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주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던 날씨를 자랑했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더니 한강 건너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기 중에 미세먼지가 많았다. 미세먼지가 복사열을 높여 이른 더위가 찾아오기도 했다. 덕분에 벚꽃은 빨리 폈지만 봄비가 예고된 탓에 이번 주말로 예정됐던 벚꽃의 만개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자연히 “날씨도 스트레스다”는 말이 새나왔다.
그 때 생각난 것이 카페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카페란 이름의 숱한 체험형 놀이방들이 머리를 스쳤다. 화가 나면 때리고 부수고, 과녁을 맞추고 레이싱게임을 펼치는 등 일단 움직이고 싶었다. 스트레스가 더해지기 전에 짐을 꾸렸고 체험형놀이방 시설을 갖춘 카페들이 밀집한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으로 발걸음 했다.
IMF이후 후 20년 만에 돌아온 ‘분노방’…비싼 값 치르고 때리고 부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가 모여 있는 이른바 ‘분노방’은 IMF외환위기 전후로 생겨난 놀이문화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행했으나 차츰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최근 들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코스는 가격별로 △2만원 ‘짜증’ △3만원 ‘왕짜증’ △5만원 ‘빡침’ △7만원 ‘개빡침’ △18만원 ‘18’ 등으로 분류돼 있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았는데 얼마짜리 코스를 골라야 할지 또 다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짜증’은 너무 심심할 것 같아 ‘왕짜증’을 골랐다. 이곳 관계자는 안전규칙을 설명하며 약속된 구성품 외 파손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작성하게 했다. 이해는 됐지만 당장 돈까지 지불하며 스트레스 풀러 온 사람에게 참 얄궂게 군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멧과 안전복, 목장갑 등을 착용하고 세트장에 들어섰다. 빠른 템포의 노래가 흘러나오며 매를 맞아 줄 타이어와 시원하게 수명을 다해 줄 컵과 각종 찻잔들이 눈에 띄었다. 한쪽 벽에는 앞사람이 부순 컵들의 잔해로 어지러웠다. 그리곤 힘껏 하나씩 소리도 질러보고 방망이도 휘둘렀다. 문득 영화 속 주인공이 떠오르며 기분이 묘했다.
3만원이 허락한 컵의 생명력을 빼앗을 수 있는 기회는 길지 않았다. 시간 역시 비슷했다. 쫓기듯 스트레스를 풀고 방 바깥으로 나왔다. 이곳 업주는 젊은 부부였다. 직장을 다니면서 스트레스 깨나 받았다는 부인의 아이디어가 이곳 ‘분노방’을 생겨나게 했다. 하루 평균 15팀이 방문해 스트레스를 풀며 주말에는 무려 60팀 안팎의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높은 값을 지불할수록 부술 수 있는 제품의 가격도 올라가는 철저한 자본주의식 스트레스해소법을 체험한 양현지(23·여·가명) 씨는 “솔직히 처음에는 깨지고 부서지는 것에 무서움을 느꼈는데 나중엔 팔이 아플 정도로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며 “취업 준비 등으로 눌려 온 스트레스가 다소 풀린 것 같아”고 말했다.
카페에서 즐기는 올림픽 효자종목 양궁…직접 활시위 당기며 색다른 경험
1차원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고나니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고차원적인 해소법이 필요했다. 정신을 한데 모아 짜릿함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풀어보자는 취지로 양궁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장소는 실내 카페였다.
‘양궁카페’는 말 그대로 올림픽 효자종목 양궁을 체험하고 쏴보는 곳이다. 가격은 시간과 관계없이 발사하는 화살 수에 따라 달랐다. 처음이면 간단한 레슨을 포함해 7000원에서 1만8000원의 가격에 즐길 수 있었다. 손과 가슴에 보호구를 착용하고 화살통을 옆에 찼다. 얼핏 TV 속에서 본 선수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곳 관계자는 안전을 강조하며 쏘는 자세에 대해 면밀히 설명했다. 무엇보다 활시위를 당기는 일이 평소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써야 하는 만큼 자세를 잡는데 신경 쓰고 안전에 유의해 줄 것을 재차 강조했다. 음주자의 출입을 막는 이유도 바로 안전 때문이었다.
처음 코스에서는 5m 앞에 있는 과녁에 총 9발을 사격한 뒤 10m 코스로 이동한다. 먼저 이곳에서는 영점을 맞추는데 6발이 제공된다. 여러 차례 사격을 하다보면 옆에서 직원이 자세 등에 따라 클리크를 수정해준다. 영점을 다 맞추면 그 위치에서 곧바로 18발을 쏠 수 있다. 머리 위에서는 표적의 범위에 따라 점수가 정해진다.
평일 하루 평균 60~90명이 찾는다는 이곳의 주 고객층은 학생과 직장인들이다. 주말에는 이보다 세 배 넘는 인원이 골든서클을 겨누기 위해 찾는다고 한다. 자신을 ‘주몽의 후예’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올림픽에서 보던 장비로 직접 활을 쏠 수 있어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함께 온 여성은 “생각보다 시위를 당기는 것이 힘들었지만 과녁을 맞 출 때마다 더 높은 점수를 따내고 싶어 계속 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이번엔 경기 용인시 수지구청 인근을 찾았다. 포뮬러 자동차 경기를 재현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레이싱카페’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30분에 4000원, 1시간 6000원, 추가 10분 당 1000원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실제와 거의 유사한 경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장비는 운전석에 앉아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을 수 있도록 구현돼 있었다. BMW·아우디 등 실제 레이싱카를 선택해 고를 수 있었다. 한 차종을 골라 경주에 나섰다. 주행은 물론 충돌 시에는 핸들과 의자가 떨리며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데 주력한 모습이었다.
코스의 경사 등이 반영돼 타이어 마모음과 엔진음이 달라지기도 했다. 총 18좌석이 마련돼 있었다. 동시에 최대 16명까지 대전을 실행할 수 있다.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이나 인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곳을 찾는다는 게 업주의 설명이었다.
레이싱카페를 나서면서 불현듯 마음이 무거워졌다. 결국 스트레스란 현대인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헛돈을 쓰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술·담배 등에 의존해 몸을 갉아 먹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여겨졌다. 약간의 기회비용으로 만병의 근원을 해소할 수 있는 ‘이색카페’는 분명 현대인을 위한 즐거운 놀이문화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남승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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