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인식 자체가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요. 어린 친구들은 집중력 향상 등을 위해 배우곤 하죠. 하지만 20~30대 중간층은 텅 비어있어요.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높고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가 그 사이를 메워 전 연령대가 바둑을 즐길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할 계획이에요”
‘소소회(笑笑會)’는 젊은 남녀 프로 바둑기사들의 모임이다. 웃을 소(笑) 두 개를 붙여 만든 소소회는 비록 냉정하고 삭막한 승부의 세계에서 혹독한 생활을 하는 프로기사들이지만 서로 웃으면서 어울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미래 바둑계를 책임질 젊은 프로기사들을 서울 서초구 소소회 연구실에서 만나봤다.
아버지 세대 ‘고전 취미’ 인식 깬 젊은 프로기사들…“전 연령층이 바둑 즐기게 하고 싶어”
‘소소회’는 1990년대 초 한국기원이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자리했던 시절 탄생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후원으로 근근이 연구 활동을 이어오던 소소회는 그동안 한국기원 내 예선대국실, 인터넷 바둑사이트 타이젬 사무실 등을 전전하며 모임을 가졌다. 단독 연구실을 갖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소소회는 지난 2월 송혜령 2단 부친의 도움으로 서초구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 소소회는 신임 회장을 맡고 있는 박지연(28·여) 5단을 비롯해 부회장인 위태웅(26·남) 2단, 총무를 담당하는 송혜령(22·여) 2단, 강지범(23·남)·권주리(22·여) 초단 등이 임원을 맡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총 40명의 젊은 프로기사들이 소소회에 소속 돼 있다.
“바둑을 연구한다고 하면 조금 생소할 수도 있어요. 스포츠 같은 경우 꾸준히 같은 동작을 반복 훈련하거나 좋은 성적을 위해 체력 단련을 하잖아요. 바둑 역시 마찬가지죠. 저희끼리 대국을 통해 함께 수를 찾아내면서 훈련을 해야 하죠.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좋은 수를 고민하는 거죠. 일종의 담금질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돼요”
6살 때부터 바둑을 시작한 박지연 5단은 바둑학원을 다닌 친구의 영향으로 처음 바둑을 접하게 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바둑학원이 지금보다 활발하게 운영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부모들 사이에서는 집중력 향상 등을 위해 어린 자녀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게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요즘에는 바둑학원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이뤄지는 방과 후 프로그램이나 학원 등이 많지 않아서 바둑을 배우는 친구들이 조금이나마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대부분의 프로기사들은 저처럼 학원을 통해서 바둑을 접했을 거예요. 부모님이 바둑을 좋아하시거나 직접 바둑학원을 운영하시는 경우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바둑을 가까이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송혜령 2단을 비롯해 강지범·권주리 초단은 아버지가 즐기던 취미생활을 함께 접하다가 프로기사 반열까지 오르게 됐다. 위태웅 2단은 주위산만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부모님 손을 잡고 바둑학원을 갔던 게 바둑기사로서 첫 발을 뗀 계기였다.
위태웅 2단은 꾸준히 대국을 두고 바둑을 연구해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바둑을 관두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 실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 탓이 컸다. 그는 다시 바둑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프로기사 입단 후 생계가 걸려있기도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둑의 매력에 이끌려 다시 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일반인들 중에는 어렸을 때 바둑을 취미로 했다가 어른이 된 뒤 다시 학원을 다니는 사람도 많아요. 바둑은 정해진 틀이 없는 온전히 나의 생각에 의해 진행되는 종목이잖아요. 답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제가 둔 한 수가 곧 저만의 답이 되는 추상적인 종목이기도 하죠. 물론 야구처럼 경기장에서 관중들의 환호를 들을 수도 없고 조용하게 대국을 치르다 보니 자칫 기성세대의 전유물처럼 고리타분하다는 인식도 생길 수 있어요. 프로 바둑기사 입장에선 일반인들이 바둑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죠”
“바둑판은 가로세로 각각 19줄씩 있는데 그 경우의 수가 셀 수 없다고 해요. 처음에 바둑에 빠지기가 힘든 부분이 있는데 자신의 성향과 딱 맞는 경우에는 못 헤어 나오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어요. 보통 대국을 하면 상대의 수를 예상하면서 내 수를 두는데 예상과 맞아떨어지거나 혹은 예상하지 못한 수를 만났을 때 신기하고 또 신선하기도 하죠.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마치 도박처럼요”
“지루하다는 선입견 극복이 관건, 바둑의 대중화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
과거 소소회 소속 프로기사들은 모임에서 바둑 연구는 물론 친목도모 위주로 연구실을 꾸려나갔다. 오로지 자신들을 위한 활동이 전부였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최근 젊은 프로기사들은 바둑이라는 종목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방법론적인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송혜령 2단과 권주리 초단은 현재 명지대학교 바둑학과에 재학 중이다. 그동안 바둑판에서 일어나는 승부에만 집중했던 이들은 바둑의 역사부터 후배 양성에 필요한 지도자 교육, 심리학, 이벤트학, 사회학 등 승부 외적인 부분들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들은 열악한 우리나라 바둑계 환경을 개선하고 세대 간 격차를 해소해 전 연령층이 어우러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국가대표로 있을 때 아직 우리나라는 바둑을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지원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많이 느꼈어요. 중국 같은 경우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즐길 정도로 바둑이 대중화가 돼 있죠. 정부의 지원도 탄탄하고요. 대학교에 진학할 때는 혜택을 준다던지 입단하지 못한 아마추어 기사들도 다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많아요. 우리나라도 이런 부분들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많은 공부를 병행하고 있어요”
“우승을 많이 해서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도 목표지만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바둑은 대국을 할 때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좋은 수를 뒀을 때 타 종목과 달리 환호하거나 박수를 치는 경우가 없잖아요. 팬들 입장에서도 프로기사들의 경기를 눈앞에서 직접 보고 즐길 수 없고요. 집중해서 한 수 한 수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오히려 바둑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핸디캡이 될 수도 있죠. 앞으로 이런 핸디캡을 해결해 나가는 게 바둑계의 과제라고 여겨져요”
소소회 회원들은 알파고와 같은 AI(인공지능)가 보다 발달해 앞으로 경기 해설은 물론 연습 대국도 기계와 함께하는 시대가 도래 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 전반에 인공지능이 다양한 분야에서 상용화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의 교감을 중요시 하는 바둑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은 남아있을 거라는 게 이들의 견해다.
“바둑은 과거에 예술로 분류됐던 종목이었어요. 기사들 마다 풍기는 분위기가 다 다르거든요. 어떤 사람은 공격적이고 또 어떤 사람은 수비 태세를 잘 하죠. 그날그날 대국에 임할 때의 기분이나 컨디션 같은 것들이 바둑판에 고스란히 드러나요. 단순히 점수를 내는 경기가 아니니까요”
“관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고민해 봐야 해요. 젊은 프로기사들이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에게는 신선함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구체화해 조금씩 정진하면 바둑계 안으로 사람들이 자꾸 유입되고 모두가 즐겁게 바둑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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