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의 100년은 민족 보건을 향한 약속이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의 신뢰로 확장된 시간이다.
유한양행은 1926년 6월 20일 유일한 박사가 서울 종로에서 창립한 이후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강점기 질병과 가난, 비싼 수입 의약품에 고통받던 국민에게 좋은 약을 공급하겠다는 출발점은 100년 뒤 국산 항암제의 글로벌 허가와 사회환원 모델로 이어졌다.
올해 100주년 슬로건은 ‘신뢰의 100년, 약속의 100년’이다. 유한양행이 ‘버들표’로 쌓아 온 신용을 렉라자(레이저티닙) 이후 글로벌 R&D 성과로 증명하겠다는 선언이다. 100년의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유한양행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을 위한 혁신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글로벌 제약사로서의 미래를 들여다본다.
버들표에 담긴 창업의 문장
유한양행의 시작은 독립운동가 유일한 박사의 보건 자강론이었다. 9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유일한 박사는 한인소년병학교와 1919년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를 거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경제력과 교육, 건강한 국민이 함께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 조선의 현실은 참혹했다. 전염병과 영양부족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많았고 일본 기업이 판매하는 비싼 약을 구하지 못해 치료 기회를 잃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유일한 박사가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제약업을 택한 배경이다.
귀국 전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가 건넨 버드나무 목각품은 유한양행의 상징이 됐다. 꺾여도 다시 자라고 메마른 땅에서도 뿌리내리는 버드나무처럼 민족에게 그늘이 되는 기업이 되라는 뜻이었다.
사명에도 같은 의지가 녹아 있다. ‘유한(柳韓)’은 유일한의 이름과 한국을 품었고, ‘양행(洋行)’은 서양의 좋은 의약품을 들여오고 다시 세계로 나가겠다는 초기 글로벌 지향을 담았다.
유한양행은 설립 초 미국산 의약품 수입에 머물지 않았다. 1936년 소사공장을 기반으로 국내 생산 역량을 갖추며 일본 자본이 장악하던 의약품 시장에서 품질로 맞섰다.
정직을 팔아 신뢰를 얻다
창립과 함께 신문에 실린 개업 광고는 제품 효능을 과장하기보다 커다란 버드나무 상징을 앞세워 기업 정체성을 알렸다.
▲ 1926년 서울 종로에 설립된 유한양행 초기 본사 전경 사진=유한양행
당시 의약품 시장은 모조품과 과장광고가 적지 않았다. 유한양행은 광고에 성분 공개와 정찰제를 명시하며 불투명한 유통 관행을 정면으로 넘어서려 했다. 정직한 약,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버들표와 함께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이다.
1930년대에는 공중보건을 결합한 계몽형 마케팅도 전개했다. 결핵약 출시 전 전국 순회 예방 강연회를 열고 자양강장제 네오톤 토닉(Neoton Tonic) 광고에는 의과학적 작용 원리를 상세히 담았다.
“의사는 당신의 친우”라는 광고 시리즈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 진단 후 약을 복용하도록 권고한 메시지는 약을 많이 파는 것보다 오남용을 줄이고 국민 건강권을 앞세운 유한양행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초기 신용 중심 전략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단순한 인지도에 기댄 광고보다 모델이 가진 성실함과 헌신적 이미지를 브랜드 자산과 연결하는 방식은 버들표가 쌓아온 신뢰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사례다.
안티푸라민에서 렉라자까지
▲ 유한양행의 개발 1호 의약품 안티프라민 사진=유한양행
유한양행 연구개발의 뿌리는 1933년 자체 개발 1호 의약품 안티푸라민이다.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동포에게 상비약을 보급하고자 했던 유일한 박사의 뜻에서 출발한 품목이다.
안티푸라민은 단순한 연고가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국산 의약품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약품 주권의 상징이 됐다. 9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파스와 스프레이 등으로 라인업을 넓히며 국민 브랜드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100년사의 변곡점은 렉라자다. 국산 신약 31호인 렉라자는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개발됐고, 존슨앤드존슨의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와 병용으로 미국 FDA 1차 치료 허가를 받았다.
이는 국산 항암제가 글로벌 표준요법의 경쟁 구도 안으로 진입했다는 의미이자 사명인 '양행'을 실천한 순간이기도 하다.
▲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 렉라자. 사진=유한양행
국내에서는 급여 등재 전 조기공급 프로그램을 통해 895명의 폐암 환자에게 약제가 무상 공급됐다. 창업 당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먼저”라는 문제의식이 첨단 항암제 시대에 다시 구현했다.
렉라자 양행의 시작점으로 글로벌 매출에서 발생하는 로열티와 마일스톤을 다시 차세대 파이프라인에 투입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매출의 10~20%를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장기 투자 기조도 이 흐름을 뒷받침한다.
이익을 다시 사회로 환원
유한양행이 다른 제약사와 구분되는 지점은 신약 성과만이 아니다. 1936년 종업원 지주제, 1969년 전문경영인 체제, 1971년 유일한 박사의 전 재산 사회환원은 국내 기업사에서 이례적인 지배구조 실험이었다.
이 구조는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으로 이어졌다. 유한재단은 1970년 설립 이후 장학사업과 교육사업 지원, 사회복지, 재해구호를 지속했고 누적 1만200여 명에게 약 390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 유한재단 2026년 장학금 수여식 사진=유한양행
2026년에도 유한재단은 158명의 대학생에게 졸업까지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생활비 장학금, 북한 출생 대학생 특별장학금 등을 포함해 총 65억원 규모의 장학사업을 집행한다. 유한학원은 유한공고와 유한대학교를 통해 실무형 인재 양성의 축을 담당한다.
건강 정보지 ‘건강의 벗’도 같은 문법에 놓인다. 1969년 창간 이후 반세기 넘게 무료 배포를 이어가며 의약품 접근성 못지않게 건강정보 접근성을 넓혀 왔다.
특히 전문경영인 체제는 100년 기업을 설명하는 별도의 축이다. 창업자의 성과를 가족 승계가 아니라 조직과 사회의 자산으로 남기려 했다는 점에서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한국식 오너 경영과 다른 길을 걸었다.
유한양행이 말하는 ESG도 최근의 유행어만은 아니다. 배당과 이윤이 공익법인으로 흘러 장학과 교육, 보건 정보 제공으로 다시 사회에 돌아가는 구조는 이미 오래전 설계된 지속가능 경영의 원형에 가깝다.
다음 100년은 세계인을 위한 유한
유한양행의 과제는 렉라자 이후를 얼마나 빨리 증명하느냐다.
가장 앞선 후보군 중 하나는 레시게르셉트(lesigercept, YH35324)다. 만성 특발성 두드러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국가 2상은 한국, 일본, 중국, 유럽 일부 국가를 포함해 150명 규모로 설계됐고 기존 오말리주맙 치료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은 환자군까지 차별성 검증 범위에 넣었다.
희귀질환 분야의 YH35995는 고셔병을 겨냥한 경구용 GCS 억제제 후보물질이다. 혈액뇌장벽 통과 가능성을 앞세워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는 고셔병 2형·3형까지 치료 가능성을 넓히려는 접근이다.
MASH 등 대사질환 후보물질 임상 진입도 다음 100년의 포석이다. 항암제 하나의 성과에 기대는 기업이 아니라 성과를 다시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개발로 돌리는 R&D 기업으로 체질을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유한양행 100년은 ‘버들표’가 상징한 신뢰를 꾸준히 증명해왔다. 이제 한국 제약사의 오래된 모범사례에 머물지 않고 혁신의 모델을 제시하는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