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맛골’은 말을 피한다는 의미의 ‘피마’에서 유래됐다. 가마와 말 등을 타고 지나다니는 고관을 피하기 위해 서민들은 비좁은 뒷골목으로 다녔다. 유동인구가 늘어나자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상인들이 생겼고 지금까지 그 상권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한 때 재개발 논의가 있었지만 취소되면서 보존인지, 개발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상권이 돼 버렸다. ⓒ스카이데일리
‘피맛골’은 말을 피한다는 의미의 ‘피마’에서 유래됐다. 조선시대 종로를 통해 입·퇴궐하는 고관대신들이 지날 때마다 허리를 숙이고 굽혀야 했던 민초들이 한 쪽에 벽을 세웠던 것이다.
자연히 가마와 말 등을 타고 지나다니는 고관을 피하기 위해 골목에는 서민들이 넘쳐났다. 유동인구가 늘어나자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이들 또한 속속 자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상인들이 선택한 것은 음식장사였다. 국밥과 선술집 등을 파는 가게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피마골로 불리던 이곳이 피맛골로 이름이 굳어졌다.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상권인 피맛골은 당초 종로의 시작점인 교보생명 본사 일대부터 종로 3가까지 늘어서 있었다. 지난 2003년부터 피맛골 동쪽 일대부터 속속 개발이 진행되면서 피맛골은 대폭 축소됐다. 현재는 종각역 1번 출구 이면에 일부만 남아있다.
세월의 무게 폐허 “원조(元朝) 없다”…신구 조화 50대 이상과 2030 세대 비율 96%
남아있는 피맛골 역시 쇠퇴를 거듭하고 있다. 소상공인진흥공단 자료에 따르면 이곳의 대표음식인 국밥·선술집 등이 포함된 ‘한식·백반·한정식’ 업종은 지난 2015년 44개에서 지난 1월 21개로 절반 이상이 줄어든 상태다.
청진식당·전주집·양반댁 등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식당들이 여전히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한식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분식류 및 포장마차 등 주로 젊은 층들이 발걸음 하는 업종들이다.
매출 분석 자료에도 이 같은 피맛골의 변화가 그대로 묻어난다. 일대 이용고객의 상당수는 50대 이상 남성(66%)들이다. 이어 30%가 20·30대 젊은 층이다. 중년보다는 노년에 가까운 고객들과 종로 일대 학원·직장에 다니거나 맛집탐방을 위해 방문하는 젊은 층들의 고객 비중이 96%에 달하는 셈이다.
|
| ▲크게 보기 = 이미지 클릭 /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
함 사장은 “더 이상 피맛골에 원조(元祖)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장기간 장사하던 이들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또한 종로 일대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영업난도 계속됐다고 그는 전했다. 개발이 더뎌지면서 어느쪽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사실 상 방치되는 상권이라고 지적했다.
3년 전 종로할머니칼국수 가맹점을 오픈한 조정은(66) 씨도 함 씨와 비슷한 이야기였다. 그는 “재개발한다는 소식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원조집들 중 상당수가 빠져나갔다”며 “폐허처럼 방치된 공실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사람들 발걸음도 점차 줄어드는 듯 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초 조 씨는 명동성당 앞에서 고깃집을 20여년 간 운영해왔다. 일대 재개발사업으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던 조 씨가 이곳에 칼국수집을 열게 된 것은 지인이었던 전 주인으로부터 장사를 물려받으면서 부터다. 종로상권이 활기가 띄었을 때와 달리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든 후 장사를 하게 된 조 씨는 예약이 있는 특정한 날을 제외하곤 사람을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오래된 동네서 가맹점포를 운영하다보니 간혹 원조집으로 착각하고 오는 손님들도 있긴 하지만 극소수다”며 “젊음의 거리 등 종로 전역에 유동인구가 대폭 감소한 가운데 원조들이 떠난 피맛골을 지키는 2세대 상인들 대다수는 상당한 고충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소주회사 상인들 여행 보내줬던 영광은 옛말…개발에 목마른 상인들
▲ 피맛골 곳곳에는 폐허가 된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어 발걸음을 꺼리게 할 정도로 흉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아있는 상인들은 차라리 재개발이 돼 활기를 되찾았으면 하는 심정을 내비췄다. ⓒ스카이데일리
피맛골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승동장로교회를 찾았다. 이곳 교회는 지난 200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지난 1919년 2월 이 교회 지하에서 경성의 각 전문학교 대표자 20여명이 모여 3·1운동과 관련한 계획과 논의를 벌였다고 전해진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인 만큼 개발대상에서 제외된 이곳 정문에서 한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현재 피맛골은 불난 집들도 방치될 정도로 전락한 곳이며 재개발 논의조차 모두 취소된 상태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새로 장사하려고 들어오는 이도 없을뿐더러 사람들의 발걸음조차 잡을 수 없다보니 남아있는 상인들 역시 장사에 애로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피맛골 깊숙한 식당들을 찾아봤다. 63년 전통의 ‘이갈비’가 눈에 들어왔다. 1대 사장 후 33년째 영업을 이어 온 2대 사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내가 45세에 시작해 현재 78세가 되기까지 장사를 이어왔다”며 “20대 초반 때부터 다녔던 단골들이 벌써 50이 넘었다”고 소개했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영화감독 홍상수가 단골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지난 2000년 개봉한 홍 감독의 영화 ‘오! 수정’에서도 이 가게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오래된 시간만큼 내부는 낙후돼 있었다. 옛 정취를 그대로 남기기 위해 가급적 리모델링을 피해왔다고 하지만 건물이 내려앉을 것을 우려해 기둥이 설치돼 있었다. 설사 문제가 생겨도 재개발을 앞둔 상황이라 신·증축 등이 불가한 상황인 것이라 전해진다.
이갈비 사장은 “20년 전만 해도 장사가 다들 너무 잘되다보니 소주회사에서 상인들을 단체로 거제도 여행을 시켜줄 정도였다”며 “하루하루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이곳의 재개발이 진행돼 예전과 같은 활기를 찾았으면 싶다”고 덧붙였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