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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개인주의는 어떻게 개인 간 갈등 해소하는가

타인의 자유나 행복 희생하는 건 개인주의 원칙에 위배

개인의 권리 점차 확대하며 검열 폐지·입헌 체제로 발전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6-15 10:55:05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개인주의는 ‘모든 개인은 자신의 고유한 행복을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추구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정신을 모체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맨 앞의 ‘모든’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가 개인의 행복이나 자유를 이야기할 때 이는 타인의 행복이나 자유와 거의 늘 상충됨을 기본적으로 전제한다. 단지 힘이 강한 한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 다른 개인의 행복과 자유가 희생되어야 한다면 이는 개인주의의 원칙에 위배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누군가의 행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행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어야 이루어진다고 말한다면 그의 행복은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까? 가령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당신이 그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해주어야 그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며 당신에게 그러한 행동을 하길 요구한다면, 그의 행복을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인정할 수 있을까?
 
단순히 개인은 행복과 자유를 누려야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문제는 각기 다양한 선호와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간의 충돌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이러한 개인들 간의 이해관계의 상충을 정치적으로 적절히 해소하기 위한, 대립되는 두 입장이 있다. 이는 크게 개인주의를 바라보는 두 입장이기도 하다.
 
개인주의는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의 원리를 통해 추구될 수도 있고 민주주의적 원리를 통해 추구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 사회가 과거에 비해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가 볼 때, 현재 한국사회에는 민주주의적 원리를 통한 갈등 해소, 문제 해결이 전보다 심하게 강조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즉 개인주의적 삶을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추구해나가는 모습이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올라오는 사연들, 그리고 거기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숫자, 이런 모습들이 아마도 그러한 민주주의적 원리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언제부터인가 점차 많은 한국인들이 다수의 감정에 호소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 혹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 사회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자유주의적 원리에 비하면 민주주의적 원리는 전통적으로 늘 모든 사회에서 선호되어온 방식이기도 하다.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보다는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민주주의적 원리와는 다른 방식의 갈등 해소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는 자유주의적 원리를 통해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입장, 소위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원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의 관계 속에서 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민주주의적 개인주의보다 중요한 원리로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지면이 허락되면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우선 역사적으로 영국인들이 욕망의 충돌을 해소하는 방식을 발전시켜온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역사에서 개인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선명하게 다른 두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유럽의 역사에서 그 중 한 방향을 대표하는 나라가 영국이며 유럽 대륙은 영국과는 대조되는 다른 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결과적으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적 개인주의의 차이를 만들어내게 된다.
 
영국식 개인주의의 특징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긴밀한 관계를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둘 간의 상호의존성은 사적 소유권에 대한 관념 그리고 모든 개인이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그 핵심으로 한다.
 
17세기에 데카르트와 논쟁하기도 했던 동시대 영국의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는 영국 특유의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정치철학자였다. 소유적 개인주의란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하는 개인주의이다. 그리고 이는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뿌리를 이루는 사상이다.
 
이미 중세 후반기에 사적 소유권이 확립되어 나갔던 영국에서는 개인의 소유권의 경계를 타인의 그것과 엄밀하게 구분하는 법적 감각이 발달해 있었다. 홉스 역시 데카르트와 같은 추상적인 관념적 사유보다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개념에 초점을 맞추었다. 소유권과 관련하여 그에게 가장 중요한 대상은 개인의 몸, 즉 생명이었다.
 
홉스는 자연법(law of nature)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목적도 개인들의 신체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평화의 달성이라고 생각했다. <리바이어던>에서 그는 국가(혹은 국왕)의 절대권력이 개인의 자발적 양도에 근거한다는 사회계약론 사상을 제시하였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왕권신수설, 즉 국왕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사상과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홉스의 사상은 오늘날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단초가 되는 논리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책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방법론적 개인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는 모든 사회현상들을 독립된 개인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해한다. 이는 사회적 현상이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예정된 계획과 목적에 의거해 일어난다고 보는 목적론적, 절대주의적 시각과 대조를 이룬다.
 
