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 이후 삼성그룹의 무노조경영 시대가 막을 내렸다. 반기업·친노동 정책 기조를 내 건 문재인정부 출범 후 무노조 경영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사회 안팎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노조 활동 허용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기대했던 일각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한 분위기만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 계열사 중 한 곳인 삼성디스플레이의 노사갈등 조짐이 대표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조 활동의 수위를 조절할 유일한 인물인 이재용 부회장마저 자리를 비우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는 모습이다. 내부 분열이 수습되긴 커녕 오히려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노조는 노조대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 삼성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무파업 대명사 삼성그룹의 가시밭길 위기…사원·임원 모두 제 밥그릇 챙기기 급급
지난해 2월 한국노총 산하로 출범한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는 현재 조합원 수가 전체 직원의 10%를 웃도는 2400여명 규모다. 노조는 이달 초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쟁의행위 찬반 투표에서 91.4%의 찬성률로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냈다. 전체 조합원의 78.6%인 1896명이 투표했고 그 중 1733명이 쟁의 활동에 찬성했다.
결국 지난 18일 삼성디스플레이 노동조합은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2캠퍼스에서 임금협상에 대한 사측의 교섭 태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 배경에는 사측과의 임금협상 결렬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노조는 지난해의 호실적 등을 근거로 삼아 기본인상률 6.8%, 위험수당 현실화, 해외 출장자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을 사측에 요구했다. 반면 사측은 이미 노사협의회와 합의한 기본 인상률 4.5% 이상은 어렵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결국 노조는 지난달 27일 열린 4차 본교섭 이후 임금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당시 노조 측은 “삼성은 임금 관련 자료도 주지 않는 떳떳하지 못한 회사다”며 “대표이사는 임금교섭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노조의 6.8% 임금인상 요구에 회사는 4.5%로 맞서고 있는데 이러한 근거는 어디에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목되는 사실은 삼성디스플레이 노조의 발발 수위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파업 가능성도 점쳐진다. 앞서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사 간 2차례 조정 시도 끝에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 노사 양측이 입장차를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는 언제든지 파업이나 태업 등 합법적인 쟁의행위에 돌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노조 측은 쟁의행위 돌입 시점과 방식을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계열사 가운데 최초로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후폭풍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장 삼성디스플레이부터 실적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점쳐진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24시간 공장이 가동돼야 한다. 한 번 가동을 멈추면 청정실(클린룸) 등 제품 생산을 위해 조성한 생산환경을 다시 맞추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QD디스플레이 등 사업 포트폴리오의 구조 전환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노조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미래 사업 추진에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QD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2월 삼성디스플레이가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차세대 패널이다.
일각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부터 시작된 노사 갈등이 타 계열사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은 창사 이래 50년 넘도록 무노조 경영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한 뒤 등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노조 리스크가 확대됐다. 아직까진 노사 갈등이 표면화되진 않았지만 현재 내부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무엇보다 노사갈등을 조율할 적임자가 없다는 점은 가장 심각한 위기요인으로 지목된다. 오너나 최고경영진이 직접 노사갈등을 조율해야 하지만 현재 총수가 공성인 상태인데다 최고경영진 역시 총수가 부재인 상태에서 내부 눈치보기만 급급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삼성그룹 내부직원은 “노조는 노조대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기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노조는 생산성 향상이나 사업활동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한다. 그것이 노조의 참된 역할일뿐더러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다”며 “합법 또는 불법의 여부를 떠나 낡은 투쟁방식으로 노동운동을 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 수준에 부합하지 않고 근로자나 기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극심한 내홍 시한폭탄 품은 삼성그룹…그룹 캐쉬카우 삼성생명 불안한 지배체제 도마 위
삼성그룹의 위기는 노조 리스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그룹의 캐쉬카우로 불리는 삼성생명에 악재가 겹치면서 미래먹거리인 금융업 영토확장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삼성생명이 약관에서 정한 암보험 입원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대주주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며 중징계에 해당하는 ‘기관경고’를 의결한 바 있다. 암 치료를 목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암보험 가입자들에게 입원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제재 수위를 최종 확정해야 하는 금융위원회에서 5개월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이 보험사 안건에 대해 몇 개월째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삼성생명의 중징계가 확정될 시 자회사인 삼성카드 등 금융 계열사들은 향후 1년간 신사업 분야에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
삼성생명 자체도 글로벌 트렌드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에 휩싸이면서 기업 이미지 추락이 점쳐지고 있다. 삼성생명의 불투명한 지배체제가 논란의 단초가 됐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현재 경영은 전영묵 사장이 이끌고 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박종문 부사장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부사장이 그룹 금융 계열사 전체를 통솔하는 금융경쟁력제고T/F장, 속칭 ‘금융계열사 미래전략실장’을 역임하고 있어서다. 책임은 전 사장이, 실권은 박 부사징이 지닌 이러한 지배체제는 향후 중대한 하자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불안한 구조라는 게 관련업계 안팎의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와 함께 그룹 실적을 책임지는 양대축이라 할 수 있다”며 “특히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그룹 금융계열사를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데 이런 중요한 계열사의 지배체제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내부 직원들의 속칭 ‘줄타기’ 등의 발생 우려와 동시에 심각한 내홍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창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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