 최초로 HBM4와 차세대 저전력 메모리 모듈 SOCAMM2를 동시 양산·판매하기 시작했고, 2분기 이후에도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메모리 가격 상승과 HBM4E 샘플 공급을 예고했다. 특히 차세대 6세대 HBM4 규격은 올해 생산 가능 수량 전량이 장기공급계약(LTA)을 통해 이미 매진됐다.
▲ HBM4 제품사진 사진=삼성전자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들의 분석에 따르면, DRAM 고정거래 가격은 2025년 급등을 경험한 데 이어 2026년 2분기까지 추가로 40% 이상 폭등할 것으로 전망됐다. 아울러 AI 핵심 병목 부품인 HBM 수요 가속화로 글로벌 투자기관 UBS는 전 세계 반도체 제조 장비 시장 매출이 전년 대비 27% 성장을 기록하는 전방위적 연쇄 랠리를 예상한다.
국내 증권가 역시 2분기 삼성전자의 사상 첫 분기 영업이익 100조 원 돌파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KB증권은 삼성전자의 차기년도인 2027년 영업이익을 무려 488조 원으로 예상하며 전 세계 영업이익 순위 1위를 석권할 수 있다는 조심스럽고도 낙관적인 예측을 내놨다.
할인 대신 온누리상품권, 골목상권으로 흐른 4000억
회사는 6월 8일부터 4주간 제품 구매 고객에게 구매 금액의 20%에 해당하는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한다. 군인·경찰·소방·교정공무원 등 이른바 ‘K-히어로’에게는 10%를 더해 30% 혜택을 제공한다. 한 달간 지급 규모는 약 4000억원으로 전망된다.
통상 대규모 판촉 행사는 가격 할인이나 포인트 지급 방식을 선택하는 반면 이번 행사는 소비자 혜택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으로 다시 유입되도록 설계됐다. 삼성 제품을 산 소비자가 받은 상품권을 동네 식당·전통시장·소상공인 점포에서 쓰면 대기업의 성과가 내수의 말단까지 흘러가는 구조다.
2026년 발표된 ‘온누리상품권 가맹의 매출 효과’ 연구는 온누리상품권 가맹 직후 점포 매출이 약 4% 증가했고, 1년 차 5.0%, 2년 차 9.2%, 3년 차 12.2%로 효과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온누리상품권 연간 유통액이 2015년 당시 8,315억 원에서 지난해 2조 6,732억 원대까지 3배 이상 폭증한 것도 이러한 지역경제 밀착 효과 덕분이다. 지난해 유통액의 20% 수준이 더해지는 만큼, 골목 영세상권에 흐르는 훈풍 기대는 적지않다.
삼성전자는 이번 행사를 5년간 5조원 사회 기여 확대 약속의 첫 실행 계획으로 제시했다. 향후 협력사 지원, 포용적 금융, AI 인재 육성, 산학협력 강화 등 추가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번 흐름은 삼성의 위기 봉합이 만들어낸 상생을 의미한다. 이재용 회장의 사과에서 시작된 노사 합의와 성과 공유, 온누리상품권 환류는 그 성과를 골목상권으로 돌렸다.
삼성에 남은 과제는 이 선순환을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는 일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이익이 임직원, 주주, 협력사, 소상공인에게 균형 있게 흐를 때 ‘세 번 숙인 고개’는 위기 대응을 넘어 한국형 상생 경영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