가령 중세 이래 유럽의 전통적 관점에서는 사회는 그 자체의 목적을 가지며 개인은 당연히 그 목적에 봉사하고 순종해야 했다. 하지만,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의 개인들을 (권력과 소유욕 등을 가지는) 욕망의 주체로 보았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는 타인의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예상했으며 이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자신의 철학적 과제로 삼았다.
 
홉스보다 한 세대 뒤 영국의 정치철학자인 존 로크 역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는 개인들의 존재를 전제하었다. 그리고 여기서 초래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이 가지는 이성의 힘에 의존했다는 점에서도 홉스와 동일하다. 하지만 홉스처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들이 이성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고 국왕의 절대권력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둘의 차이의 근원적 출발점은 홉스가 신체와 생명의 보존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로크는 재산권과 소유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즉 홉스와 달리 로크는 경제적 소유권을 정치적 주권보다 우선시하였다.
 
로크에게 있어서 삶의 자연적 조건으로서의 소유는 개인의 인격과 필연적인 연관성을 가졌다. 소유의 대상은 단지 돈과 주택처럼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물질적 자산뿐 아니라, 자유와 삶 등 개인에게 귀속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망라했다. 이처럼 폭넓게 소유 개념을 해석함으로써 로크는 영국의 소유적 개인주의 사상을 17세기에 가장 완성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철학자였다.
 
이처럼 소유를 개인의 인격과 자유의 전제 조건으로 보았던 로크의 사상은 사적 재산권을 강하게 옹호하는 영국사회의 전통적 특징을 반영하였다. 특히 이는 관념론적으로 흐르던 유럽 대륙의 지적 풍토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로크의 사상을 이어받아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자발적 질서라는 개념을 통해 시장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사익 추구 행위, 즉 경쟁과 선택을 이기적 탐욕으로 보지 않고, 반대로 전체 사회에 효용(utility)을 증가시키는 이로운 행위로 인식하였다. 개인에게 사적 이익을 가져오는 행위가 타인에게 유익을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은 스미스가 바라본 시장에서의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본질이었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논리적 결론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정부가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면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그러한 효율성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관념론적인 차원이 아닌 경제적 소유권을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개인주의가 발달하였던 영국은 18세기에 이미 유럽에서 가장 개인의 자유가 강하게 보장되는 국가였다. 즉 개인의 경제적 권리뿐 아니라 정신적 권리, 즉 자유로운 의견과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법적으로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 등이 보장되어 갔다. 이는 자연스레 도서출판의 검열 폐지를 초래했고, 왕권의 제약을 동반하는 입헌 체제를 초래하였다.
 
19세기에 이르면 사적 소유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철학적 논리가 만들어진다. 바로 공리주의(utilitarianism)였다. 공리주의 사상가로 유명한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철학적 원리를 통해 개인들의 자유로운 경제적 행위를 사회적으로 조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행복을 얻고자 하는 각 개인들의 이기적인 동기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으며, 공리주의적 원리로 조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볼 때 모든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에 관한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추구할 줄 아는 ‘가장 현명한 재판관’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개인이 현명한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그의 보편적 공리주의 사상은 선거권 확대를 추구했던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Chartism)에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개인의 정치적 자유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따로 떨어져 발전하는 것이 아닌, 병행하여 발전해 나갔던 점은 영국 근대사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개인의 신체, 재산, 사상에 대한 자유는 자연법적으로 신성한 권리일 뿐 아니라, 이를 추구하기 위한 경쟁과 선택은 경제적 시장의 영역(구매)과 정치적 시장(선거)의 영역모두에서 보다 평화롭게 갈등을 해소해 나갈 수 있는 기본 원리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하지만 경쟁과 선택이라는 단어에 한국사회는 여전히, 혹은 전에 없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듯하며, 이것이 서두에서 말한 자유주의적 원리보다는 민주주의적 원리에 기운 개인주의의 추구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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